항목 ID | GC022C030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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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봉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수정 |
과거 봉산마을과 송정마을이 함께 지내던 동제에는 여러 가지 신비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이들 이야기의 진위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들 이야기는 마을 사람들에게 동제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는지를 알려 주는 좋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봉산마을 동제와 관련하여 전해 오는 신비한 이야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이야기]
사람들은 옛날 동제를 지낼 때에는 정성이 부족하거나 부정이 타면 제관이 가장 먼저 해를 입는다고 믿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도 제관을 맡은 사람이면 누구나 정성을 다하여 제의를 지냈다.
옛날에 한 부부가 동제를 지내기 위해 마을 뒤 굿터로 올라가고 있었다. 굿터로 올라갈 때는 제물을 장만할 때 필요한 불씨를 가지고 가는데, 그 해는 제관 부부가 굿터에 당도할 즈음 그만 불씨가 꺼져 버렸다. 그러자 제관은 다시 불씨를 얻어 가기 위해서 마을로 내려갔으며, 부인은 굿터에서 제물을 지켰다.
제관이 마을에 다다르자 굿터에 있던 부인이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고 외쳤다. 그러자 제관은 다시 굿터로 돌아가 제의를 정성껏 모셨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제를 맡아서 지내는 제관이 정신이 있는지 없는지를 산신(山神)이 시험한 것이라고 하였다.
[두 번째 이야기]
옛날부터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당산나무는 함부로 만져서도 안 되고 가지를 꺾어서도 안 된다고 여겼다. 당산나무는 그 마을을 지키는 동신(洞神)을 모시는 곳이기에 신성하게 여겼으며, 금기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마을의 어떤 한 사람이 당산나무에 올라가 장난을 치다가 떨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를 두고 마을 사람들은 신성한 나무에 사람이 함부로 올라갔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세 번째 이야기]
옛날 마을에서 제관을 맡은 부부가 남자는 70세이고 그 부인은 50세였다고 한다. 이 부부는 슬하에 자식이 없었다. 자식을 간절히 바라던 이 부부는 동제를 어느 누구보다 성심성의껏 모셨고, 그 이후 아들을 얻었다. 이 아이를 두고 어미가 자식을 낳을 때 나이가 50세였다 하여 쉰둥이라 불렀으며, 아버지 나이 70세에 얻은 자식이라고 칠병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마을에서는 동제를 정성껏 모시면 자식 없는 사람이 아들을 얻을 수 있을 만큼 동신(洞神)이 영험하다고 믿었다.
[네 번째 이야기]
옛날에는 동제를 안 지내는 해에는 마을에 여우가 나타나 마을 주변을 맴돌았다. 여우가 마을 주위를 맴돌고 가면 꼭 마을 어디에선가 불이 났다고 한다. 그러면 주민들은 동신(洞神)이 화가 났기 때문에 마을에 변고가 생겼다고 여기어, 동신을 달래기 위해 제의를 지냈다고 한다.
[정보제공자]
황봉광(남, 1919년생, 봉산마을 거주)
김문학(남, 1925년생, 봉산마을 거주 송산노인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