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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게 살았으니 행복하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2D030203
지역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모산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은실

1960년대 모산마을은 배추, 무 등의 농작물을 많이 재배하여 큰 소득을 올렸다. 그러나 정작 땅이 없던 김말수 할머니는 밭작물의 소일거리를 통해 가족의 생계를 이어갔다. 그 당시의 삶을 김말수 할머니는 이렇게 회고했다. “넘(남)한테 쌀 한 되 빌려서 그날 저녁에 쌀 조금 넣고, 배추 넣고 해서 끓였다. 이만치 삶아서 옛날에 대접이 크다이가. 일하러 가는 할배(남편) 드린다고 뜨고 아이들 먹을 거 요만치 떠야 될 거 아니가. 이래저래 뜨고 나니 내가 먹을 시락(배추) 건더기 없는 기라. 멀건 국물만이 남아 있어 어찌 눈물이 났던지. 그 놈을 먹지도 못하고 실큰 울고. 그거라도 배가 고파서 마셨다이가. 그게 곡물이라 먹고 나니 조금 낫다이가.”

시어머니가 죽은 후 할머니는 외상으로 다섯 마지기의 논을 산다. 외상으로 산 논이라 그 빚을 갚기 위해 ‘좋은 옷 안 입고, 좋은 밥 안 먹고 독하게 살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 경지정리를 하였는데, 경비를 아끼기 위해 작은아들을 등에 업고, 큰딸에게 지게를 지게 하여 일을 시켰다고 한다. 스무 살이 된 다 큰 처녀를 지게를 지어 일을 시킨 게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우째 우째’ 돈을 갚아 결국 다섯 마지기의 논을 사게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가 53세가 되던 해, 남편이 음력 9월 초하루 시동생 제사에 참여하다가 갑자기 죽었다. 살아생전에 일을 하면 아주 좋은 일꾼인데 일을 안 하려 해서 할머니가 더욱 고생을 하였다고 한다. 그런 남편이 원망스럽지만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거를 생각하면 그 마음이 사라진다고 한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할머니는 “밤늦도록 울어도 울음이 남는다.”고 말을 아낀다. 젊은 시절, 고생을 많이 한 탓에 지금 할머니는 허리와 다리가 불편하다. 그러나 2008년 노인대학을 다니게 되면서 할머니에게도 새로운 삶이 찾아왔다. 자식만을 보고 남은 인생을 살아가리라 생각했는데 노인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의 삶이 또 다른 큰 행복이라 한다. 매주 목요일마다 노인대학을 간다는 할머니는 지금도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정보제공자]

김말수(여, 1930년생, 북모산마을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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