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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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內 大人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관직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가야 |
집필자 | 홍성우 |
[정의]
가야 시대 안라 고당 회의에 참석한 아라가야의 지배 계층.
[개설]
국내 대인(國內大人)은 아라가야의 사람으로 안라 고당 회의에 참여하였다. 안라 고당 회의를 개최한 이유는 외면상 신라가 복속한 남가라(南加羅)와 탁기탄(㖨己呑)을 재건하려는 목적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신라의 가야 지역 진출을 저지하고 백제의 하동 지역 진출에 따른 가야 지역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아라가야의 외교적 대응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국내 대인은 아라가야 주변에 있던 지역 세력의 수장 또는 최상위층 귀족이 아라가야의 정치적 발전에 따른 영역 확대 과정에서 아라가야에 편입된 후 중앙 귀족화한 사람으로 파악된다. 소국 단위의 수장층인 이들은 아라가야가 체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중앙 관료로 편입되거나 자치권을 인정받으면서 중앙의 통제를 받는 등 결속된 상태로 아라가야에 편입되었을 것이다.
[담당 직무]
국내 대인은 국내외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데 왕을 보좌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관련 기록]
『일본서기(日本書紀)』 권17 계체기(繼體紀) 23년[529] 3월 조에 "이달에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을 안라(安羅)[아라가야]에 보내 조칙으로 신라에 권하여 남가라와 탁기탄을 다시 건립하도록 하였다. 백제는 장군 군윤귀(君尹貴), 마나갑배(麻那甲背), 마로(麻鹵) 등을 보내 안라에 가서 조칙을 듣도록 하였다. 신라는 번국(蕃國)의 관가(官家)를 깨뜨린 것을 두려워하여 대인(大人)을 보내지 않고 부지나마례(夫智奈麻禮), 해나마례(奚奈麻禮) 등을 보내 안라에 가서 조칙을 듣도록 하였다. 이에 안라는 새로이 고당(高堂)을 만들어 칙사(勅使)를 인도하여 올라가는데, 국주(國主)는 뒤따라 계단을 올라갔고, 국내 대인으로서 미리 당(堂)에 오른 사람은 하나둘이었으며, 백제 사신(百濟使臣) 장군군(將軍君) 등은 뜰에 있음을 한스럽게 여겼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국내 대인의 존재로 보아 왕권의 강화와 지배층의 분화를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