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08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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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魯一 |
영어공식명칭 | Bak Noil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주용 |
[정의]
일제 강점기 함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박노일(朴魯一)[1894~1963]은 1894년 10월 11일 함안군 여항면에서 태어났다. 아들로 박문규(朴文圭)가 있다. 박노일은 1919년 3월 19일 일어난 함안읍 만세 운동을 주도하였다. 의거 당일 비봉산에서 고천제를 지내고, 태평루에서 독립 선언식을 거행하였다. 이후 시위행진으로 이어졌는데 함안 경찰서 주재소로 가서 유치장을 파괴하고 이미 검거되어 있던 안지호(安知鎬)를 탈출시켰다. 당시 그의 활동은 부산 지방 법원 마산 지청 자료에 잘 나타나 있다. 재판장은 "박노일, 안혁중(安赫中), 조계승(曺啓承) 등은 태극기를 흔들면서 군중을 지휘 통솔하였다"라고 하였다.
또 다른 증언에 의하면, 박노일 등은 태극기를 들고 서장과 군수에게 독립 시위 운동을 하였다는 증명서를 내놓으라고 강요하였고, 난폭한 행위를 한 주모자로 지목되고 있다. 박노일은 함안읍 만세 운동에서 피신하여 다음 날 군북 시장 만세 운동에도 참여하였다. 이후에도 항일 운동을 하다가 1924년 8월 25일 소요죄로 징역 6개월 집행 유예 2년을 선고 받기도 하였다. 광복 후 경상남도 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어 의정 활동을 하였다.
[묘소]
박노일은 국립 서울 현충원 애국 지사 제3 묘역-118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63년 대통령 표창, 1991년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