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0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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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山 書院 |
영어공식명칭 | Seosan Private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사군로 1235[원북리 537-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고은영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원북리에 있는 서원.
[설립 목적]
조선 후기인 1703년(숙종 29)에 경상도 유학(幼學) 곽억령(郭億齡) 등이 생육신(生六臣)인 조려(趙旅)[1420~1489], 김시습(金時習)[1435~1493], 이맹전(李孟專)[1392~1480], 원호(元昊), 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1454~1492] 등을 사육신(死六臣)의 예에 따라 병향(幷享)해야 마땅함을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창건했던 서원이다.
조려는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 세조(世祖)가 즉위하자 귀향하여 은둔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조려가 은둔한 서산을 백이산(伯夷山)이라 불렀다. 김시습은 처형된 사육신의 시신을 수습하여 노량진 가에 임시 매장하고 지방을 유람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이맹전은 경상북도 선산 출신으로 세조가 즉위하자 귀향하여 귀머거리, 소경이라 핑계하고 은둔하여 30여 년을 두문불출하였다. 원호는 강원도 원주 출신으로 세조의 즉위 후에 병을 핑계로 귀향하여 은거하였다. 단종(端宗)이 영월에 유배되자 영월 서쪽에 집을 지어 임금을 그리워하였고, 단종이 죽자 삼년상을 마치고 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 성담수는 사육신 처형 후 아버지가 연좌되었고 이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은거하였다. 남효온은 당시의 금기였던, 사육신이 단종을 위하여 죽은 사실에 관한 『육신전(六臣傳)』을 저술했던 생육신의 한사람이다.
[변천]
1703년 창건되었고, 1712년(숙종 39)에 ‘서산(西山)’ 이라는 현판이 내려지면서 사액 서원(賜額書院)이 되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이 서원 철폐령을 내리면서 훼철되었다. 광복 후에도 오랫동안 복원되지 못하다가 정부의 보조와 유림의 협력으로 1981년에 복원을 착수하여 1984년에 완공하였다. 이가원(李家源)의 「서산 서원 중건기(西山書院重建記)」가 남아 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향사일은 매년 9월 9일이며, 함안 조씨(咸安 趙氏)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현황]
서산 서원에는 묘우(廟宇)[3칸], 강당[5칸],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각각 3칸, 고사(庫舍)[3칸], 신문(神門), 외문(外問), 육각정(六角亭), 육각비(六角碑), 조려의 사적비 등이 있다. 묘우에는 조려를 중심으로 좌우에 원호, 김시습, 이맹정, 성담수, 남효온 등의 위패가 있다. 목조의 팔작 기와지붕으로 이루어진 강당은 중앙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어 여러 행사, 회합, 강론 등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