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3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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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檀君 - 釣臺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정헌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에서 단군 한배터와 조대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단군 한배터와 조대」는 여항면 외암리 음촌 마을에서 단군(檀君)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단군 한배터에 대한 지명 전설이자, 양촌 마을에서 성재(性齋)안몽백(安夢伯)[1762~1838]이 낚시하고 휴식을 취했다는 조대(釣臺) 바위에 대한 암석 전설이다.
[채록/수집 상황]
2010년 함안 문화원에서 간행한 『함안의 지명 유래(증보)』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는 개바구[견암(犬岩)]와 위치에 따라 음지 마을과 양지 마을로 나누어져 있다. 음지 마을의 개울 옆에는 함안군 보호수로 지정된 크다란 느티나무 세 그루가 있다. 이곳에는 매년 정월 보름이면 동신제를 거행하여 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을 기원한다. 특히 이 나무에는 정성을 다해 기원하면 아들을 얻게 된다며 부녀자들의 발길이 잦았던 곳이었다. 그리고 음지 마을에서 내곡 쪽으로 가는 길의 옆에 단군 한배터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옛날에 건국 신화에 나오는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곳인데,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의 강요로 없어졌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단군 영정이 있었는데 1980년 무렵에 관리 소홀로 사라져 버리고, 현재는 빈터에 제단만이 남아 있다고 전한다.
또한,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외암리 양촌 마을 입구의 개울 옆에는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주민들은 이 바위를 조대 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옛날에 성재안몽백이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양촌 마을의 신국산(新局山) 기슭에 신파재(新坡齋)를 지어 제자를 양성하였다. 지금은 그 옛날 신파재는 없어지고 주춧돌의 잔해만이 남아 있다. 이 지역 주민들은 이 신국산 골짜기를 서재골이라고 부른다. 신파재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바위에서 성재 선생이 낚시하고 휴식을 취했는데, 사람들은 이 바위를 조대 바위 또는 조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단군 한배터와 조대」의 주요 모티프는 '지명 유래', '암석 유래' 등이다. 단군 한배터는 함안 지역에서 단군의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지만 일제 강점기에 신사 참배의 강요로 사라지게 되었고,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고 한다. 「단군 한배터와 조대」에는 단군 한배터 외에도 마을의 노거수에 대한 기자담과 서재골에 대한 지명 유래담 등 여러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