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6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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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警察署 爆彈投擲義擧 |
이칭/별칭 |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선미 |
발생|시작 시기/일시 | 1920년 12월 27일 -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 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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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결 시기/일시 | 1921년 7월 8일 -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 최수봉 사형 집행 |
발단 시기/일시 | 1920년 11월경 -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 김상윤, 한봉인 등 밀양경찰서 투탄을 결의 |
전개 시기/일시 | 1920년 12월 26일 -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 최수봉, 2개의 폭탄을 확보 |
발생|시작 장소 | 밀양경찰서 - 경상남도 밀양시 |
종결 장소 | 대구감옥 - 경상북도 대구시 |
성격 | 의열 투쟁 |
관련 인물/단체 | 의열단|밀양경찰서|최수봉|김원봉|김상윤|이종암|고인덕|한봉인|배중세 |
[정의]
1920년 12월 27일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경찰에 부상을 입히고 시설을 파괴한 사건.
[개설]
1920년 12월 27일 의열단원 최수봉은 밀양경찰서에 두 차례의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 경찰에게 부상을 입히고 경찰서의 집기를 파손하였다. 1920년 초부터 잇따른 의열단의 암살 파괴 투쟁의 일환인 의거였다.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를 주도한 것은 최수봉, 김상윤, 한봉인, 이종암, 고인덕, 배중세 등이었다. 최수봉 등은 밀양경찰서장이 매주 월요일마다 관내 경찰들을 소집한다는 것을 알아내고, 일정을 맞추어 거사일을 결정하는 등 치밀하게 계획을 진행하였다. 비록 폭탄의 위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목적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지만, 경찰서를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경찰들은 혼비백산시키는 데 성공하였다. 이로 인하여 최수봉은 사형을 선고받고, 교수형을 당하였다.
[역사적 배경]
1920년 3월과 5월 의열단은 제1차 암살 파괴 계획을 전개하였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9월 14일 박재혁이 부산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여 경찰서장 등 3명의 일본 경찰을 처단하는 데 성공하였다. 1차 암살 파괴 계획의 실패에 울분을 터트렸던 이들은 박재혁의 쾌거에 크게 고무되었다. 최수봉도 그런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최수봉은 밀양에서 김원봉과 함께 자란 벗으로, 치열한 항일 의식의 소유자였다. 의열단이 1차 암살 파괴 계획을 전개하기 위하여 밀양에 들어왔을 때, 최수봉은 의열단에 가입하고 폭탄 제조법을 익혔다.
11월 들어 의열단이 밀양경찰서 투탄 의거를 계획하자, 최수봉은 폭탄 투척 실행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최수봉은 은밀히 밀양경찰서의 동정을 살피었고, 12월 26일 크고 작은 폭탄 각각 1개씩을 건네받아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경과]
1920년 12월 27일 의열단원 최수봉이 밀양경찰서에 폭탄을 투척하였다. 12월 27일은 월요일이었다. 매주 월요일에 서장이 관내의 경찰들을 소집한다는 것을 미리 탐지하였기 때문에 거사를 감행한 것이었다.
오전 9시 30분경 밀양경찰서장 와타나베[渡邊末次郞]가 서원 19명을 모아 놓고 훈시하는 사무실의 유리창으로, 최수봉은 준비한 폭탄 가운데 큰 폭탄을 던졌다[제1탄]. 유리창을 부수고 사무실에 투척된 폭탄은 순사부장의 오른팔에 부딪혀 떨어지면서 불발이 되고 말았다. 이어서 최수봉은 쏜살같이 현관 입구로 내달려, 자신을 체포하려 달려오는 경찰을 향하여 두 번째 폭탄을 던졌다[제2탄]. 두 번째 폭탄은 복도 바닥에 강하게 충돌하여 폭음과 함께 작렬하였다. 하지만 강한 파괴력을 보여줄 것으로 예상한 제1탄이 불발에 그친 탓에, 다수의 경찰을 살해하여 일제의 조선 통치에 충격을 가하려던 애초의 목표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순사부장 등이 부상을 입고 집기가 파괴되었고, 혼비백산한 경찰들이 엎어지고 자빠지며 앞다투어 탈출하면서 경찰서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거사 후 최수봉은 준비한 단도로 자결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고 투옥되었다.
[결과]
1921년 2월 10일 부산지방법원은 최수봉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였고, 4월 16일 대구복심법원은 사형을 선고하였다. 7월 8일 최수봉은 대구 감옥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큰 소리로 외치고 교수형에 처해졌다.
[의의와 평가]
의열단의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는 3·1운동 이후 최대의 이목을 끈 사건이다. 1920년 1차 암살파괴계획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부산경찰서와 밀양경찰서에 잇달아 폭탄을 투척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일제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밀양경찰서 폭탄투척의거에서 비록 시설 파손에 그치고 사상자를 내지 못하였지만, 의열 투쟁의 지속적 전개를 보여 줌으로써 일본 경찰에 충격을 안겨 주고 항일운동의 기세를 올리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