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3005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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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建國靑年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강원도 영월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이용철 |
[정의]
1946년 강원도 영월 지역에서 설립된 청년 단체.
[개설]
건국청년단(建國靑年團)은 1946년 10월 엄기창의 주도하에 결성되었다. 영월 지역에서 우익의 세력 확장을 위하여 활동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좌익계와 대립하였다.
[설립 목적]
건국청년단은 영월 지역 내 우익의 세력 확장과 좌익계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변천]
건국청년단의 기원은 1945년 8월 19일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사무소 회의실에서 민족주의계 인사들에 의하여 조직된 영월청년회(寧越靑年會)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열주(高烈柱)가 회장을 맡은 영월청년회는 광복과 함께 공백이 된 치안을 담당하였다. 1946년 영월청년회는 내성청년단(奈城靑年團)으로 이름을 바꾸고, 엄재흥(嚴在興)을 회장으로 선임하여 좌익계와 좌우 합작을 위한 회의를 일곱 차례 개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당시 영월의 우익 진영에서 중심 역할을 하던 이들은 국민회(國民會)를 중심으로 한 고열주, 김희안, 이상련, 신승하, 이석범, 김우열, 유재복, 김영륜, 유창종, 엄재학 등이며, 청년단에서 활동하던 중심인물은 엄기창, 엄재흥, 지영관, 안종칠, 오원근, 이학래, 엄이현, 구의서 등이었다. 1946년 10월경 영월 지역의 우익 인사들은 서울에서 김구(金九)[1876~1949] 등 우익계 주요 인사들을 만났으며, 건국청년단의 조직을 지시받았다. 이를 계기로 영월 지역에 건국청년단이 조직되었으며, 단장은 엄기창이 맡았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건국청년단을 조직한 영월 지역의 우익 인사들은 1946년 12월 26일 좌익계와 충돌하여 세 명이 큰 부상을 입기도 하였다. 건국청년단과 영월 지역 좌익계의 충돌은 1947년에도 이어졌다. 1947년 3월 1일 3·1절 기념 축하대회 때도 건국청년단을 중심으로하는 우익계와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 영월군 간부 신정현을 중심으로 하는 좌익계가 충돌하여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의의와 평가]
건국청년단은 1945년 12월 모스크바3상회의에서 촉발된 신탁통치 문제를 두고 좌우익이 격렬히 대립하는 과정에서 영월 지역의 우익 세력 확장을 위하여 조직되었다. 따라서 건국청년단의 존재와 활동은 광복 이후 영월 지역의 정치적 상황과 당시 국내 정황을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