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12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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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竹山朴氏 |
영어음역 | Juksan Parkssi |
영어의미역 | Juksan Park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근삼리|근곡리 |
집필자 | 김장환 |
세거지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장평리|근삼리|근곡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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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옥산리|장평리|근삼리|근곡리 |
성씨시조 | 박기오(朴奇悟) |
[정의]
박기오를 시조로 하고 박원형을 조상으로 하는 경기도 용인시에 세거 성씨.
[연원]
죽산(竹山)은 조선 시대에는 현재의 경기도 용인시와 안성시 일부가 속해 있던 지명이다. 죽산박씨(竹山朴氏)는 신라 왕족의 후예로 경명왕의 넷째 왕자인 죽성대군(竹城大君) 박언립(朴彦立)으로부터 문호가 열리게 되었다.
『죽산박씨족보』에 의하면 박언립의 아들 박기오(朴奇悟)가 왕건을 도와 고려 창업에 공을 세우고 태조 때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삼중대광태보(三重大匡太保)에 올라 죽주백(竹州伯)에 봉해지고 식읍으로 죽산을 하사 받아 후손들이 죽산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고 한다.
[입향경위]
한양에 거주하며 예종조 영의정을 지낸 46세인 문헌공 박원형(朴元亨)의 묘소가 죽산 지역에 자리잡으면서 죽산박씨 문헌공파의 후손들이 백암면 옥산리와 장평리 등에 세거하게 되었다. 박원형이 자신의 묘 자리를 찾다가 연고가 있는 죽산 지역인 지금의 안성군 삼죽면 비봉산 아래 터를 잡았다.
그러나 아우 박원정(朴元貞)이 먼저 세상을 뜨자 그 자리를 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그 옆 하산 마을 뒷산에 묻혔다고 한다. 박원형 이후 6~7대 후에 입향하여 세거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 초반까지 하산 마을의 문헌공파 후손들이 번창하여 3백여 가구가 모여 살고 있었다.
[현황]
『경기도지』(1957)나 『용인군지』(1992)의 동족촌 기록에 따르면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지역의 세거 성씨 중 가장 연원이 오래되고 많은 호수의 문중이 죽산박씨이다.
이에 따르면 백암면 옥산리 및 장평리의 죽산박씨는 문헌공파로 600년 전부터 세거하기 시작하여 77세대의 대세를 자랑하고 있고, 백암면 근삼리의 죽산박씨는 호곡공파로 500년 전부터 세거하여 30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으며, 백암면 근곡리의 죽산박씨 역시 호곡공파이며 400년 동안 세거하며 2O세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