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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곡마을에 왜병이 들어오지 않은 연유」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356
한자 松谷-倭兵-緣由
영어의미역 Why Japanese Soldiers Avoided Songgok Villag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지도보기
집필자 노재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전쟁담|설화
주요 등장인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여송
관련지명 송곡리
모티프 유형 임진왜란에 관련된 전쟁담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전해오는 임진왜란에 관한 설화.

[개설]

임진왜란 때 진주시 금곡면 송곡마을에 왜병이 들어오지 못한 이유를 밝힌 전쟁담(戰爭談) 이다.

[채록/수집상황]

1980년 8월 10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양군 금곡면 검암리 운문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하해조[남, 67세]이다. 『진양민속지』, 『진양군사』 등 채록본의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내용]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으로 떠나는 장졸(將卒)들에게 “조선에 가면, 반드시 송자(松字)를 피해라.”라는 특명을 내렸다. 그래서 조선에 침입한 일본 장졸들은 송자(松字)가 들어간 지명을 피해 갔다. 선발 부대가 지나가며 송(松)자가 들어 있는 마을이나 산에는 깃대를 꽂았다.

이 덕분에 임진년(1592년)에 진주성 대첩을 겪고, 계사년(1593년)에 진주성이 함락되는 와중에서도 진주시 금곡면 송곡(松谷)마을만은 유일하게 전화(戰禍)로부터 안전하였다. 일본군이 송(松)자를 두려워하며 피했던 이유는 명나라 장수 이여송(李如松)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한다.

[모티브 분석]

이 설화의 기본 모티브는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민담은 주로 무용담이나 왜병들에게 피해를 본 여성들의 희생담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 설화는 무용담이나 희생담이 아니라, 마을 이름 덕분에 전쟁의 화를 면했다는 전쟁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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