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백정의 신분해방을 주도한 사회운동가. 백정들은 일반인과 격리된 관계로 사실상 공교육을 받을 기회조차도 없었다. 다만 재산을 상당히 축적한 부호로서 사숙·의숙에서 수학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전문(傳聞)하는 바에 의하면, 그는 도수업·수육판매업으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부호로서 잘 알려져 있다. 진주에서 형평운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 중 하나로, 이학찬의 자제의 공립보통...
1933년 1월 청년형평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일제가 전라남도 광주형평청년회를 비롯한 청년회원들을 공산주의운동가로 조작한 사건. 일제는 형평운동 확산과 사회단체와 연대를 적극적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혁신파가 주도권을 장악한 이래 형평사는 고려혁명당사건과 같은 민족해방운동과 밀접한 연계성을 지녔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는 동시에 형평운동에 대한 전면적인 탄압책은 이 사건으로 귀...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인 형평사의 운동노선 전환의 계기가 된 회의. 1923년 4월 진주에서 조직된 형평사는 창립 10개월만에 12개 지사와 67개 분사가 설립되는 등 일제강점기 사회운동단체로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였다. 그러나 강상호·신현수·하석금 등 경상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인물과 전라·충청·경기·강원도 등지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장지필·조귀용·오성환 등이 운동노선과 주도권 장...
1924년 진주에서 백정 청년들로 조직된 형평사의 하부 청년단체. 형평운동 노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진주 본사 임원들을 지원하는 한편 형평운동 진작과 진보적인 사회운동과 협력을 통한 백정들의 경제생활 향상과 사회적인 대우 개선 등을 목적으로 삼았다. 서울의 정위단과 진주형평청년회는 파벌 대립에 반발하는 젊은 활동가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은 노장층에 비하여 비교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