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관청 건물. 원래 관찰사는 각도에 1명씩 임명했던 조선시대의 지방장관(종 2품)을 말하는데 관찰사를 다른 말로 ‘감사’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관찰사가 있는 관청을 ‘감영’이라고 했다. 경상도관찰사는 조선시대 내내 대구(달성) 등 경상북도에만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상남도에는 없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눠진 후 관찰사가...
조선시대 때 경상남도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였던 관아 영남포정사의 정문.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사를 지내던 남이흥이 내성의 동쪽문을 고쳐 세우고 옆에 대변루(待變樓)를 새로 지었는데, 이것이 망미루의 본래 건물이다. 후에 1895년(고종 32)에 전국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시행됨에 따라 진주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다. 1896년에 전국을 13...
경상남도 진주시 계동 38번지[진주대로 1110] 일대에 남아 있는 관아터. 관아의 건립경위나 시기에 대한 기록은 없다. 경상남도 진주시 계동 38번지[진주대로 1110] 일대에 남아 있다. 지금의 한국통신 진주전화국이 있는 일대이다. 이곳은 원래 진주목, 진주군의 관아가 있던 곳이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에 칙령 제98호에 의거 1413년(태종 13) 이래로 482...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진주성의 배치도. 현존하는 「진주성도」는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동아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진주성도」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의 「진주성도」이며, 나머지는 『여지도서』에 실린 「경상도우병영지지도(慶尙道右兵營之地圖)」이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에도 「진주성도」가 있다는 기록을 보았으나 직접 보지는 못했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진주대아고등학교에서...
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백응(伯應), 호는 설총(雪聰) 또는 설창(雪牕). 조선 중기 진주지역의 학자로 이름이 높았던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가 큰아버지이고, 하홍달(河弘達)이 부친이다. 어려서부터 백부 하홍도 밑에서 수학하였다. 천성이 총명하여 겸재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17세 때 연이어 부모상을 당해 극진한 예로써 장사와 제사를 받들고, 상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