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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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관습적으로 되풀이 하여 행하는 생활풍습과 의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오랫동안 살아가다보면 특정한 관습이 생기고 해마다 반복됨으로써 세시풍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시풍속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적인 조건, 역사적인 경험, 또 그 지역민이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인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세시풍속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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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가. 1893년 진주에서 태어나 망경동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신영균, 어머니는 여산송씨이다. 사회운동으로 평생을 보냈으며, 1961년 68세로 사망하였다. 1911년 진주제1보통학교(현 진주초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일본에 있는 중학교를 수료하였다. 1920년 전후 토지조사국에서 조선일보 진주지국장으로 옮겼으며, 이후 다양한 조직에서 사회운동을 하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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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의 일본인 교장 이마무라의 송덕을 기려 세운 비. 일본인 이마무라 다다오[금촌충부]는 1925년 5월 8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진주농업학교(후의 진주산업대학교)에 교장으로 재임하였다. 1937년 6월 12일 진주농업학교 교정에서 경상남도지사와 하동군수 등 기관단체장과 유력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마무라 교장의 송덕비 제막식이 거행되었는데, 그 연유는 그가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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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국권강탈 이후 1945년 광복에 이르는 일본제국주의에 의한 식민통치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정책은 사회·경제적 수탈뿐만 아니라 한국민족 말살정책을 강행하는 악랄한 정책을 집행하였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설치한 교통·통신시설은 비록 그것이 근대적인 시설이었다 하더라도 설치목적과 그 기능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한, 그리고 대륙침략의 병참기지화에만 있었다. 이러한 식민지정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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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에 일본인이 설립하였던 육영교육 사업단체. 독학으로 공부하는 청년들에게 학비를 보조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38년 3월 청수좌태랑[淸水佐太郞]이 사재(私財) 4만원을 지방육영사업에 제공할 뜻을 진주군수 대림복부(大林福夫)에게 전하자, 당시 유지들의 자문을 받아 재단법인 진주육영회(晋州育英會)를 설립하였다. 임원은 이사장에 대림복부(大林福夫), 이사에 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