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티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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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전승되는 모진 매를 맞다가 죽은 나막신장이에 관한 설화. 진주 지역에는 ‘나막신장이의 날’이 있는데, 이 날은 모질게 추운 섣달 스무 이튿날로서 소한(小寒)·대한(大寒)이 다 가고 난 뒤에도 추운 날이다. 설화 나막신쟁이날은 겨울이 다가는 어느 날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모진 매를 단돈 석 냥과 바꾸어 맞다가 죽은 나막신장이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이다. 1983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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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을 총칭하는 말. 고개에는 전설과 그 지역의 지명과 관련된 명칭이 붙어 있다. 고개와 관련된 지명은 ‘고개’, ‘재’, ‘티’, ‘치’, ‘개’ 등이 있다. 『진주시사』와 『진양군사』를 중심으로 진주시의 고개를 살펴보면 대략 42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고개를 위치와 명칭 유래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가막고개는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대평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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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과 초장동 사이에 있는 고개.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일대, 마치(馬峙)[말티고개, 말고개]의 고도는 약 50m 정도이다. 경상남도 진주시의 남동쪽에 위치한 선학산 마루를 지나는 고갯길로, 경상남도 의령 방면으로 빠지는 길목이다. 이 고개의 북쪽에 있는 바위 위에 말의 발자국 모양이 찍혀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때 어떤 장수가 말을 타고 넘나들 때 생긴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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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하천의 주변에 홍수로 인한 범람이나 낮은 곳에 물이 모여 만들어진 웅덩이. 하천의 범람 등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배후습지(背後濕地)에 물이 고여서 형성되거나 흐르는 물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서 만들어진 웅덩이를 말한다. ‘못’이라는 지명이 붙기도 하고 한자인 ‘지(池)’가 붙기도 한다. 대체로 저수지 등으로 이용된다. 진주 지역에는 가마못 등 주요 못들이 있는데, 이들 못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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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관련된 읍치 풍수, 취락 및 주택 풍수, 비보 풍수, 풍수설화 등의 풍수적 사실과 역사적 경관, 그리고 옛 진주 주민들의 비봉산에 대한 문화생태학적인 환경지각과 그 의미를 포함하는 말. 진주의 비봉산은 진주 도심의 북쪽에서 시내를 에워싸고 있는 표고 162m의 나지막한 산으로서 동서로 크게 날개를 펼친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서쪽 날개는 두고개(137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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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일정한 시기가 되면 관습적으로 되풀이 하여 행하는 생활풍습과 의례. 사람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오랫동안 살아가다보면 특정한 관습이 생기고 해마다 반복됨으로써 세시풍속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시풍속은 살고 있는 지역의 자연적인 조건, 역사적인 경험, 또 그 지역민이 형성하고 있는 사회적인 특성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 세시풍속은 한 번 뿌리를 내리면 쉽게 사라지지 않는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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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시내 중심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옥봉산(玉峰山)의 이름을 따서 ‘옥봉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옥봉면(玉峯面) 교동(校洞)·탑동(塔洞)·비석촌(碑石村)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옥봉면 전역과 성내면(城內面) 4동, 대안동(大安洞) 1동·2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道洞面) 옥봉리라 하였다.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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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안골마을에 있는 당산(堂山). 진주시 옥봉동 안골마을에 있는 당산(堂山)은 음력 정월과 7월 보름 밤 10시에 이루어지는 동신제를 치르던 곳으로, 신목(神木)으로 불리는 패구나무를 의미한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안골마을 뒤에, 말티고개 남쪽으로 위치해 있다. 당산(堂山)은 특별한 형태를 가진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패구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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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서 채록하였으나 진주시 전역으로 전승된 의적(義賊) 강목발이에 관한 설화.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3에 ‘의적 강목발이 (1)’이란 제목으로 처음 수록되었다. 1980년 8월 12일에 조사자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중안동에서 채록하였다. 제보자 이일해는 76세의 남성이다. 그 후 2003년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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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 조선 초기에 진주에는 강씨·하씨·정씨로부터 인물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성계는 진주 사정을 잘 아는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시켜 이곳의 지리를 살피게 하였다. 무학대사가 내려와 진주성에서 대봉산(大鳳山) 쪽을 바라보니 천하의 명당 자리였다. 대봉산은 “큰 봉황새가 사는 뫼”란 뜻인데, 무학대사는 이 산이 있기 때문에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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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17세기 초에 이루어진 진주의 사찬(私撰) 지리지. 지리지는 수록된 공간 범위에 따라 전국지인 여지(輿誌)와 지방지인 읍지(邑誌)로 나눌 수 있다. 또 지리지를 편찬한 주체에 따라 국가기관에서 만든 관찬(官撰) 지리지와 개인이 편찬한 사찬 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전국 단위의 지리지로는 『동국여지승람』이 대표적이다. 조선 중기 이후 활발하게 편찬된 읍지는 전국 지리지인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