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5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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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의미역 | Wooden Shoemaker's Day |
이칭/별칭 | 나막신쟁이의 날,나막신장이의 날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집필자 | 박기용 |
성격 | 기원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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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나막신쟁이 |
관련지명 | 옥봉동 말티고개 |
모티프 유형 | 매품을 팔다가 죽은 가난한 나막신쟁이 |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전승되는 모진 매를 맞다가 죽은 나막신장이에 관한 설화.
진주 지역에는 ‘나막신장이의 날’이 있는데, 이 날은 모질게 추운 섣달 스무 이튿날로서 소한(小寒)·대한(大寒)이 다 가고 난 뒤에도 추운 날이다. 설화 나막신쟁이날은 겨울이 다가는 어느 날 가난을 이기지 못하여 모진 매를 단돈 석 냥과 바꾸어 맞다가 죽은 나막신장이에 관한 애틋한 이야기이다.
1983년에 진주시가 편찬한 『내 고장의 전설』에 처음 수록된 이야기로서, 1994년 진주문화원에서 발행한 『진주문화』16집에 수록되었고, 지식산업사에서 2003년에 『진주 옛 이야기』에 다시 수록되었다.
옛날 옥봉동 말티고개 언덕바지에 마음이 착하고 유순한 나막신장이가 살고 있었다. 나막신이란 나무를 깎아 만든 밑이 높은 나무신을 말하는 것으로, 비가 오거나 눈이 올 때 주로 신었던 신인데, 살림이 구차하고 식구가 많은 나막신장이는 나막신을 만들어 팔아서 먹고살기가 너무 힘겨웠다. 이미 계절은 눈이 많이 오는 겨울이 다 가고 있는데, 장날이라 나막신장이는 신발을 가지고 나가기는 했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신이 팔리지 않아 양식도 못 사고 빈손으로 탈래탈래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주막 앞을 지나던 나막신장이는 부자가 매품 팔 삯군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돈 석 냥에 몸을 팔아 관가에 가서 매를 맞기로 작정하였다.
부잣집을 물어서 찾아가 말을 하자, 부자는 불쌍히 여겨서 저녁을 먹이고 관가의 호출장을 들려서 관가로 보냈다.
평소에 제대로 먹지 못한 나막신장이는 관가에서 매 서른 대를 맞고 돈 석 냥을 받아 말티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영양실조가 심했고 못 먹어 허약했던 나막신장이는 고개에서 그만 쓰러져 죽고 말았다. 나막신장이가 죽자 겨울이 다 지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이상하리만치 매섭고 모진 바람이 불고 추워졌다.
가족들은 밤이 되어도 나막신장이가 오지 않자 찾아 나섰으나 나막신장이는 말티고개에서 돈 석 냥을 손에 쥐고 이미 싸늘한 주검이 되어있었다.
그 뒤로 해마다 나막신장이가 죽은 날로부터 일 년이 되면 매서운 추위가 몰아쳤는데, 그 날이 동지섣달 스무 이튿날이었다. 이날을 진주 사람들은 ‘나막신장이의 날’이라고 불렀다.
이 설화는 자기가 사는 지역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현상을 설명할 목적으로 만들어낸 전설이다. 대한·소한이 지나고 입춘을 앞둔 때에 마지막으로 매서운 추위가 오는 이유를 매품을 팔다 죽은 가난한 나막신장이의 한(恨) 때문이라고 하였다.
날씨의 기원담은 전국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른 지역에서는 대개 영등날, 제주도는 영등할머니 오시는 날이라고 해서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 관한 설화가 전해오는데, 진주 지역에서는 나막신장이의 날이라는 진주 지역의 기후적 특성에 관한 설화가 전한다는 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