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소문리에 있는 문산성당의 초대신부. 권유량은 1905년 문산공소가 문산본당으로 승격되면서 부임한 진주 지역 최초의 신부이다. 다른 이름은 줄리엥 권이며,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1905년부터 1908년까지 3년간 문산성당의 초대신부로 재임하였다. 1932년 7월 7일부터 1933년 4월 1일까지 가톨릭 신문의 3대 사장을 역임하였다. 권유량 신부는 문산면 삼곡...
(1)소문리와 소촌역 문산읍의 소문리는 조선시대에 소촌역(召村驛)이 있었던 곳이다. 『여지도서』의 경상도 진주목 역원조(驛院條)에 의하면, 역의 책임자로 본래 역승(驛丞)이 있었으나 나중에 찰방(察訪)을 두었다고 한다. 찰방은 조선시대 각 도의 관찰사에 소속되어 도로의 역참(驛站)을 관할하던 종6품의 관직자로, 일정한 구간의 간선도로를 단위로 찰방 또는 역승을 두어 이를...
·관정(官井) : 지금의 성당터는 본래 조선시대 역(驛)이 있었던 장소로, 그 안에 물맛이 좋은 우물이 있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관정’이라고 하였다 한다. 동네사람들 중에는 지금도 소문리를 관정마을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성당골 : 현재 문산성당이 있는 곳으로, 1905년경에 천주교 문산교회가 설립된 후부터 그 부근을 성당골이라 하였다. ·장터 : 예전의 문산 장날은 주위...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 지역에 설립되었던 사립학교. 배명학교는 1906년 설립된 진주초등학교(晉州初等學校)의 다음가는 역사적인 학교로 많은 인재를 배출하였다. 교육사업을 통해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믿음 아래, 1924년 경상남도 문산 지역에 공립고등학교가 세워질 때까지 이 지역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일제에 항거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고 교육을 통하여 민족정신을 드높이고자...
천주교의 종교전례를 위한 건물. 1784년에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 신교의 자유가 획득된 1882년까지는 박해시기로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성당은 건립되지 못하고 교인들의 사가나 서당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종교의 자유가 획득되자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신부들은 박해시대 때 교회와 인연이 깊었던 곳이나 그 인근지역을 구입하여 성당을 건축하였다. 이 때 건축된 성당의 특이한 점은...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무촌리에 있는 성지. 정 안토니오는 본명이 정찬문(鄭燦文)이다. 진주지역의 천주교 선구자로서 안토니오는 그의 영세명이다. 조선 고종 3년(1866) 12월 20일 천주교박해 때 남강 백사장에서 순교하였다. 당시 백사장에 버려진 목 없는 시신만이 수습되어 고향인 사봉면에 몰래 묻혀 그의 묘는 ‘머리 없는 무덤’이라는 뜻에서 무두묘(無頭墓)라고 불렸다. 그동안...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북동에 위치한 성당. 1911년 진주 문산성당의 옥봉공소로 시작하여 진주지역 천주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러 차례 증축을 하여 창건 당시에 비해 규모는 커졌으나, 초기 건물의 간략한 로마네스크 양식이 잘 남아 있다. 1923년에 새 성당을 축성하였고, 1926년 옥봉공소가 문산본당으로부터 분리되었다. 사제들의 후생에도 힘을 기울여 1943년 사제관을...
사도(使徒)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교황을 세계교회의 최고 지도자로 받들고 그 통솔 밑에 있는 그리스도교의 교파.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소개된 것은 18세기 말엽이다. 당시 중국을 왕래하던 조선 사신들을 통해 시작된 중국의 선교사들과의 접촉으로 이루어졌다. 천주교의 정착은 직접적인 선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들은 실학운동에도 자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