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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532
한자 南江支石墓
영어음역 Namgang goindol
영어의미역 Namgang Dolmens
이칭/별칭 남강고인돌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문현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인돌
건립시기/연도 청동기시대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소유자 경상남도 진주시

[정의]

남강유역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개설]

청동기시대 남강 유역에는 최근 발굴 자료와 연구 성과로 통해 볼 때 고인돌, 돌덧널무덤, 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묘제가 분포하며, 이들 분묘는 묘역을 가지면서 거주 공간과 공존하거나 혹은 독립적인 형태로도 존재하고 있다.

남강 유역에서 발굴된 고인돌유적은 대평리, 상촌리, 내촌리, 귀곡동, 강루리, 사월리 유적(1기)의 6개 지점이며 그 수량은 대략 66기 정도이다. 그러나 발굴된 분묘 자료 중에는 덮개돌이 유실된 고인돌의 하부구조도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전체 수량은 늘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아직 미 발견된 고인돌유적이 다수 분포하고 있고, 그 동안 개간 등으로 파괴된 것을 합하면 적어도 남강 일대에는 수백 기 이상이 분포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위치]

남강유역의 대부분의 고인돌은 강 양안의 충적 대지상에 입지하고, 대촌 유적, 귀곡동 A 유적과 같이 구릉 사면이나, 내촌리 B 유적, 산청 사촌리 유적과 같이 저구릉의 정상에 위치하는 경우도 있다. 유적의 위치는 주거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구릉의 사면이나 정상에 위치하는 것은 고인돌의 성격변화에 따른 시기적인 차이도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남강유역에서 발굴된 고인돌은 현재 보고된 자료와 현장 설명회 자료를 통해 볼 때 뚜껑식[개석식] 고인돌이 주류를 이루며, 명확히 남방식 고인돌로 볼 수 있는 것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고인돌이 후대에 교란을 당하거나 유실되어 형식 구조가 불확실한 유구가 다소 존재하고 있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남방식 고인돌의 존재도 충분히 예상되므로 이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남강 유역 고인돌은 시기별로 형식구조의 변화와 돌널무덤, 돌덧널무덤, 독무덤 등 다양한 형태의 분묘들과 공존하거나 지역 사회의 내부 변동과 연계하면서 전개, 소멸되어 간 것으로 보이며, 시기에 따른 고인돌의 사회적 성격 변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크게 3단계의 변천과정을 상정할 수 있다.

Ⅰ단계는 민무늬토기의 편년상으로 전기에 해당되며, 소위 구멍무늬토기문화가 전개되는 시기이다. 이 단계의 묘제로 고인돌과 돌널무덤만 확인되고 있으며, 다른 묘제의 존재 여부는 아직 불분명하다. 이시기의 고인돌은 대평리 2호, 옥방2·3호 고인돌의 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규모의 장방형 묘역시설과 돌덧널형 매장시설을 갖추고 있다. 특히 독립적으로 존재하거나 수기 정도의 고인돌만 일정한 규범에 따라 규칙적인 배열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이 시기의 고인돌은 지역 집단 내에서 한정된 소수 계층, 다시 말하면 특정한 신분적 역할을 갖는 자의 묘제로 이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초기 고인돌이 민무늬토기시대 중기의 고인돌과 달리 군집성이 없고, 규모도 크고 정연한 점 등으로 미루어 집단성원의 일반적인 분묘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Ⅱ단계는 송국리형 문화가 성립되고 전개되는 시기이며, 민무늬토기시대 중기 전반에 해당된다. 이 단계에서는 Ⅰ단계와 달리 고인돌의 축조가 많아지고 수가 급증하는 양상을 보인다. 아울러 고인돌 이외 돌널무덤이 집단 성원의 일반적인 묘제로 널리 사용된다. 특히 고인돌이 군집성을 가지면서 수십 기씩 군을 이루며 배치되는 특징을 보이며, 북방식 고인돌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지상형 뚜껑식[개석식] 고인돌이 출현하여 유행한다. 이러한 양상은 전단계의 고인돌이 소수계층에만 한정하여 이용된 것에 비해 Ⅱ단계의 고인돌은 집단 공동의 묘제로도 이용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Ⅲ단계는 민무늬토기 편년상 중기 후반대에 해당되는 시기이며 송국리형 문화의 후반부에 속한다. 이 단계의 고인돌은 구조적으로는 묘역이 거의 소멸되고, 다른 묘제와 조합되면서 단독 혹은 수기씩 분포하게 된다.

이 단계가 되면 낙동강 하류지역에서는 기존의 고인돌, 돌널무덤 이외에 새로운 형태의 널무덤·돌덧널무덤 등 신묘제가 유행하고, 묘제의 종류가 다양화하는 특징을 보이는 반면에 고인돌은 일부 계층만 이용하는 등 그 수가 현격히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남강유역에서는 돌널무덤이 집단 성원의 묘로 성행하기도 한다. Ⅲ단계의 두드러지는 특징 중의 하나는 전단계에 비해 고인돌의 축조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대신에 돌널무덤·돌덧널무덤 등이 양적으로 증가하면서 고인돌 주위에 종속적인 관계로 배치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먼저 귀곡동 대촌 유적의 경우를 보면 1·3호 고인돌을 사이에 두고 돌널무덤 9기가 주위에 배치되어 있는데 1호 고인돌에는 3기, 3호 고인돌에는 6기의 돌널무덤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양상은 남강유역의 다른 유적에서도 확인된다. 이상의 유적 사례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인돌과 돌널무덤, 돌덧널무덤은 동일 묘역 공간 속에서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 묘제간의 이러한 관계는 피장자의 집단 내 위치와 고인돌의 사회적 성격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민무늬토기 중기부터 성행한 돌널무덤·널무덤·돌덧널무덤이 일반 집단 성원의 묘제로 간주한다면 고인돌은 집단 내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상위계층의 묘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자간의 관계는 혈연에 기반을 둔 친연관계 내지 사회적 역할에 따른 계층차를 반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현재는 남강댐 수몰지역에 포함되어 수몰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남강댐 수몰지역 종합 발굴을 통해 많은 발굴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남강유역의 매장문화양상 및 성격이 일부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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