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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607
한자 論介
영어의미역 Nongae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필자 김동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순국담
주요 등장인물 논개|김천일 장군|왜장
관련지명 촉석루|의암(義岩)
모티프 유형 논개의암에서 왜장을 안고 순국한 역사적 사실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논개 순국담의 하나.

[채록/수집상황]

논개의 순국 사실은 구전되어오다가 1620년경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譚)』에 채록되면서부터 문자화되었다. 논개가 순국한 바위에 ‘의암(義巖)’이라는 글자를 새겨 넣은 것도 이 시기의 일로 전해진다.

이후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촉석루 논개사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이은정(여, 65세)이다.

[내용]

논개김천일 장군과 함께 진주로 넘어왔다. 그러나 김천일 장군이 죽고 나자 논개는 너무 기가 막혔다. 논개는 치마에 돌을 싸서 성 위에서 아래로 던지고, 성을 올라오려는 왜병에게 물을 끓여 부었다. 그러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래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호국사(護國寺)의곡사(義谷寺)를 다니면서 몰래 사람들을 만나 왜군을 이길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다. 마침내 논개김천일 장군과 함께 온 세 사람과 짜고 논개 자신이 술과 안주로 일본 장수를 유인할 때 그들이 옆에서 거들어 주기로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논개는 석산(石山)에서 기생으로 가장하였다. 그러고는 왜군 병사에게 일본 장군과 놀았으면 좋겠다고 하자 이를 그들 장수에게 전해주어 왜장이 나타났다. 논개는 지수문(指手門) 아래 바위에 가서 술 한 잔 먹자고 했다. 논개는 미리 짠 세 사람에게 자신이 왜군 장수를 안고 떨어지면 당신들은 바위틈에 숨어 있다가 솟아 올라오는 왜장을 창으로 찔러 죽이라고 말해두었다. 그리하여 논개와 세 사람은 왜장을 죽이고 자기들도 함께 강물에 떨어져 죽었다.

[모티브 분석]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었을 때 진주 의기(義妓) 논개가 왜군 손에 죽은 최경회 장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만취한 왜장 가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文助]를 끌어안고 의암에서 남강으로 투신한 사건이 기본 모티브이다. 그런데 『한국구비문학대계(韓國口碑文學大系)』8-3에는 김천일 장군이 등장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주 기녀 논개김천일 장군이 왜군에게 목숨을 잃자 왜장과 함께 의암에서 순국하였다는 충혼을 기린 전승담이다. 그러나 논개가 사랑한 장수는 이 이야기와는 달리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라는 설이 압도적이다. 한편 장수와 함양에서 전해오는 논개의 일생은 또 다르다. 열네 살 되던 1587년 아버지 주문달이 죽고 숙부에 의해 토호 김풍헌의 민며느리로 팔릴 처지가 되자 외가인 안의의 봉정마을로 피신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풍헌이 당시 장수 현감 최경회에게 말해 심문을 받게 했는데, 최경회논개 모녀를 무죄로 인정했다.

논개는 18세 되던 1591년 봄에 최경회와 부부 인연을 맺었고, 최경회가 1593년 경상우도 병마절도사로 진주성싸움에서 순절하자 논개도 왜장과 함께 의암에서 순국했다. 그 후 진주성싸움에서 살아남은 장수 의병들이 최경회논개의 시신을 건져 고향에 장사지내려고 운구해 오던 중 함양군 서상면 방지리 골짜기에 묻었다고 한다.

이처럼 논개와 관련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전승되고 있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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