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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272
한자 書院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손병욱

[정의]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先賢祭享)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 자치운영기구.

[서원의 역할]

서원의 기능과 역할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즉 공부하는 곳, 선현을 모신 곳, 향촌사회의 도서관이 바로 그것이다. 이 가운데 종교행사와 관련된 서원의 역할은 선현을 받들어 모시는 곳이다. 특히 조선 후기에 이르러 교육의 기능보다 사묘(祠廟)의 기능이 더 강조되면서 이러한 종교적 장소로서의 역할이 중시되었다.

문중에 의해서 서원이 건립되고 조상 가운데 뛰어난 인물이 제향되면서 학덕보다는 충절로 이름 높은 인물들이 배향의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이들을 받들어 모시는 것을 보다 중요시하면서 서원의 기능은 점차 변질되어 갔다. 그리하여 조선 후기에 있어서의 서원은 단순한 사우[사당]까지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이해되었다.

[서원의 유래]

유교는 숭조보본(崇祖報本)을 중시하는데, 이것이 숭현사상(崇賢思想)으로 발전하여 드디어 사묘(祠廟)제도를 낳았다. 보통 사묘라고 하면 가묘를 비롯하여 생사(生祠), 사우, 영당(影堂) 등 여러 형태가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생사와 사우가 대체로 서원으로 발전하였고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예컨대, 중종 때 경상도 상주에 손중돈(孫仲暾)의 생사가 세워졌는데, 이것이 뒤에 경현사(景賢祠)로 바뀌어 서원과 유사한 형태를 구비하더니 마침내 속수서원(涑水書院)으로 발전한 것을 들 수 있다. 한편 조선왕조는 숭유 정책의 일환으로 국가 발전에 공이 큰 사람을 사후에 제향하는 사우의 설립을 장려하여 도처에 사우가 생겨났으니, 단군, 기자, 김유신, 신숭겸, 이순신, 권율, 임경업, 송상현, 김천일 등을 모시는 사우가 그것이다. 사우의 특징은 문묘 배향에서 제외된 무장들이 제향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서원에 모셔진 인물이 학덕을 기준으로 삼은데 비해서 사우는 충절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까 무(武) 계열의 인물들이 배향될 수 있었던 것이나, 서원으로서 격이 높은 사액서원(賜額書院)에 순수한 무장이 배향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서원의 조직]

서원에서는 봄, 가을로 배향 인물에 대하여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도 때가 되면 전국에서 유림들이 의관을 정제하고 해당 서원에 모여 제사를 지내고 서원이나 문중에 관계된 일을 논의한다. 이를 위해 서원에는 엄격한 원임조직(院任組織)이 편성되어 있는데, 원규(院規)에 따른 조직의 직명은 대략 원장, 원이(院貳), 강장(講長), 훈장(訓長), 재장(齋長), 집강, 도유사, 부유사, 직월, 직일, 색장(色掌), 장의(掌議), 유사로 구성되며, 이들이 서원에서의 교육활동과 제사 업무를 관장하였다.

[서원의 종류]

서원은 크게 사액서원과 향사서원(享祀書院)으로 구분된다. 사액서원은 임금이 그 서원의 현판을 하사한 서원이다. 이는 임금이 그 서원에 대해서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반증으로서 그 서원에서 주향(主享)된 인물이 누구냐 하는 것과 관련이 깊다. 일반적으로 그가 널리 이름이 알려진 유학자일 경우만 사액서원이 될 수 있다. 향사서원은 일반서원과 사우를 통칭하는 명칭이되, 구체적으로는 사우·강당·정사·재·정을 모두 포괄한다.

[진주의 서원현황]

이제 서원에 대한 이러한 개략적인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진주 일원(구 진양군 지역 포함)의 서원현황에 대해서 사액서원과 향사서원의 순으로 표를 이용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표1]T0394

이외에도 진주시 일원에는 대단히 많은 향사서원들이 존재하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이처럼 진주지역에 서원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유학이 성하였고 이 지역에서 배출한 인물이 많았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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