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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982
한자 鄭陟
영어음역 Jeong Cheok
이칭/별칭 명지(明之),정암(整菴),창재(暢齋),공대(恭戴)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태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성별
생년 1390년(공양왕 2)연표보기
몰년 1475년(성종 6)연표보기
본관 진양(晋陽)
명지(明之)
정암(整菴)|창재(暢齋)
시호 공대(恭戴)
대표관직 지중추원사|판한성부사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양. 자는 명지(明之), 호는 정암(整菴)·창재(暢齋). 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설(鄭舌)이며, 어머니는 진주강씨(晋州姜氏)로 산원(散員) 강우(姜祐)의 딸이다.

[생애]

1408년(태종 8)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었고, 1414년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교서관정자가 되었다. 세종대에서 세조대에 걸쳐 지승문원사, 첨지중추원사를 거쳐 공조·호조·예조의 참의, 판한성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1449년에는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예조참판이 되었으며, 그때 양계의 지도를 만들어 바쳤다. 1463년(세조 9)에는 양성지(梁誠之)와 함께 『동국지도』를 만들어 바쳤고, 그해에 부사과가 되었다.

해서(楷書)와 전서(篆書)에 뛰어나 나라의 새보(璽寶)와 관인(官印)의 글씨를 맡아서 썼다. 또한, 전고(典故)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의제(儀制)도 찬하였다.

[상훈과 추모]

청백리로서 세조가 항상 말하기를 "세종(世宗)께서 청직(淸直) 두 글자로서 경(卿)을 허락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남아 있다"라 하고 이어 옷과 말을 하사하였다. 『여지승람(輿地勝覽)』 에 기록이 있다. 시호(諡號)는 공대(恭戴)이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라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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