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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3206
한자 晋州八景
영어음역 Jinju Palgyeong
영어의미역 Eight Scenic Views of Jinju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필자 박노정

[정의]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진주성 촉석루, 남강 의암, 뒤벼리, 새벼리, 망진산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 해돋이, 진양호 노을 등 여덟 곳의 비경.

[진주의 풍경]

진주는 예로부터 산과 들과 강을 끼고 있는 천혜의 고을이다. 조선시대 대표적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형승조(形勝條)」에는, 고려 명종 때의 문인 이인로(李仁老)[1152~1220]가 지은『파한집(破閑潗)』의 내용을 인용하여 “진양의 시내와 산의 경치는 영남에서 제일이다(晋陽溪山勝致爲嶺南第一)”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밖에도 진주읍지인 『진양지』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진주 주위의 산과 강을 배경으로 하는 터전의 입지를 밝히고 있는데, 자연풍광은 그야말로 천혜의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진주는 오래 전부터 진주 산수를 예찬한 많은 시문을 여러 문집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1996년 12월 진주문화원에서는 진주의 빼어난 풍광을 노래한 주옥같은 한시 500여 수와 현대시 150여 편을 찾아내 1차로 『진주예찬(晋州禮讚)』을 펴냈다. 가장 오래된 한시는 최해(崔瀣)[1287~1340]의 「진주산수(晋州山水)」를 시작으로 민사평(閔思平)[1328~1396]의 「진주강산」, 목은 이색(李穡)[1328~1359]의 「촉석루」·「진주성」·「남강」·「진양산수」 등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밖에 고려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인물 중 이름 있는 옛사람들의 작품을 훑어보면, 정몽주(鄭夢周), 정이오(鄭以吾), 하연(河演), 김종서(金宗瑞), 황보인(皇甫仁), 정인지(鄭麟趾), 노사신(盧思愼), 조위(曺偉),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조식(曺植), 김성일(金誠一), 성여신(成汝信), 유몽인(柳夢寅) 등의 시문이 들어 있는데, 대개 촉석루남강, 그리고 진주성을 노래하고 있다.

다음에 진주풍광의 대표적인 진양산수와 촉석루를 노래한 이색양응정(梁應鼎)의 한시를 함께 소개한다.

진양산수(晋陽山水)

이 색

晋陽山水久知名(진양산수구지명)

競秀爭流氣像淸(경수쟁류기상청)

幕府日長宜坐嘯(막부일장의좌소)

何人爲我好謀成(하인위아호모성)

진양의 산수를 오래 전에 그 이름 알았더니

성하고 뛰어난 풍류는 기상이 맑구나.

막부에 해가 길어 앉아서 휘파람을 부는데

어느 누가 나를 위해 좋은 꾀를 이루게 해주랴!

* 막부(幕府) : 대장군의 본영(本營)

촉석루(矗石樓)

양응정

少日常思歷九區(소일상사역구구)

暮年來倚此江樓(모년래의차강루)

當筵唱咽雲留陣(당연창인운류진)

滿壁詞雄水倒流(만벽사웅수도류)

峽裡紫崖元矗立(협리자애원촉립)

霜餘紅葉正飄浮(상여홍엽정표부)

無妨過景陶情性(무방과경도정성)

妙割應煩後作州(묘활응번후작주)

젊어 천하 돌기를 늘 생각했더니

만년에 여기 와서 이 강루에 기대 섰다.

이 자리 노래 울려 구름이 진을 치고

벽 가득히 걸린 사웅, 물도 거슬러 흐러거니

두메에 붉은 절벽 그대로 우뚝한데

서리 묻은 단풍잎이 나부끼며 나타난다.

분에 겨운 경치에 젖어듦을 막지 마라

묘함을 덜고 번거로움 줄여 이 고을을 이뤘다.

* 사웅(詞雄) : 시와 글

* 양응정은 조선 명종·선조 때 사람이다.

[옛 진주 12경 및 10경]

천혜의 풍광, 빼어난 경치에 자부심을 가진 진주 사람들은 일찍부터 진주의 풍경을 사랑하고 아끼며 널리 알리고자 하는 마음을 펼쳤으리라 짐작된다. 그런 마을들이 모여 진주 12경 (1)·(2)와 진주 10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제정 연대나 참여한 사람들의 기록은 보이지 않고, 진주시에서 발간한 『진주시사』와 『내 고장의 전통』·『진주의 뿌리』, 진주문화원에서 발간한 『진주예찬』과 『진주의 역사와 문화』에 그 내용이 소개되어 전해지고 있다.

한편, 옛 진주 12경과 10경 제정의 과정을 제대로 살펴볼 수 없어 안타깝지만, 1986년 진주시가 발간한 『내 고장의 전통』의 ‘진주 12경’ 해설 끝에 기록자는 옛 모습을 잃어가는 풍경들의 자취를 전하며 아쉬움을 이렇게 달래고 있다.

“이제 세월은 흘러 연꽃과 낚시 배도 사라졌지만, 푸른 대밭이며 까마귀도 현대문명에 밀려 그 자취 찾아볼 길 아득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진주 12경은 생활에 시달린 시민의 마음을 달래주고 메마른 세정 속에 낭만과 서정을 품게 하니 어허! 우리 고장 좋을시고”

[옛 진주 12경(1)]

○ 제1경 촉석임강(矗石臨江) : 장중하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촉석루 그림자가 잠긴 강물 위에 흰 구름 두둥실 떠서 물새가 노니는 것을 으뜸으로 삼는다.

○ 제2경 의암낙화(義巖落花) :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순절한 의암 위에 춘삼월 꽃잎이 날려 와서 흰 눈처럼 너울거리는 경치는 절로 술잔을 들게 하지 않는가.

○ 제3경 망미고성(望美古城) : 영남 포정사인 망미루에서 내성과 외성을 바라보노라면 아침저녁의 밥 짓는 연기 속에 괴롭고 시끄러운 속세를 잊은 무아의 경지를 뉘 잊으리.

○ 제4경 비봉청람(飛鳳靑嵐) : 진주의 주봉인 비봉산의 묵은 나무에 파아란 새순이 돋아나고 아지랑이 춤추는데, 나물 캐는 처녀들의 노랫소리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 제5경 호국효종(護國曉鐘) : 한도 많은 그믐달이 서산에 기울고 서장대남강에 달그림자 꼬리를 물며 벌레 울음도 잠든 새벽, 호국사의 첫 종소리와 목탁소리는 가히 신선의 경지다.

○ 제6경 수정반조(水晶返照) : 수정봉의 순천당 산마루에 노을이 지고 까마귀는 집을 찾아 돌아온다. 가을에 물든 단풍잎이 함께 어울려 붉게 비칠 때 멀리 님 소식 전하러 가는 기러기의 행렬에 인생의 향수를 느낀다.

○ 제7경 풍천표아(楓川漂娥) : 강변 아낙네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에 물오리 날고 낚싯배는 한가히 물에 떴는데 맑은 바람이 불어와서 여인의 머리카락 날리면 절로 시 한수 나올 법하다.

○ 제8경 청평총죽(菁平叢竹) : 배 건너 대밭은 물 먹어 이끼 푸르고 아침저녁으로 모여드는 수천 마리의 까마귀 울음은 임진란 가신님의 고혼을 부르는 듯 길손의 가슴을 칼로 에이는 듯하다.

○ 제9경 진소연화(晋沼蓮花) : 지금은 메워져 없지만 진영(陣營) 못 큰 둘레 속에 수많은 연꽃이 피어 있고, 진주성 북장대 높은 다락에서 속세를 굽어보니 잉어 한 마리 물을 차고 뛰어오른다.

○ 제10경 선학노송(仙鶴老松) : 뭇 사람들 땅에 묻히고 소슬바람 고개를 넘을 때 고개 위에 우뚝 솟은 천년 노송은 사시사철을 버티어 있다.

○ 제11경 남산행주(南山行舟) : 진주성은 마치 남산(南山)을 향하여 물결을 차고 돌진하는 전함마냥 되어 있고 구정칠택(九井七澤)이 전설을 안고 도사렸다.

○ 제12경 아산토월(牙山吐月) : 동쪽 멀리 우뚝 솟은 월아산(月牙山)이 달을 머금고 보름달을 토해내는 장관은 천하일품이 아닐 수 없다.

[옛 진주 12경(2)]

○ 제1경 촉석양풍(矗石凉風) : 촉석루의 소슬바람

○ 제2경 향교야우(鄕校夜雨) : 향교의 밤비

○ 제3경 의곡홍엽(義谷紅葉) : 의곡사의 단풍

○ 제4경 북장망춘(北將望春) : 진주성 북장대의 봄맞이

○ 제5경 의암청람(義巖靑嵐) : 의암의 샛바람

○ 제6경 망경추월(望京秋月) : 망경대의 가을 달

○ 제7경 성지한월(城地寒月) : 진주성지의 겨울 달

○ 제8경 남강도의(南江搗衣) : 남강의 빨래

○ 제9경 옥봉모설(玉峰暮雪) : 옥봉의 늦은 눈

○ 제10경 오암유형(鼯巖流螢) : 뒤벼리의 개똥벌레

○ 제11경 섭천춘무(涉川春霧) : 섭천의 봄안개

○ 제12경 대사지연(大寺池蓮) : 대사지의 연꽃

[옛 진주 10경]

○ 제1경 아산명월(牙山明月) : 산에 밝은 달은 월아산이 분명하다.

○ 제2경 풍천모범(楓川暮帆) : 풍천에 배를 띄워 저문 돛대 거동이다.

○ 제3경 의암낙화(義巖落花) : 강 속의 높은 바위 의기마저 이름 높다.

○ 제4경 봉산귀운(鳳山歸雲) : 봉이 간 지 500년에 비봉산은 그냥 있네.

○ 제5경 학령고송(鶴嶺孤松) : 선학은 어디가고 외로운 솔만 빼어나노.

○ 제6경 천전수죽(川前修竹) : 청천에 모래가 많아 기룬대가 빽빽하구나.

○ 제7경 적벽표아(赤壁漂娥) : 일대장강 적벽 아래 빨래하는 소녀들아.

○ 제8경 산사효종(山寺曉鐘) : 늙은 승아 자지 마라 쇠북 소리 요란하다.

○ 제9경 망경청람(望京靑嵐) : 망경대 높았는데 맑게 개여 아지랑이 솟네.

○ 제10경 수정낙조(水晶落照) : 수정봉이 맑은데 석양빛이 걸렸구나.

[진주 8경의 선정 배경]

진주는 옛날부터 살기 좋고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다. 조상들은 진주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풍광 12곳을 선정하여 물려주었지만, 지금은 각종 개발과 자연 훼손으로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드물다. 망미고성(望美古城)[영남포정사 망미루]에서 내·외성을 바라보면 밥 짓는 연기가 나는 풍경)의 경우, 진주성 안에는 이제 민가가 사라져 이와 같은 풍경을 찾을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아산토월(牙山吐月 : 월아산이 달을 머금고 보름달을 토해 내는 장관)의 경우, 지금은 월아산 사이로 도로가 뚫려 옛 멋을 그대로 느낄 수 없다.

때마침 진주의 자연을 보전하고 풍류를 되찾자는 의미로 진주12경이나 진주8경을 새롭게 정하자는 여론이 일었다(『진주신문』 1997년 2월 10일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민들의 공감대를 토대로 하여 ‘진주문화 사랑모임’에서는 새로 ‘진주8경’을 제정하기로 했다. “시민들의 뜻을 모아 진주를 대표할 만한 명소를 선정하여 공개토론 등의 절차를 거쳐서 새로운 진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찾자”는 취지를 담고 진주시민을 대상으로 진주8경 후보지 추천을 공모하기로 했다.(‘진주문화 사랑모임’ 기록 참조)

[진주 8경 선정 과정]

1997년 5월 12일, 추진할 사업을 결정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추진위원회에는 진주시장과 진주시의회 의장을 포함하여 각계각층의 대표자급 인사 10명의 고문과 10명의 상임지도위원을 두었으며, 회장과 추진위원장, 사무국장, 간사가 각 1명을 정하였다.

이어 7월 15일에는 1,500만원의 예산을 책정하고, 8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진주8경의 후보지 추천 접수가 공고되었다. 11월 13일에는 공모 추천에 참가한 시민을 위한 상품 시상을 하였고, 다음해인 1998년 3월 17일 각계인사 33명이 참가하여 신 진주8경 심의위원회를 열었다.

같은 해 6월 18일에는 경남지역사회연구원에서 시민공청회가 열렸으며, 7월 24일에 국문학 교수 초청 간담회가 열렸다. 이어 9월 12일에 열린 진주문화사랑 전체회의에서 신 진주8경을 확정하였고, 12월 15일에 진주문화통권 24호(진주문화원 1998)에 제정백서를 발표하였으며, 1999년 10월 8일 드디어 ‘진주8경’이 제정, 공표되었다.

‘신 진주8경’ 후보지 추천에 참여한 시민은 1000명이 넘었는데 시민 추천 후보지는 다음과 같았다.

1. 촉석루남강 의암 (918회)

2. 월아산 일출과 금호못 (883회)

3. 남강변의 진주소싸움 (827회)

4. 영남포정사진주성 (803회)

5. 망진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진주 전경 (771회)

6. 진양호의 저녁노을 (696회)

7. 남강 대나무 숲과 뒤벼리 (603회)

8. 남가람 문화거리 (413회)

9. 개천예술제 야경 (263회)

10. 선학산에서 바라본 촉석루남강 (210회)

이외 총 45곳의 후보지가 추천되었다.

[진주 8경 제정 의의와 평가]

진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진주 12경이나 10경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때로 뛰어난 풍광을 되뇌이면서 외지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자랑거리로 삼기도 했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도 지리적·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진주 풍광으로 빚어진 풍류는 진주 사람들로 하여금 자부심을 갖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풍광 하나하나에 부여된 이름과 해설은 완벽한 구성으로 빛을 더하며 사람들 가슴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군데 옛 모습이 아예 없어졌거나 소실되어가고 있는 과정 중에 시대와 현실에 맞는 진주 풍광을 새롭게 제정하고 가꾸어 나가자는 여론이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때맞추어 1995년 6월 12일 진주문화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진주정신을 드높이며 진주를 질 높은 문화도시로 가꾸자는 취지를 담고‘진주문화 사랑모임’이 만들어졌다. 진주의 각계각층에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는 60여명의 인사들이 모인 자리에서였다.

이 자리에서는 지방자치의 진정한 의미는 주민자치와 함께 문화자치에 있음을 인식하고 네 가지 기치를 내세우게 된다. 첫째, 진주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가다듬어온 올곧은 진주정신과 진주문화 사랑에 헌신한다. 둘째, 진주문화의 재인식과 창조의 앞소리꾼이 된다. 셋째, 진주문화의 발전을 위해 관계기관 단체와 유대를 공고히 한다. 넷째, 진주문화의 창조를 위해 세대·계층 간의 이음새 역할을 한다. 진주 문화사랑 모임은 위와 같은 기치와 함께 실천운동 전개를 선언하였다. 창립 이후 실천운동의 성공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1995년 광복 50주년 통일 기념 봉화제를 열면서 일제가 파괴한 진주 망진산 봉수대 복원사업을 전개했다. 진주시민과 출향인사 등 2,000여명이 참여하여 문화재 전문위원들의 감수와 고증을 거쳐 1996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준공식을 갖고 진주에 기부 채납했다.

망진산 봉수대 복원사업과 함께 진주문화사랑 모임이 큰 의미를 두고 실천운동을 전개한 것은 3·1절 독립만세운동 재현이다. 이 일은 1919년 진주에서 일어났던 기생독립단과 걸인독립단의 만세운동을 재현하여 그 의미를 되새기고,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추진한 사업이었다. 기미년 3월 19일 진주권번의 기생들이 “우리가 이 자리에서 칼에 맞아 죽어도 나라가 독립되면 여한이 없겠다”고 외치며 남강 변을 돌아 촉석루까지 행진했던 경로를 고스란히 재현한 것이다. 1996년 2월 29일, 2,50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한 문화 복원운동으로, 이후 2005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재현운동을 전개했다.

이밖에도 틈틈이 시민문화강좌를 개최하여 지역문화의 개념정리와 활성화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앞에 살펴본 바와 같이 진주문화사랑 모임은 진주문화의 앞소리꾼을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문화시민단체다.

‘진주8경’제정의 전 과정을 통하여 시민사회와 공감대를 형성하며 마무리를 짓는 솜씨는 이미 봉수대 복원과 걸인·기생독립단 3·1만세 운동재현으로 다져진 경험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 생각된다. 특히 민·관을 아우르는 인사들이 참여하는 추진위원회 구성과 시민들로 하여금 8경 후보지를 직접 추천토록 한 점, 공청회와 심의과정을 두루 거치면서 투명하게 결론을 도출해내는 전 과정은 시민사회의 신뢰를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은 자치시대의 시민사회단체가 지향할 바를 여러 모로 시사해주고 있다. 요즘 진주시 청사나 동사무소, 민간업체 등에서 진주8경의 사진을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진주8경 선정 작업은 당당하게 시민사회의 공인을 받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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