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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촉석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337
한자 晉州矗石樓
영어음역 Jinju Chokseongnu Pavilion
이칭/별칭 남장대,장원루(壯元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지도보기
시대 고려/고려 전기
집필자 정의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누각
건립시기/연도 1241년연표보기
관련인물 논개|이승만|정현복|정명수
정면칸수 5칸
측면칸수 4칸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 진주성
소유자 경상남도 진주시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
문화재 지정일 1983년 7월 20일연표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6호
문화재 지정일 2020년 6월 11일연표보기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는 누각.

[명칭유래]

호정 하륜이 지은 「촉석루기(矗石樓記)」에 의하면 남강 가에 뾰족뾰족한 돌들이 솟아 있는 까닭에 그 모습을 따서 누각의 이름을 촉석루라고 지었다고 하나, 다른 일설에 의하면 촉석산에서 돌을 캐다가 누각을 지었으므로 촉석루라고 하였다고도 한다.

진주성의 남장대 혹은 장원루라고도 불린다. 전자의 남장대라는 이칭에서는 지휘 장대로, 후자의 장원루라는 별칭에서는 시험장으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건립경위]

전쟁 때에는 지휘본부로, 평화로운 때에는 과거를 치르는 시험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241년(고려 고종 28)에 목사 김지대가 처음 지었고, 1322년(충숙왕 9)에 목사 안진이 재건하는 등 8차례의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고는 하지만, 1365년(고려 공민왕 14)에 처음 세워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위치]

촉석루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 내에 있으며 남강을 접한 위치에 있다.

[변천]

1379년(우왕 5)에 왜구가 불태운 것을 그 뒤 1413년(조선 태종 13)에 진주 출신의 영의정 하륜이 제안하고, 고을사람들이 비용을 모아 당시 진주목사였던 권충과 판관 박시결이 주선하여 세 번째로 재건하였다. 이때 총감독은 용두사 주지 단영이 맡았으며 1491년(성종 22)에 목사 경임(慶紝)이 네 번째로 재건하였다. 그 후에도 1583년(선조 16)에 목사 신점이 다섯 번째로 재건하였고 1618년(광해군 10) 병사 남이흥이 여섯 번째로 재건, 1725년(영조 원년)에 병사 이태망에 의하여 일곱 번째로 중수되었던 건물이다.

1948년에는 국보 제276호로 지정되기도 하였으나, 또 다시 6·25전쟁 중에 불타버린 것을 시민들이 힘을 모아 진주 고적보존회를 만들어 1960년에 여덟 번째로 중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73년에 재건된 팔작지붕의 와가(瓦家)이다.

[형태]

현재의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다락집으로 팔작지붕 목조와가이며 누각의 돌기둥은 경상남도 창원시의 촉석산에서 채석한 것이며 대들보는 오대산에서 벌채한 것이다.

[금석문]

촉석루 현판 북쪽의 것은 영조 때의 명필 송하 조윤형의 글씨이며 남쪽의 것은 원래는 이승만 대통령의 것이었으나 민주당이 집권하면서 그 판을 깎아 유당 정현복의 글씨로 바꾸었다. 남장대는 은초 정명수의 글씨이고 영남제일형승은 청남 오제봉의 글씨이다.

[현황]

현재의 건물은 1973년에 재건된 것으로, 1983년 7월 20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8호로 지정되었고, 2020년 6월 1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6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주를 대표하는 건물로 수차 중수되었으며 비록 몇 차례에 걸쳐 재건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의기 논개가 낙화, 순국한 곳이기도 하여 유적으로서의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10.06 내용수정 “촉석루 → 진주 촉석루”로 항목명 변경 “2020년 6월 11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666호로 지정되어” 로 현황 추가
이용자 의견
김동현 경남도 유형문화재로 승격한 내용을 추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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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기하신 의견에 따라 내용수정을 완료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20.0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