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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총통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30038
한자 天字銃筒
이칭/별칭 천자포,천자 화포
분야 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제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555년 10월연표보기 - 천자총통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78년 12월 7일연표보기 - 천자총통 보물 64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천자총통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국립 진주 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원소재지 국립 중앙 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성격 화포
재질 청동
크기(높이,길이,너비) 1.31m[총길이]|1.16m[포신 길이]|12.8㎝[포 구경]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 진주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 화포.

[개설]

천자총통 은 1555년(명종 10) 10월 장인 양내료동(梁內了同)이 주조한 것으로, 조선군이 조선 후기까지 사용하던 화기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화포이다. 1978년 12월 7일 보물 64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청동으로 만든 유통식(有筒式) 화포이다. 포신(砲身)에 8개의 굵은 마디[竹節]와 손잡이 2개가 있다. 화포의 총길이는 1.31m, 포신 길이는 1.16m, 포구 지름은 12.8㎝이다. 포구와 마디[竹節] 사이에 화포의 명칭과 무게, 제작 연도와 장인 등의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명문 내용은 “가정 을묘 십월 천사백구십삼근십량 장 양내료동(嘉靖乙卯十月天四百九十三斤十兩匠梁內了同)”이다. 현재 포신 자체는 별다른 손상이 없으나 원래 포신의 상하부에 조성되어 있던 손잡이[擧金] 두 개는 모두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각종 포의 크기에 따라 제일 큰 것부터 차례로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천자총통(天字銃筒)·지자총통·현자총통(玄字銃筒)·황자총통(黃字銃筒) 혹은 화포 등으로 불렀다. 천자총통은 조선 시대에 사용하던 대형 화포 중에서 가장 클 뿐 아니라 원거리에 발사할 수 있는 화포였다. 세종(世宗) 이전 대부터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1425년(세종 7) 1월 전라 감사가 천자철탄자(天字鐵彈子) 1,104개를 새로 주조했다는 내용이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처음 등장한다.

16세기에 제작된 천자총통·지자총통은 총통 전체에 마디가 있고, 총통의 약통(藥筒)과 격목통(檄木筒) 경계 지점에 마디 두 개를 겹쳐 조성하여 총통의 약통 부위와 격목통 부위를 겉에서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들 화포는 대형 화살이나 철환을 넣어 사용하였는데, 천자총통은 대장군전(大將軍箭)을 쏘아 1,200보를 나가고, 수철연의환(水鐵鉛衣丸)을 쏘아 10여 리를 날아간다고 하였다.[『융원필비(戎垣必備)』]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로서 수군의 연승에 큰 역할을 한 조선군의 대표적인 화포이다.

[의의와 평가]

천자총통 은 1555년(명종 10) 5월 을묘왜변(乙卯倭變)이 일어난 이후에 제작된 화포이다. 조선군의 방어 체제를 정비하면서 제작된 화포로서 조선 전기의 화포 형태와 발달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총통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에도 조선 수군의 무기 체계로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더욱 역사적 의미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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