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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총통(1986-1)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30014
한자 地字銃筒-
이칭/별칭 천자포,천자 화포
분야 문화유산/유형 유산,정치·경제·사회/과학 기술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제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557년 3월연표보기 - 지자총통(1986-1)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1986년 3월 14일연표보기 - 지자총통(1986-1) 보물 제86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지자총통(1986-1)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국립 진주 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원소재지 국립 중앙 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동6가 168-6]
출토|발견지 강화 무기고 - 인천광역시 강화군
성격 화포
재질 청동
크기(높이,길이,너비) 89.5m[총길이]|80.5m[통신 길이]|10.5㎝[포 구경]|73㎏[중량]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 진주 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화포.

[개설]

지자총통(1986-1)(地字銃筒) 은 1557년(명종 12) 3월 김해부(金海府)의 도회(都會)에서 장인 김연(金連)이 주조하였다. 조선군이 사용하던 화기 중 천자총통 다음으로 규모가 큰 화포이다.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은 편이고, 국방 과학 기술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인정되어 1986년 3월 14일 보물 제862호로 지정되었다.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지자총통(1986-1) 은 유통식(有筒式) 화포이다. 청동제로 포신(砲身)에 9개의 굵은 마디[竹節]가 있는데 격목통(檄木筒) 부위만 쌍조(雙條)이다. 또 손잡이[擧金]는 상하 부분에 두 개가 조성되어 있다. 포신은 포구 쪽에서 화약을 넣는 약통 쪽으로 갈수록 두툼하게 만들었다. 화포의 전체 길이는 89.5㎝, 포신 길이는 80.5㎝, 포 구경은 10.3㎝이다. 포구와 마디[竹節] 사이에 화포의 명칭과 무게, 제작 연도와 장인 등의 명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명문 내용은 “지가정 삼십육년 삼월일 김해부도회 감관전책관 이대윤 장인 김연(地嘉靖三十六年三月日金海府都會監官前柵官李大胤匠人金連)”이다. 현재 포신 자체는 별다른 손상이 없으나 포신의 상하부에 조성되어 있었던 손잡이[擧金] 두 개는 모두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특징]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각종 포의 크기에 따라 제일 큰 것부터 차례로 천자문의 순서에 따라 천자총통(天字銃筒)·지자총통·현자총통(玄字銃筒)·황자총통(黃字銃筒) 혹은 화포 등으로 불렀다. 지자총통천자총통 다음으로 큰 화포로 조선 태종(太宗) 때 개발되었고, 1445년(세종 27)에 이르러 세종(世宗)의 화약 병기 개발 정책에 따라 성능을 개량, 발전시켰다.

16세기에 제작된 천자총통·지자총통은 총통 전체에 마디가 있고, 총통의 약통(藥筒)과 격목통(檄木筒) 경계 지점에 마디 두 개를 겹쳐 조성하여 약통 부위와 격목통 부위를 겉에서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이들 화포는 대형 화살이나 철환을 넣어 사용하였는데, 지자총통은 조란환(鳥卵丸) 200개나 장군전(將軍箭)을 쏘아 사거리가 800보에 이른다고 하였다[『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 임진왜란 때에는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의 주력 무기로서 수군의 연승에 큰 역할을 한 조선군의 대표적인 화포이다.

[의의와 평가]

지자총통(1986-1) 은 1555년(명종 10) 5월 을묘왜변(乙卯倭變)이 일어난 이후에 제작된 화포이다. 조선군의 방어 체제를 정비하면서 제작된 것으로, 조선 전기 화포 형태와 발달사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는 의미 있는 총통이다. 특히 지자총통(1986-1)임진왜란 때에도 조선 수군의 무기 체계로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고, 최초 보관처인 국립 중앙 박물관의 기록에 조선 시대에 강화무고(江華武庫)에서 옮겨 왔다는 이력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까지 활용된 무기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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