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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마성마을-역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T06004
한자 寺奉面 北馬城마을-歷史
이칭/별칭 마르등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역사]

조선시대 내내 상사리(上寺里)로 부르다가 1906년 칙령 제49호에 의해 잠시 함안군으로 이속되기도 하였다. 1914년 사봉면이 되고 그 아래 6개의 행정리(行政里)를 가지게 되었다.

사봉면에 소속된 마성리북마성마을과 남마성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북마성마을은 현재 진양 정씨들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마을의 70호 중 타 성씨는 없다고 한다. 본래 이 마을에 정씨들이 들어오기 전에 남양홍씨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정씨들이 들어오면서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북마성에 사는 진양 정씨는 고려시대의 정예(鄭藝)의 후손들로, 조선 단종 때의 충장공(忠莊公) 정분(鄭苯)을 중시조로 삼고 있는 진양 정씨 충장공파이다. 정분[?~1454]은 자는 자유(子㐕),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다. 문음(門蔭)으로 관직에 나아가 1416년(태종 16)에 다시 문과에 급제하고, 사간부 우헌납, 좌헌납, 승문원 교리, 사헌부 집의, 좌승지, 충청도관찰사 등을 지내다가 1452년(문종 2)에 우의정이 되었으나, 이듬해의 계유정난(癸酉靖難)으로 고신(告身)을 추탈 당하고 낙안(樂安)의 관노가 된 후, 1454년(단종 2)에 사사되었다. 1746년(영조 22)에 신원되어 장흥의 충렬사(忠烈祠)에 배향되고, 1808년(순조 8)에 불천위(不遷位)로 지정되었다. 정분수양대군에 의해 내침을 당하자, 정분의 증손자 정의학(鄭義學)이 현재의 북마성으로 이주하면서부터 이곳에서 정씨들이 자리 잡게 되었다고 전한다. 지금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가장 높은 항렬(行列)이 정분의 17세손이다.

현재 마을에서는 정분의 재실을 지어놓고, 매년 음력 3월 10일에 경상남도 지방의 유림들이 모여 불천위 제사를 올리고 있다.

정분선생의 가까운 일가들, 그분들도 피난을 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사실상 자리를 잘 못 잡았빗지. 안 그라면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높은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요. 4백년은 살은 거지요. 다른 성씨들은 한두 집 있는데, 전부 일가친척입니다. 남이 볼 때는 참 좋다하는데 꼭 좋은 것은 아니어요.

충장공 할배, 3월 11일에 제사를 지냅니다. 각 유림에서 그 날 임원을 선임해서 제사를 지내요. 유림에서는 각 성씨마다 돌아가면서 지냅니다.

북마성 충장공 후예들은 열성이 있고 보이는 게 있더라는 소리를 듣고 싶지. 북마성의 충장공 후예들이 참 잘하드라고, 그 날 땀을 흘려 음식을 잘 장만하고 오는 손님 대접을 잘 했다는 소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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