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201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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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靈西- 靈東- 由來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우선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90년 - 「영서와 영동의 유래」 함안군에서 예산을 투입하여 자료 수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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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1990년 - 「영서와 영동의 유래」『함안의 지명 유래』에 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10년 - 「영서와 영동의 유래」『함안의 지명 유래(증보)』에 수록 |
관련 지명 | 이령리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
관련 지명 | 영서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
관련 지명 | 영동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
채록지 | 영서동 -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 |
성격 | 설화|지명 유래 전설|신이 전설 |
모티프 유형 | 마을의 지형 형성 지명 유래 |
[정의]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이령리에서 영서·영동 지명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영서와 영동의 유래」의 전반부는 서쪽에 있는 영(靈)을 영서(靈西), 동쪽에 있는 영(靈)을 영동(靈東)이라 불렀다고 하는 지명 유래 전설이고, 후반부는 일제 강점기 말갈기에 해당하는 대밭에 길을 내려고 대나무를 베니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고 하는 신이(神異) 전설이다. 경상남도 함안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칠북면 소재지에서 서북쪽으로 약 2.4㎞에 위치한 이령리 영서와 영동은 평야 마을이다. 1970년까지는 쌀농사가 주업이었으나 2016년 현재는 주로 과수[복숭아·포도·단감] 재배로 농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채록/수집 상황]
1990년 함안군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함안의 지명 유래』를 발간하였고, 이것을 2010년 함안 문화원에서 보완하여 『함안의 지명 유래(증보)』를 발행하였다. 여기에 「영서」와「영동」의 지명에 관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영서와 영동의 유래」의 채록과 수집에 대한 기록은 정확하지 않다.
[내용]
영서와 영동은 신라 때부터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전해지며 서쪽을 영서, 동쪽을 영동이라 부른다. 영이 있으되 동서로 두령[이령(二靈)]이 있어 서쪽에 있는 영을 영서, 동쪽에 있는 영을 영동이라 불렀다고 한다.
영서동(靈西洞)은 말[馬]의 형상으로 비유되는데, 마을 동구(洞口)를 말의 입[마구(馬口)], 마을 안길을 말의 목구멍[마인(馬咽)], 뒷산을 말 어깨[마견(馬肩)]라고 칭한다. 그리고 예전부터 마을 중앙에 자리한 대밭은 말갈기[말의 목덜미에서 등까지 나는 긴 털]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전해진다. 이 말갈기에 해당하는 대밭에는 일제 강점기 때의 신령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대밭을 가로질러 신작로(新作路)를 만들려고 대나무 숲을 베어내니, 대나무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말갈기 부분과 연결된 목을 베니 피가 나온 것이라 믿고 있다.
[모티프 분석]
「영서와 영동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마을의 지형 형성 지명 유래'이다. 그리고 말갈기에 해당하는 '대밭'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때 마을의 훼손을 막고자 하는 주민들의 염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