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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효행 관련 고문서. 「권병천등상서」는 단성·거창·진주 등 경상우도 유생들이 하진태의 효자 정려를 위해 암행어사에게 올린 진정서이다. 매우 긴 글로 하진태의 효행상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이 진정서를 접수한 어사는 사림의 공의를 인정하고 효행을 적은 원장(原狀)을 등서(謄書)하여 들일 것을 지시하는 등 매우 고무적인 반응을 보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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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단동촌동장수본」은 단동촌 동장이 사죽집강(沙竹執綱)에게 하진태가 행한 효행의 실상을 서면으로 보고하는 문서이다. 수본(手本)은 공사(公事)에 관하여 상급관청 또는 관계 관서에 보고하는 문서이다. 단동은 사죽리에 속한 자연부락 명칭으로 흔히 단목으로 불리는데, 지금은 사죽이란 명칭은 사라지고 단목리로 통일되었다. 하진태가 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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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경상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는 청주한씨의 고문서.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조성된 것으로, 호구단자 60건, 준호구 5건, 입후성문(立後成文) 및 소지(所志) 연점문건(連粘文件) 1건, 공명첩(空名帖) 3건, 교지 13건, 전령 2건으로 구성되어 있다. 호구단자는 총 60건으로 모두 청주한씨 가문의 것이며, 준호구도 5건이 같이 있다. 1789년(정조 13) 한응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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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에 있는 경상대학교 문천각 소장의 행정문서집. 경상대학교 문천각에 소장되어 있는 호구단자와 준호구철은 김상조가 여러 가문에 잡다하게 널려 있던 자료들을 모아 편철한 것으로 총 6책이다. 제1책에는 남해 거주 남원양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22건(19세기), 곤양·삼가 거주 청주한씨 가문의 호구단자·준호구 6건(19세기), 여수·사천·곤양 거주 남평문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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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상산 김씨 집안에서 재산 상속과 관련하여 작성된 문서. 조선 시대에는 분재(分財)라고 일컬은 재산 상속 제도가 있었다. 크게 부모가 살아 있을 때 이루어진 분재와 부모 사후에 이루어진 분재로 나뉜다. 「김광려 삼남매 화회문기」는 1480년(성종 11) 2월 상산 김씨(商山金氏) 김정용이 죽은 후 자녀 삼남매가 한자리에 모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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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가 김시민에게 내린 선무공신 교서. 공신 교서는 왕명 문서 가운데 문체나 재료 등에 있어 최고의 격식을 갖춘 문서였다. 사전에 공신 개개인에 맞는 문장을 별도로 짓게 하고, 교서 제작에 쓰일 비단 등도 별도로 마련한 뒤 서사를 맡은 관원이 정서하였고, 최종적으로 왕의 인장인 보인(寶印)을 찍어 발급하였다. 「김시민 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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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승산리 김해허씨 문중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신. 1649년(인조 27) 평안병마절도사 안주목사에 재직 중이던 허동립(許東岦)[1601~1662]이 진주의 하진(河溍)[1597~1658]에게 보낸 서신이다. 한 통에서는 하진의 약재 요구에 대한 답장과 아울러 자신의 심정을 나타내었고, 또 다른 한 통에서는 하진의 완쾌를 비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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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작성된 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 답천리의 호적대장. 민적부(民籍簿)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 국민의 이름을 한자로 바꾸어 기록해 놓은 호적대장을 말한다. 이 제도가 현재 우리나라 호적제도의 기본을 이루었으며, 광복 후 1960년 1월 1일에 호적법으로 제정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에는 당시 답천동장이었던 하한주(河漢柱)가 작성한 진주시 일반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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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녹권.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박세항의 공을 찬양하여 내린 선무원종공신녹권(宣武原從功臣錄券)으로, 선조 38년(1605) 도승지 신흠(申欽)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내렸다. 박세항은 현재 창렬사에 배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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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사람 박효근의 효행을 정려(旌閭)하고자 임금께 올린 조선시대의 상서문(上書文). 이 문서는 밀양 사람 박효근의 효행이 뛰어나 어머니의 병환을 낳게 하여 진주를 비롯한 인근지역의 유생들이 정려해 줄 것을 요청한 상서문이다. 보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으로 상서문과 완문, 입안, 교지는 두루마리 형태로 보관되어 있다. 호구단자는 그냥 접은 상태로 보관되어 있어 배접이나 보관용 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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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중한 병에 걸려 위독한 지경에 처한 어머니를 몇 번이고 지극 정성으로 간호한 하진태의 효행 실적을 단동촌 동장이 사죽집강에게 서면으로 보고하였는데, 사죽집강이 이것을 진주목사에게 서면 보고하고 현양을 요청한 것이다. 「사죽집강서목」에서 서목이란 하관이 상관에게 올리는 원장(原狀)에 구비하는 문서를 말한다. 즉 단동촌 동장이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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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악사 양덕수(梁德壽)가 엮은 거문고 악보. 『양금신보』는 1610년에 양덕수가 지은 거문고 악보로 1책 26장(52면)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래 경상남도 진주시 주약동에 살던 강태중의 집안에서 전해오던 고문서 중 하나이다. 2002년 2월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08호로 지정된 것을 강태중이 2004년 8월에 진주향안 등의 고문서와 함께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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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하진(河溍)[1597~1658]이 받은 교지첩. 하진의 호는 태계(台溪)이고, 본관은 진양이다. 『양조은함첩』은 1633년(인조 11)부터 1657년(효종 8)까지 25년에 걸쳐 받은 교지첩으로,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진주하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다. 총 45매이며, 표지에 ‘양조은함첩(兩朝恩銜帖)’라 씌어 있다. 당시의 인사관리제도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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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오응운등상서」는 효자 하진태의 포증을 건의하는 경상우도 유생들의 건의서이다. 하진태의 노모를 향한 지극한 효행을 기리고 정려를 받기 위한 상서문은 하진태의 생존시부터 시작하여 사후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오응운, 최상갑, 정운현 등 진주 일원의 유생들이 중심이 되어 진정서를 올린 일종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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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고창오씨 오현덕(吳顯德)의 호구 내용을 목사에게 제출한 문서.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호구조사를 할 때 호주가 가족사항을 적어 지방 수령에게 제출토록 하였는데, 이 호구단자는 1789년(정조 3)에 오현덕 집안에서 작성한 것이다.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상평동 191-4[큰들로114번길 7] 후손 오홍재 댁에 소장되어 있다. 주소, 호주명, 연령, 본관, 가족내역, 처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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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의기사의 중건에 관한 기문. 진주성 내에 소재한 의기사는 1593년(선조 26) 제2차 진주성싸움 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한 논개(論介)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임진왜란 중 진주성전투에서 중과부적으로 진주성이 함락되자, 논개는 왜장을 촉석루 아래 의암(義巖)으로 유인하여 함께 강물에 투신한 것이다. 이러한 논개의 의로운 기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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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용(丁若鏞)이 논개 사당인 의기사에 부쳐 쓴 글. 의기사는 진주시 본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논개의 사당으로, 1740년(영조 16) 경상우병사 남덕하가 건립한 것이다. 1956년 의기창렬회에서 시민의 성금으로 재건하였으며, 1983년 7월 20일 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이 글은 1802년(순조 2) 다산 정약용이 지은 것이다. 의기사 기문의 원문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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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이경상등상서」는 하진태의 효자 정려를 위해 암행어사에게 올린 경상우도 유생들의 진정서이다. 지난 40여 년 동안 진주목·감영에 수십 장의 진정서를 올렸지만 포증사업에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자 암행어사에게 특별 건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암행어사 역시 공의를 빙자하여 번거롭게 하지 말 것을 지시하고 있다. 진정서를 올린 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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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전기 태조 이성계가 이제에게 내린 개국공신 교서.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공신에게 교서와 녹권을 발급하는 제도가 지속되었다. 개국공신교서는 조선의 개국에 큰 공을 세운 공신들에게 각각 발급되었다. 「이제 개국공신교서」는 1999년 6월 19일 보물 제1294호로 지정되었으며, 2018년 6월 27일 국보 제324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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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 중 별급문기. 이탁의 본관은 전의(全義), 좌승지를 지낸 이종문(李宗文)의 손자이다. 이탁의 사위 하명은 1660년(현종 1) 식년 진사시에 입격했는데, 병환 중에 사위의 입격 소식을 들은 이탁이 이를 기념하기 위해 노비 1구와 전답 15마지기를 지급한 것을 문서로 작성한 것이다. 과거 합격에 따른 재산 지급은 별급의 전형적인 형태에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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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재령이씨 문중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말기의 건의문. 1901년 경상도 유림에서 이중광(李重光)[1592~1685]의 향례시 제물로 소요되는 소를 도축할 수 있도록 관찰사에게 허가를 신청하는 건의문을 올리자 이를 허가 처분한 문서이다. 100여 년 전의 공용문서로, 당시의 생활 모습 일부를 알 수 있는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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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생원진사시의 합격자 명단. 경상대학교 소장 『정덕계유사마방목』은 명(明) 무종(武宗) 정덕(正德) 8년이자, 조선 중종 8년인 계유(癸酉)년, 즉 1513년에 실시한 생원진사시의 합격자 명단이다. 방목은 1책 24장으로 1행 18자 유계(有界) 10행, 주(註) 쌍행으로 되어 있고, 크기는 가로 20㎝, 세로 32.2㎝이고 반곽(半廓) 크기는 가로 16㎝, 세로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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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효행관련 고문서. 하진태의 효행 정려를 위한 상서문은 1791년 하진태의 생존시에 「단동촌동장수본」이나 「사죽집강서목」 등 이미 행정계통에 따라 보고된 바 있었고, 1800년 하진태의 사망과 동시에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수십 차례에 걸쳐 진정서가 올려졌으나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하진태 뿐만 아니라 다른 효자나 열부에게서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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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단목리 담산고택에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는 호구단자, 준호구, 분재기류, 유명 인물의 편지도 섞여 있는 등 다양한 문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진주 단목리 담산고택 소장 고문서에 포함되어 있는 문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호구단자 및 준호구 호구단자 24건과 준호구 1건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중 하명(河洺)의 준호구는 17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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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단목리에 있는 책판. 이 책판의 저자 창주(滄洲) 하징(河澄)[1563~1624]은 정인홍의 문인으로 남명 조식의 제자들에게 인정을 받아 1606년에는 덕천서원의 원장으로 역임하였으며 남명의 작품을 간행하는 것을 주도하였으며 1620년에는 『진양지』를 최초로 편찬하였다. 창주집 책판은 1897년 12월에 진주의 오방제에서 목활자로 간행되었던『창주선생유사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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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하진태(河鎭兌)의 효행 관련 문헌. 1. 『봉선(奉先)』 규격은 26×31㎝이다. 수필본으로 앞부분 「연대사위급신사위도록(連代祀位及新祀位圖錄)」, 뒷부분 「조모주병록일기(祖母主病錄日記)」의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연대사위급신사위도록」은 1788년(정조 12) 당시 정문조(旌門祖), 창주조(滄州祖), 오대조(五代祖), 고조(高祖), 증조(曾祖), 부(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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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경상 대학교에 있는 조선 후기와 근대 박태형 집안의 고문서. 진주 동산리 박태형가 고문서 일괄은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동산리에서 세거해 온 함양 박씨(咸陽朴氏) 간암(艮巖) 박태형(朴泰亨)[1864~1925]의 집안에서 전해 오는 고문헌 자료들이다. 모두 3600여 점이 전해 오는데, 이 중 사료적 가치가 높은 175점이 2011년 1월 6일 경상남도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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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재령 이씨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진주시 대곡면 마진리 일대는 조선 전기 재령 이씨(載寧李氏) 모촌 이정(李瀞)이 입향한 이래 그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진주 마진리 이영 소장 고문서 일괄은 이덕관(李德寬)의 집안인 마호당(磨湖堂)에서 전해 오는 고문서들 가운데 195건으로, 2012년 7월 26일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 제522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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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에 위치한 송정종택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고문서. 진양하씨 송정종택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문서들로서 분재기(分財記), 소송입안(訴訟立案), 호구단자(戶口單子), 토지매매문서(土地賣買文書), 소지(所志), 등장(等狀), 품목류(稟目類), 완문(完文), 절목(節目), 전령(傳令), 제음(題音), 초사(초사), 수기(手記), 위장(慰狀), 만장(輓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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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강태중 집안에서 소장하고 있는 조선 후기 고문서. 강태중 소장 고문서는 조선 후기 진주 지역에 세거한 진주 강씨(晉州姜氏) 집안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이다. 2002년 2월 14일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309호로 지정되었다. 호적 자료는 강익(姜瀷) 등이 관아에 제출한 호구 단자, 관아에서 발급해 준 준호구 등이고, 관직 임명 문서는 강승(姜昇)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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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근대적 실측 지도, 지형도 우리나라의 근대적 측량을 통한 지도의 제작은 1890년대 일본 육군에 의해 시작된다. 이 지도는 1871년 병무성 참모국 간첩대와 이후 일본 육군 참모본부 육지측량부의 주도로 조선의 1/50,000 지형도를 작성하였고,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로 칭하고 일본에서는 도엽 우측 상단에 있는 제목을 따라 약도(略圖)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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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년에 제작된 진주 지역의 향안(鄕案). 원 소장자는 강태중(기증당시 68세, 경상남도 진주시 주약동 거주)이었으며, 소장처는 경상남도 진주시 칠암동 531-29번지[강남로131번길 4-3], 기증일은 2004년 8월 17일이다. 강태중이 집안에서 전해오던 고문서 39점을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하였는데, 『진주향안』은 그 중의 하나였다. 『진주향안(晋州鄕案)』은 현재 3종이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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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 독산리에 있는 청주한씨 판서공파의 고문서들. 교지 2점과 효행정려소지 9점 등 모두 11점이다. 교지 2점은 각기 조선 인조 16년(1638)에 작성 제수된 한성원(韓聖源)의 정이품 당상관(堂上官) 교지와 조선 효종 8년(1657)에 작성 제수된 한치범(韓致範)의 종이품 당상관 교지이다. 제작 시기는 오래되었지만 보관 상태는 양호하다. 효행정려소지 9점은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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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촉석루의 변천과정을 기록한 글. 진주하씨인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이 촉석루가 지어진 연대를 고찰하고 또 중수한 동기와 과정을 상세하게 그렸으며 이 누대가 개수됨으로 미치는 영향을 순차적으로 기술하였다. 촉석루의 명칭 유래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 및 촉석루에서 바라보이는 장관을 시작으로 촉석루가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가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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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일이 촉석루의 공사과정을 표현한 글. 진양하씨인 하수일(河受一)이 1583년에 진주성 내의 촉석루 중수 공사과정을 설명한 글이다. 하수일[1553~1612]은 남명 조식의 뛰어난 제자였던 각재 하항의 종질(從姪)이면서 그의 문인(門人)이기도 하다. 그는 촉석루가 중수되자 이를 기려서 기문을 짓게 되었다. 촉석루가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과 여러 차례 헐리고 다시 세워진 사실을 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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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유학자 정식이 지은 촉석루 보수에 관한 글. 명암(明庵) 정식(鄭栻)[1683~1746]이 1725년에 촉석루에 대한 설명을 곁들이고 보수공사를 통하여 새롭게 태어난 촉석루의 아름다움을 그린 글이다. 기문의 내용은 촉석루의 웅장한 자태, 논개가 적장을 죽인 일의 역사적 의미,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감탄하여 처음에 글을 전개한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촉석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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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의 문신 하륜이 지은 촉석성 공사과정을 기록한 기문. 하륜(河崙)[1347~1416, 충목왕 3~태종 16]은 진주에서 태어나 고려 말, 조선 초를 거쳐 진주에서 인생을 보낸 인물로서 진주성, 촉석루 등에 기문을 지어 진주의 역사적 경관에 관한 귀중한 기록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촉석성문기(矗石城門記)」로 촉석성은 지금의 진주성을 의미한다. 그 성을 왜 쌓아야 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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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문서첩. 최희량 임란 관련 고문서-첩보 서목은 정유재란 당시 고흥 현감 최희량이 상부에 보고한 문서들을 엮어 놓은 문서첩이다. 1979년 7월 26일 보물 제660호로 지정되었다. 1598년(선조 31) 3월부터 7월 사이 고흥 현감 최희량(崔希亮)[1560~1651]이 지휘 계통상 상급 기관인 삼도 수군 통제영과 전라 감영에 보고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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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추성원(秋成元)의 표창을 상신하고 답을 받은 문서. 추성원은 조선 후기 순조와 고종 때의 효자이다. 12~13살 때 부친 추민중(秋敏中)의 병을 낫게 하기 위해 허벅지 살을 베어 드렸고, 어머니 창원황씨가 병마에 고통당하자 산중을 헤매며 약초를 캐어 탕을 지어 올리고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소생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인근 하동과 곤양 주민들 서른 명이 천하에 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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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하범대(河範大)가 생전에 썼던 편지글과 과거시험 답안문. 서간첩은 하범대가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1837~1857) 사우 및 동료들과 주고받은 편지글 수십 통을 모은 것이다. 과시문은 1837년 과거 볼 때의 답안문으로, 책문(策問 : 정치에 관한 대책), 시의(詩義), 부(賦), 강시(講試) 목록 각 1통씩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진주하씨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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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윤우의 처 해평윤씨 친정 남매들의 화회문기. 하윤우(河潤宇)[1647~1707]는 창주(滄洲) 하증(河憎)[1563~1624]의 증손이며, 부인 해평윤씨는 영의정 윤방(尹昉)의 현손녀이다. 하윤우의 처 해평윤씨의 친정 남매들의 화회문기로, 해평윤씨의 아버지 윤세규의 사후 그 자녀들이 화회 분집할 때 작성한 것이다. 종이에 묵으로 쓴 문서이다. 크기는 55.2㎝×122.5㎝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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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윤우가 자녀에게 재산을 분급하기 위해 작성한 금급문기. 하윤우(河潤宇)는 슬하에 3남(하응운(河應運), 하응일(河應一), 하응휴(河應休)) 2녀(첫째사위 정상길(鄭相吉), 둘째사위 강공일(姜公一))을 두었는데, 그들에게 몫에 따라 재산을 분급하기 위해 작성했다. 종이에 묵으로 쓴 문서이다. 크기는 44㎝×275㎝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을유(1645)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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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하응운(河應運)이 장자 하재악(河載岳)에게 한 유언을 적은 문서. 하응운 유언은 1월 23일 작성되었는데, 이로부터 5일이 지난 28일에 향년 71세의 나이로 하응운은 생을 마감하였다. 이 문서에 따르면 하응운에게는 부실과 서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들 재산에 대한 처리와 당부가 주된 내용을 이룬다. 또한 치상 시에는 모나 방사 등을 사용하지 말고, 마나 면, 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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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하진(河溍)의 상소문. 하진은 호가 태계(台溪)이고, 본관은 진양이다. 이 상소문은 하진[1597~1658]이 나라에 올린 상소문으로 우국충정(憂國衷情)의 간절한 심정이 담긴 고문서이다. 하진 상소문에는 사회 상황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어, 당시의 사회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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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하찬[하진태] 남매가 부모 사후에 합의하여 재산을 나누는 화회문서. 하찬(河鑽)[1737~1800]은 하재악(河載岳)[1695~1742]의 장남이나 순서상으로는 1남5녀 중 막내였다. 분재가 이루어진 10월 28일은 하찬이 혼례를 올리고 신행을 끝낸 직후인데, 분재기 서문에 따르면, 다른 남매들은 상제례 등 여러 사정으로 인해 참여하지 못하고 셋째 사위 한용만 참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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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공(丹池公) 하협(河悏)[1583~1625]과 그 자손들의 유묵과 유적 일괄. 조선시대 진주에는 남명학(南溟學)이 크게 발전하였는데 단목(丹牧)의 진양하씨(晋陽河氏) 또한 학문적으로 남명학파에 속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남인 가문이었다. 단지공 하협은 진사로 급제하였으나 출사를 하지 않고 평생 학문에 정진했으며, 그 후손인 하진보(河晋寶), 하위보(河魏寶), 하윤관(河潤寬), 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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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황석강(黃石江)이 받은 양무원종공신녹권.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양무원종공신으로 책봉된 인물들에게 발급된 공신 증서로서, 1권 1책으로 구성된 활자본이다. 반란이 일어나고 진압된 1728년 7월에 양무녹훈도감(揚武錄勳都監)에서 발행해 나누어 주었다. 황석강[1687~1760]은 1728년(영조 4)에 일어난 이인좌(李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