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전해오는 길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김현수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일심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이조이(여, 68세)이다. 이삼삼아서 옷해입고 무등산천 구경가자 무등산천에 괴사리는 이실맞고 사라졌네 에제오신 새선배는 시누방에 사라...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공북문 성벽에 새겨진 글귀. 공북문 성벽 석각은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본성동에 위치한 진주성의 북쪽문인 공북문(拱北門) 서쪽 성기에 새겨져 있는 글씨로 가로 80㎝, 세로 25㎝ 크기의 석재에 ‘康熙十九年山陰馬兵中哨泗川昆陽河東丹城咸陽六官一哨’라고 씌어져 있다. 이는 진주성의 수축을 담당하였던 구역의 표시를 나타낸다. 조선시대의 축성 기록을 살펴보면, “세...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국립박물관. 경상남도 지역의 출토 문화재의 수집·보존에 앞장서고, 문화재 조사·연구·전시와 다양한 교육문화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문화의 특색을 조명하는 한편 지역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고자 설립되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고고학적 연구·조사를 담당하는 국립 기관으로서, 경상남도 지역에 산재해 있던 각종 유물을 한자리에 모아 정리하고 가야의 문화를 소개하기...
-
김용두(金龍斗)[1922~2003]가 수집하여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한 179점의 미술 문화재. 두암(斗庵) 김용두는 경상남도 사천(泗川) 출신의 재일동포 실업가로 1950년부터 천리개발주식회사를 경영하면서 한국의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그의 수집품은 1986년 일본 나라시[奈良市] 야마토[大和]문화관에서 개최한 전시회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하여 1994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진주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 창렬사(彰烈祠) 내에 있는 충무공 김시민(金時敏) 등에게 내린 사제비. 김시민은 본관이 안동이며, 자는 면오(勉吾)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 대군이 진주성을 포위하자 불과 3,800명의 병력으로 7일 간의 공방전 끝에 적 30,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격퇴시켰다.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그러나 김시민은...
-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구갑문과 기하문으로 장식한 조선시대의 경대. 나전구갑문좌경은 나전칠기(螺鈿漆器)를 이용하여 만든 경대(鏡臺)로서, 조선시대에 화장도구를 담아두고 화장할 때 사용한 규방가구 중 하나이다. 이 나전귀갑문좌경은, 재일동포 실업가였던 두암 김용두가 해외로 유출된 우리나라 유물을 자비로 구입해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함에 따라 이를 별도로...
-
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 안쪽에 있다 하여 안성, 내성 또는 성내동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당시 진양군 성내면 2동·성내면 3동 각 일부와 성내면 5동 지역을 통합하여 진주면 성내동이라 하였다.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남산정(南山町)이라 하였고, 1949년 8월 15일 남성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
-
가야시대에 제작된 수레바퀴가 붙은 이형토기. 이형토기란 오리나 말 등의 동물형토기로, 주로 전기의 가야지방에서 발생한 듯하다. 초기에는 토우나 동물형토기가 고배에 장식되어 사람, 짐승 등 그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중기에 이르면 기마형, 오리형 등 용기의 기능을 가진 이형토기들이 출현한다. 한편 토우와는 달리 짐수레나 배 모양 혹은 집 등을 모작(模作)한 명기들이 출현하기...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창렬사에 배향된 배위에 대한 내용을 새긴 석비.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한 기록이므로 ‘동배서배비’라고 한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제1차 진주성전투(진주대첩)와 제2차 진주성전투(계사년 전투)에서 순국한 인물들 39기의 위패 중 창렬사의 동사와 서사에 배향된 인물에 대해 1833년(순조 33) 임금이 위무의 글을 지어 보냈다....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바느질할 때 부르는 노동요. 가사노동요 중에서도 「바느질 노래」는 바느질을 하면서 부르는 부녀자들의 노래이다. 바느질은 그 일에만 몰두해야 할 만큼 힘든 일은 아니며, 바느질을 하면서 자신과 주위의 생활을 새삼스레 돌아보고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바느질을 하면서 부르는 노래도 다양하다. 1980년 8월 12일 정상박과 김현수가 남성동...
-
철화로 대나무 무늬를 그린 대나무 마디 모양의 백자 병. 재일교포 실업가인 두암 김용두 옹이 수집하여 소장하던 유물 중 하나로 1997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한 179점 가운데 하나이다. 현재 경남 진주시 남성동 169-17[남강로 626-35]에 위치한 국립진주박물관 내의 상설전시실 중 하나인 두암실에 전시되어 있다. 전체 높이 21.9㎝로 긴 원통형이다. 어...
-
철화로 구름과 용의 무늬를 그린 백자 항아리. 조선시대 17세기 후반에는 도자기의 색이 회색에서 유백색으로 바뀌어가고 달항아리가 많이 제작되었으며, 철회로 운룡문·초문·매죽문 등이 자유롭게 시문된 백자가 유행했다. 백자철화운룡문호는 당시에 많이 제작된 구름 용무늬[雲龍文]를 그린 철화백자의 유형이다. 또한 재일교포 실업가인 두암 김용두 옹이 수집하여 소장하던 유물 중 하나로 현재...
-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모란문과 당초문이 그려진 매병형태의 분청사기. 분청사기모란문매병은 조선 전기 분청사기의 자연미가 잘 표현된 작품으로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국립진주박물관 상설전시실인 두암관에 전시되어 있다. 매병은 아가리가 조그맣고 어깨는 크며 밑이 홀쭉하게 생긴 병을 말하는데, 분청사기모란문매병은 병 아가리가 좁고 어깨가 넓은 것으로 보아 술항아리로 주로...
-
경상남도 진주시에 전해오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한 애정요. 사랑 노래로 채록된 자료는 남녀 사이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지만, 구체적인 사설의 내용은 다르다. “비오소서 비오소서”로 시작되는 사랑 노래는 사랑하는 임이 가지 못하도록 비가 많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노래한 것이고, 이어지는 노래는 누추한 초가집이라고 임에게 오지 말기를 부탁하지만 우산과 갈모를...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관청 건물. 원래 관찰사는 각도에 1명씩 임명했던 조선시대의 지방장관(종 2품)을 말하는데 관찰사를 다른 말로 ‘감사’라고도 불렀기 때문에 관찰사가 있는 관청을 ‘감영’이라고 했다. 경상도관찰사는 조선시대 내내 대구(달성) 등 경상북도에만 주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상남도에는 없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눠진 후 관찰사가...
-
중국 후난성 동정호 아래 소수와 상강이 합쳐지는 천하절경을 담은 8폭의 그림.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소상팔경도」는 작가는 밝혀져 있지 않으나 일본에 있는 대원사 소장의 「소상팔경도」와 제작 기법이 유사하여 조선 중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두암 김용두가 일본에서 수집하여 2001년에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한 작품으로서 국립진주박물관 상설전시실인 두암관에 전시되어 있다....
-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상하 이층으로 이루어진 의걸이장. 쌍용이층의걸이장은 나전칠기(螺細漆器: 얇게 간 조개껍데기인 자개를 여러 가지 모양으로 오려내어 기물(器物)의 겉면에 박아 넣어 장식하는 칠공예 장식기법 중 하나)를 이용하여 만든 조선시대의 옷장으로 두암(斗庵) 김용두(金龍斗)[1922~2003]가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한 유물 57점 가운데 하나이다. 쌍용이층의걸이장은 상하 이...
-
석가모니여래와 협시보살 세 분의 모습을 그린 불화. 높은 대좌에 놓인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협시보살을 배치한 조선 중기의 후불탱화이다. 2단의 대좌는 금니로 윤곽선을 그리고 흑선으로 연화문을 묘사했는데, 단순하고 형식화된 형태이다. 화면 상부에는 거꾸로 매달아놓은 듯한 연화로 천개를 묘사했다. 본존의 두광과 신광을 나타낸 광배는 키 모양이다. 삼존을 에워싸...
-
조선 중기 진주 목사인 이상일(李尙逸)[1600~1674]의 선정을 기리는 비. 이상일은 1650~1654년에 걸쳐 진주목사를 지내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보덕(輔德)으로 전임되어 진주를 떠나자, 1654년(효종 5)에 이상일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1973년에 옮겨와서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 비석군 가운데 있다. 비의 제목은 ‘牧使 李尙逸 去思碑(목사 이상일...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었던 금융기관.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은 일제강점기인 1918년에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할 목적으로 설립된 특수은행이다. 실제적으로는 일제의 조선식민지화 산업을 지원하여 조선인에 대한 착취와 약탈을 감행하였고,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정책기관으로 활동하다가 해방 후 한국산업은행에 흡수되었다. 진주지역에 있던 산업기관에 자금을 대출해 주기 위한 목적...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유통식 화포. 우리나라에 보물로 지정된 중완구(中碗口)는 2점이 있다. 1점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다른 1점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중완구는 경상남도 하동군 옥동면 동화리 산 57번지 등산길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매장문화재발견신고를 거쳐 동년 12월 20일 당...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비각. 조선 말 가선대부 김상현(金尙鉉)의 정부인 연안차씨(延安車氏)와 그의 아들 전 의관(議官) 김정식(金正植)은 질병 등으로 재난을 당하고 있던 주민들을 구원해 주었다. 뒤에 주민들이 “마을이 재난을 입었을 때 참다운 정성과 물자를 풀어서 마을 사람들을 구해준 고마움을 기리기 위해” 모자의 시혜불망비(施惠不忘碑) 2기를 각각 1901년과 1907년...
-
조선시대 진주의 향사당 내에 존재하고 있던 벽오당(碧梧堂) 건물의 현판. 벽오당은 원래 조선 태종조에 영의정을 지낸 호정 하륜(河崙)[1347~1416]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자 태종(太宗) 임금이 직접 내린 교서를 봉안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임금은 특별한 예우로 잔치를 베풀고 친필인 벽오당(碧梧堂) 현판을 하사하였다. 진주 향사당(鄕射堂) 뒤에 벽오당을 지어...
-
조선시대 때 경상남도관찰사가 업무를 처리하였던 관아 영남포정사의 정문. 조선 광해군 10년(1618) 병사를 지내던 남이흥이 내성의 동쪽문을 고쳐 세우고 옆에 대변루(待變樓)를 새로 지었는데, 이것이 망미루의 본래 건물이다. 후에 1895년(고종 32)에 전국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로 시행됨에 따라 진주부가 설치되면서 진주관찰부의 선화당 관문이 되었다. 1896년에 전국을 13...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사우.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 창의사 김천일(金千鎰) 등 39위와 모든 군졸의 신위를 안치하기 위하여 1595년 경상감사 정사호(鄭賜湖)가 건립하였다. 1607년 창렬사라 사액되었고, 1712년(숙종 38) 병사 최진한(崔鎭漢)에 의하여 중수되었다. 김시민 목...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는 하마비(下馬碑).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는 1604년(선조 37) 이래로는 경상도 우병영, 1895년에는 진주관찰부, 1896년 이래로는 경상남도관찰사가 있던 곳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수령 이하 모든 관리와 일반인은 말에서 내리...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여우의 폐해로 인해 진주성 동문을 막게 되었다는 설화. 진주성(晋州城) 동문 막은 유래 설화는 특정 지역에서 옛날에 일어났으리라고 믿어지는 사실을 설명해 주는 전설로 지역적 전설에 해당한다. 지역적 전설은 대부분 지방의 지리적 특징이나 명칭의 유래, 습관의 기원 등을 이야기한다. 또 전승 집단이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환경이 어떻게 하여 생...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의 서북쪽에 위치한 누각. 현판에는 진남루(鎭南樓)로 되어 있으나, 진주성의 북쪽에 위치하여 북장대로 불린다. 또한 내성의 북쪽 끝에서 내성과 외성에 주둔한 병사 모두를 지휘할 수 있어 공북루(拱北樓)라는 별칭이 생겼다. 1584년(선조 17) 목사로 부임한 신점(申點)이 처음으로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167번지 진주성 서북쪽의 높은 언덕에...
-
경상남도 진주시 진주성의 서쪽에 위치한 누각. 진주성(晋州成) 서문(西門)의 지휘장대이다. 장대는 지휘하는 사람이 올라서서 명령하는 대를 가리킨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214-4번지에 있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회룡루(回龍樓)로 기록되어 있으며 규모는 작았으나 촉석루와 같은 다락집이었다고 되어 있다. 조선시대 만들어진 건물은 허물어지고 1934년 독지...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보건의료기관. 진주시민의 건강증진을 위한 질병예방과 치유활동을 위해 설립되었다. 1956년 8월 보건소법이 제정되어 1958년 10월 15일 진주시에 시립간이진료소 형태로 도동진료소(하대동)와 평거간이진료소(판문남동)가 설치되었다. 이후 1963년 4월 10일 진주시 보건소 설치조례가 제정되어 같은 해 9월 10일에 진주시 보건소가 개소하였다. 198...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사회복지시설. 저소득계층의 자립능력을 지원하고, 종합적인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며, 노인의 건강증진·여가선용·교양·오락 등 노인의 복지 증진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늘어나는 노인인구의 증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노인들에게 건전한 여가선용의 장소를 제공하기 위해 진주시 주관으로 1990년 2월 5일 진주시 종합사회복지관으로 개관하...
-
고려시대에 제작된 금은입사 무늬의 향로. 향완이란 사찰에서 사용하는 불기(佛器) 중에서 구연에 전이 달려있고 나팔형의 다리가 붙어 있는 고배형 향로를 말하는데, 청동금은입사향완은 청동에 금은입사로 무늬가 배치되어 있다. 청동금은입사향완은 재일동포 실업가인 두암 김용두가 해외로 유출된 우리나라 유물들을 자비로 수집하여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함에 따라 이를 별도로 전시하기 위해 마련된...
-
조선 후기 화가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1754~1822]이 그린 두 폭으로 된 수묵화. 추계유금도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인 김홍도의 스승인 김응환의 아들로서 풍속화와 신선도에 뛰어났던 김득신이 그린 수묵화이며, 두암 김용두가 일본에서 수집하여 2001년에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한 유물 중 하나로 현재 국립진주박물관 상설전시실인 두암관에 전시되어 있다. 창작경위는 명확하...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었던 사우. 1592년(선조 25)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왜적의 침입에 맞서 싸운 진주성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진주목사 김시민(金時敏)의 신위를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김시민의 신위는 창렬사(彰烈祠)주벽에 옮겨 모셨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조선시대 석탑.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에서 발견되어 탑 옆에 세워놓은 설명판에 '함양구양리 삼층석탑(咸陽九楊里 三層石塔)'으로 표기되어 있다. 현재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 있는 진주성 내 국립진주박물관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박물관 앞 석탑으로도 불리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구양리의 옛 절터에서 발견된 것이라 전할 뿐 유적에 대한 자세...
-
조선 중기에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통식 화포(有筒式火砲). 유통식 화포는 그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하여 천자문에서 그 이름을 따서 천·지·현·황자총통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현자총통은 유통식 대형화기 중 세 번째로서 그 제원의 차이를 두는 중화기의 일종이다. 현자총통(보물 제885호)은 1984년 3월 8일에 경상남도 거제시 신현읍 고현리 고...
-
조선 중기에 사용하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통식화포(有筒式火砲). 유통식 화포는 그 크기와 사용되는 화약의 양, 발사거리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하여 천자문에서 그 이름을 따서 천·지·현·황자총통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현자총통은 유통식 대형화기 중 세 번째로서 천자총통과 지자총통 다음 단계의 유통식 중화기로 지자총통과 형태상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현자총통(보물 제1233호)은 199...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안에 있는 사찰. 고려 말 처음 건립될 당시의 이름은 내성사(內城寺)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호국사(護國寺)라는 이름을 내렸다. 고려 말기에 왜구(倭寇)의 빈번한 침입을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僧兵)을 양성하기 위해 세웠다. 진주성 내 서장대와 창렬사 사이의 골짜기에 자...
-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239번지 호국사 앞에 있는 느티나무. 시나무로 지정되어 있다. 나무의 지상 쪽에 동공이 생기고 안의 나무속이 비어 사람이 드나들어도 될 정도로 큰 구멍이 있다. 도로에 위치해 있고 시소유로 현재 90X60㎝의 입간판이 있다. 바닥은 흙으로 덮여 있고, 잎과 수간 상태는 보통이고 전체적인 상태는 안정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