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01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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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重慶 |
영어음역 | Yi Junggyeong |
이칭/별칭 | 숙희(叔喜)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편세영 |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숙희(叔喜). 이극견(李克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반(李攀)이고, 아버지는 이영부(李英符)이며, 어머니는 이효완(李孝完)의 딸이다. 장령(掌令) 이수경(李首慶)의 동생이다.
[생애]
1546년(명종 1) 생원으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548년 예문관 검열로 처음 벼슬길에 들어섰다. 1549년 정언으로 언론활동을 하였고, 1550년 수찬이 되었고, 문재에 뛰어나 예문관과 홍문관에서 주로 활약하였다.
1550년 병조 좌랑을 역임하면서 춘추관기사관으로 『중종실록(中宗實錄)』과 『인종실록(仁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1552년에는 헌납이 되었고, 1553년 대사간을 거쳐, 1561년 예조참의·부제학이 되었다. 1563년 이조참판을 지내고 1564년에 대사헌을 겸하는 등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윤원형(尹元衡)의 소윤파가 득세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하자, 이를 내심 두려워한 명종은 이량(李樑)으로 하여금 이를 대적하게 하려고 총애를 베풀어 이조판서 벼슬까지 주었으나 도리어 주어진 권세로 반역을 꾀하다 탄핵받아 1563년 이량은 강계로 귀양 가고 관련자들도 멀리 귀양 갔다. 이때 이중경도 일당으로 몰려 파직되었으나 1565년 풀려나와 부호군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다시 양사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으며, 뒤에도 여러 차례 정쟁에 휘말려 치폐가 거듭되었다.
이중경은 언관으로 권세를 누렸으나 치부하지 않았으며 명종 때에는 청백리로 추앙받았던 인물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