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배원(培元). 행정(杏亭)이중광(李重光)[1592~1685]의 아들로 호는 죽촌(竹村)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1654년(효종 5)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나, 아버지 이중광이 지방에서 유학을 진흥시키는데 힘썼듯이 이현재는 조은(釣隱)한몽삼(韓夢參), 광서(匡西) 박진영(朴震英)을 따라 때로는 월순(月巡)을 베풀고, 강학을 권장하는 등 유학 진작에 전념하여 지역의 선비들 중 그의 영향을 받고 성취한 자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