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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광제산봉수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385
한자 晋州廣濟山烽燧臺
영어음역 Gwangjesan Bongsudae
영어의미역 Beacon Fire Station in Gwangjesan Mountain
이칭/별칭 광제산봉화,광제산봉수,광제봉수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 산 1지도보기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안성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7년 1월 30일연표보기 - 진주광제산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제15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진주광제산봉수대 경상남도 기념물 재지정
성격 봉수
원건물 건립시기/일시 조선 초기
원건물 붕괴시기/일시 1894년(고종 31) 이후
지정면적 300㎡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 산 1번지
소유자 경상남도 진주시
문화재 지정 번호 경상남도 기념물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 산 1번지 정상부에 있는 봉수대.

[개설]

광제산봉수는 조선시대 5거(距) 봉수노선 중 제2거 노선의 간봉으로 남쪽의 망진산봉수(望晉山熢燧)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에 위치한 단성(丹城) 입암산봉수(笠巖山熢燧)로 신호를 전달하였다.

[명칭유래]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誌)』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및 『여지도서(輿地圖書)』 등의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에 ‘광제산봉화(光濟山烽火)’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광제산봉수대는 봉수대가 위치한 광제산의 명칭을 따라 불리는 이름으로 광제봉수 혹은 광제산봉수라고도 한다.

[건립경위]

진주광제산봉수대에 관하여 『경상도지리지』에 ‘光濟山烽火 北望珎 城兼丹溪縣地 笠巖烽火 相距二十五里(광제산봉화 북망진 성겸단계현지 입암봉화 상거이십오리: 광제산봉화는 남쪽 망진산봉수의 신호에 응하고, 북쪽은 입암산으로 연결되며 거리는 25리이다.)’라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光濟山 北准 丹溪縣 笠岩(광제산 북준 단계현 입암: 광제산봉화는 북쪽의 단계현 입암산봉화에 신호를 전달한다.)’로 되어 있다.

또한 『여지도서』에 있는 ‘光濟烽燧 在州北三十里 南應州 望陣 北報 丹城 笠巖 相距四十里(광제봉수 재주북삼십리 남응주 망진 북보 단성 입암 상거 사십리: 광제산봉수는 주의 북쪽 삼십 리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망진산봉수와 연결되며 북쪽으로 단성 입암산봉수에 보고하였다. 서로간의 거리는 40리이다.)’ 등의 기록으로 보아 진주광제산봉수대는 조선시대 중요 통신 수단이었던 봉수대 중 하나로서 조선 세종 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진주광제산봉수대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 덕곡리 산 1번지 산 정상부, 즉 명석면의 진산인 집현산의 지맥인 광제산 정상에 입지해 있다. 북으로는 집현산, 동쪽으로는 달암산, 서쪽으로는 지리산의 줄기들이 바라보이는 등 봉수대가 입지할 조건을 두루 갖춘 곳에 위치해 있다.

[형태]

진주광제산봉수대는 방호벽, 건물지 및 연조를 갖춘 전형적인 연변봉수대(沿邊熢燧臺)의 구조를 갖춘 형태이다. 진주광제산봉수대의 평면 형태는 두개의 타원형을 붙여 놓은 모양으로 다소 부정형이며, 봉수대는 서쪽이 높고 동쪽이 조금 낮다.

방호벽은 남쪽을 제외한 동·서·북쪽에서 확인되는데, 북쪽 방호벽은 29m, 동쪽은 30m, 서쪽은 9.5m 정도이다. 이 중 잔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서쪽 방호벽은 자연석을 막돌 쌓기로 축조하였으며, 자연암반을 이용하여 외벽을 이룬 부분도 있다. 내벽은 비교적 작은 할석들을 자연암반 위나 일정 높이를 맞추기 위해 정제한 황갈색토 위에 쌓은 후 그 위에 보다 큰 자연석을 채워 놓았는데 상면의 폭은 1.5m 정도이다.

추정 건물지는 광제산의 동쪽에 위치하는데, 후대의 교란으로 인하여 원형을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발굴조사 내용을 종합해보면 건물지는 자연암반 위에 황갈색토를 채워 다지고, 초석은 자연암반을 다듬어 이용하거나 원형석축의 형태로 하고, 아궁이는 건물지의 동편에 북쪽 방호벽에 연접하여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벽체는 북편의 경우 방호벽에 연접하여 흑갈색토 위에 조성하고 나머지는 암반이나 황갈색토로 다진 곳에 흑갈색토로 높이를 맞추고 벽체를 조성하였다. 초석의 배치형태로 볼 때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북편과 동편이 긴 ‘ㄱ’자형을 하고 있으며, 동편은 아궁이와 합친 길이가 6.7m, 북편의 길이는 6m이다.

한편, 봉수대의 서편에서는 3개소의 연조가 확인되었다. 연조는 황갈색토 위에 조성된 약간 둥글게 배치된 말각방형의 형태를 띤다. 이 중 잔존상태가 가장 양호한 제1연조는 북편이 약간 둥근 말각방형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남편과 동편이 접하는 부분은 석재가 유실된 상태이다. 크기는 남북으로 2.5m, 동서로 2m 이며, 현존 높이는 암반으로부터 50㎝이다.

축조에 있어서는 자연암반위에 황갈색토를 15㎝ 미만으로 다져 40×35㎝의 석재들을 방형으로 쌓아 그 사이에는 비교적 작은 할석이나 자갈을 채워 두고 있다. 현재는 1~2단만이 잔존한다.

[현황]

2004년 발굴조사 당시에 옹기와 백자편이 추정 건물지에서 다량 출토되었으며, 특히 철부와 지름 2㎝의 철편이 출토되었다. 현재는 화구(火口), 석축 일부 등 흔적만 남아 있다.

[의의와 평가]

연조의 형태로 보아 신호를 받는 기능보다는 전달하는 기능이 강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제2거 간봉 노선의 내지봉수로서 통신 문명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1997년 1월 30일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5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7.01 2011년 한자(문) 재검토 작업 1) 光濟山烽火 北望珎 城兼丹溪縣地 笠巖烽火 相去二十五里 ->光濟山烽火 北望珎 城兼丹溪縣地 笠巖烽火 相距二十五里 2) 光濟烽燧 在州北三十里 南應州 望陣 北報 丹城 笠巖 相去四十里 ->光濟烽燧 在州北三十里 南應州 望陣 北報 丹城 笠巖 相距四十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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