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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평리 집터유적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0719
한자 大坪里-遺跡
영어음역 Daepyeong-ri Jipteo Yujeok
영어의미역 Dwelling Site in Daepyeong-ri
이칭/별칭 진양 대평리 유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공봉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생활유적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지도보기
소유자 경상남도 진주시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 대평리에 있는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지.

[개설]

대평리 유적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었는데, 특히 집터유적이 대거 발견되어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집터유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발굴조사경위]

대평리 유적지는 남강의 퇴적대지와 주변 평야지대에 위치한 청동시대 유적으로 옥방부락·어은부락·상촌부락에 걸쳐 넓게 분포하고 있다. 대평리 유적지가 위치한 대평면 일대는 발굴조사 훨씬 전부터 농경지정리 및 진양댐 건설공사(1967년) 등으로 유적의 파괴가 심하게 이루어졌고, 그 결과 많은 선사유물의 존재가 학계에 알려져 왔다. 이에 문화재연구소에서는 선사시대 경상남도 지역의 문화 규명을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1975년부터 1980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이후 1989년부터 남강다목적댐 개량사업으로 인한 수몰지구를 대상으로 국·공립연구기관 및 대학박물관 등 16개 학술단체가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1995년부터 산발적으로 조사를 시작하였고, 본격적인 조사는 1996년에서 1999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그 결과 구석기시대에서 삼국시대에 이르는 각종 문화유적이 확인되었다.

[위치]

대평리 유적지 중에서 문화재연구소가 조사한 집터는 총 4동이며, 이후 1990년대에 조사된 집터는 400여동이 확인되었다.

[형태]

문화재연구소에서 대평리 유적지를 대상으로 조사된 집터는 총 4동(棟)이다. 1호 집터는 동서로 장축을 두었으며, 지표에서 60㎝ 아래에서 확인되었다. 이 집터의 규모는 동서 18.6m, 남북 4.6m, 깊이 30㎝인 대규모 장방형 움집으로 바닥은 암갈색사질토층 위를 약간 다져 만들었다. 그리고 2㎝ 내외 두께의 목판 흔적이 4벽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목판을 대어 벽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바닥의 중앙부에서는 장축방향을 따라 지름 10㎝, 깊이 40㎝의 기둥구멍이 180㎝~200㎝ 간격으로 10개가 확인되었다. 화덕자리는 뚜렷하지 않으나 중앙부에서 약간 동쪽으로 치우친 곳에서 장타원형의 회색소토층이 110㎝×60㎝ 규모로 확인되었다. 2호 집터는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지름이 460㎝~500㎝로 남북 방향이 약간 길다. 내부시설은 확인되지 않으며 중심부분에 강돌[川石] 1매가 놓여있다. 3호 집터와 4호 집터는 말각방형(抹角方形)으로 내부에서 화덕자리가 확인되었다.

이후 1990년대 조사된 집터는 400여동이 확인되었으며, 그 형태에 따라 크게 장방형, 방형, 원형으로 나눌 수 있다. 대체로 방형계의 휴암리형(休岩里型) 집터와 원형의 송국리형(松菊里型) 집터가 주류를 이루며, 층위상으로 보아 장방형-방형-원형으로의 변화가 상정된다. 장방형 집터 내부에서는 2열로 초석(礎石)을 설치하였으며, 판석으로 조립한 화덕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방형 또는 원형 집터의 내부구조는 중앙에 작업구덩이로 생각되는 얕은 구덩이가 있고, 구덩이 양단에는 기둥구멍이 배치되어 있다. 일부 집터에서는 석재 및 옥(玉)의 가공 흔적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바닥은 단단하게 불다짐한 예도 관찰된다.

출토유물은 청동기시대 전기~중기로 추정되는 새김돌대문토기, 구멍무늬토기, 붉은간토기, 채문토기, 민무늬토기 등의 토기류와 간돌도끼, 홈자귀, 돌검, 돌화살촉, 돌창, 반달돌칼, 숫돌 등의 석기류, 그리고 가락바퀴, 그물추 등의 토제품이 출토되었다.

[의의와 평가]

대평리 유적지에서 발견된 집터유적은 장방형, 방형, 원형 등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하며, 집터 내부에 초석을 설치한다거나, 판석으로 조립한 화덕을 설치한 것이 특징으로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의 집터유적을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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