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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곡 선생」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615
한자 隅谷先生
영어의미역 Master Ugok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필자 노재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인물담
주요 등장인물 정온
관련지명 우곡마을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우곡 정온의 충절을 담은 인물담.

[채록/수집사항]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서문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정문석(남, 당시 63세)이다. 이 내용은 『진양군사』, 『진주시사』 등에도 소개되어 있다.

[내용]

우곡(隅谷) 정온(鄭溫)은 고려 조정에서 사헌대부를 지낸 인물로, 그와 관련하여 청맹설화(靑盲說話)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우곡 정온태조 이성계의 역성혁명(易姓革命)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진주시 사봉면에 내려와 은거하고 있을 때였다. 이성계가 우곡을 한양으로 불러들이려고 사신을 그 곳까지 보내자, 그는 사신에게 청맹(靑盲, 당달봉사)이라 벼슬에 나갈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그런데 마침 닭 한 마리가 마당으로 나오더니 햇볕에 말려 놓은 곡식을 쪼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우곡이 무심결에 “훠이, 훠이!” 하고 닭을 내쫓았다.

닭을 쫓는 우곡의 모습을 본 사신은 그가 앞을 보지 못한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사신은 솔잎을 따서 우곡의 눈앞에 갖다 대며 찌르는 시늉을 하였다. 그러나 우곡은 눈동자를 찔리면서도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결국 이성계의 사신은 우곡이 청맹이 틀림없다고 믿고 서울로 올라갔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포은 정몽주의 죽음과 야은 길재의 은둔, 그리고 우곡 정온의 청맹을 은나라의 삼인(三仁)에 비유하고 있다.

[모티브 분석]

이 설화의 기본 모티브는 불사이군의 충절이다. 이성계는 혁명에 성공한 후, 고려 유신들의 마음을 돌리고자 사람을 보내 새로운 조정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뜻 있는 고려 유신들은 대부분 이성계의 뜻을 따르지 않고, 깊은 산중 혹은 멀리 남쪽으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진주시를 포함한 서부 경상남도에도 우곡 정온의 설화처럼 이렇게 은둔하며 충절을 지킨 사례가 많다. 우곡 정온의 설화는 부당한 지배층의 온갖 회유와 고통을 이겨내고 지조를 지키는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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