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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오 처 진양정씨 효행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1680
한자 張之五妻晋陽鄭氏孝行碑
영어음역 Jang Jio Cheo Jinyang Jeongssi Hyohaengbi
영어의미역 Monument to the Filial Piety of Lady Jeong from Jinyang, Jang Jio's Wife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지도보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노재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효행비
건립시기/연도 1942년연표보기
관련인물 진양정씨|장지오
높이 141㎝
비두너비 99㎝
비두두께 70㎝
비두높이 42㎝
비두재질 백색 화강암
비좌너비 83㎝
비좌두께 70㎝
비좌높이 22㎝
비좌재질 백색 화강암
너비 53㎝
비신두께 23㎝
높이 141㎝
비신재질 화강암
비문찬자 하계휘(河啓輝)
소재지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에 있는 진양정씨의 효행을 기리는 비.

[건립경위]

진양정씨의 5세손 장춘원(張春源)과 6세손 장진의(張振義)가 중심이 되어 1942년에 건립하였다.

[위치]

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 월아리 마을회관 옆에 남향으로 있다.

[형태]

거북받침돌에 높이 141㎝, 폭 53㎝, 두께 23㎝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 중앙에는 태극문양 조각이 있다.

[금석문]

비의 제목은 ‘유인진양정씨효행비(孺人晋陽鄭氏孝行碑)’로, 비문은 하계휘(河啓輝)가 지었는데, 새긴 사람과 글을 쓴 사람은 알 수 없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여윈 진양정씨 부인은 어머니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예의범절이 일찍 드러났다. 장지오(張之五)에게 시집온 후 남편을 따르고, 시부모를 공경하여 항간에 칭찬이 자자하였다.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부지런히 옷감을 짜 몇 년 지나지 않아 집안이 윤택해졌다. 이 무렵 시아버지가 이름 모를 병을 얻어 온갖 약을 썼지만 효험도 없이 여러 달을 고생하였다. 갑자기 시아버지가 기절하였는데, 남편이 의원을 데리러 가서 돌아오지 않자, 부인은 부엌칼로 손가락을 잘라 시아버지의 입에 피를 넣어 주었다. 그러자 시아버지가 회생하였다. 이에 모든 마을 사람들이 “하늘이 낸 효부다”라고 칭송해마지 않았다. 그리고 이 지역 사림 백 여명이 연명으로 정장(呈狀)을 올리자, 부인은 “사람 자식으로 어버이를 섬김은 그 직분을 다할 뿐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제지하였다. “임오년 이월 5대손 장춘원과 6대손 장진의가 비를 세웠다.”하여 건립연대(1942년)를 기록하였다.

[현황]

비문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주위에 붉은 벽돌로 보호벽을 만들어 비석을 보호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양정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과 함께 유인동성이씨행적비(孺人東城李氏行蹟碑)와 구장장인숙기념비(區長張仁淑紀念碑)가 마을 입구에 함께 있어 지나는 사람들에게 효행과 선행의 의미를 깨우쳐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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