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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264
한자 昌寧成氏
영어음역 Changnyeong Seongssi
영어의미역 Changnyeong Seong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집필자 김학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 남성|진성면 중촌리 동산|수곡면 대천
집성촌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중촌리 동산|금산면 가방리 남성|금산면 용심|
입향시기/연도 1450년경
성씨시조 성인보(成仁輔)
입향시조 성우(成祐)

[정의]

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연원]

성씨는 원래 중국 성씨로 주나라 문왕의 일곱째 아들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후 당나라 때에 학사 성경이가 우리나라로 건너왔고 백제에는 성충, 신라에는 성저라는 사람이 있었으나 우리나라의 성씨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고증할 수 없다.

시조는 창녕에서 대대로 살아온 선비이며 고려 때 향직의 우두머리인 호장 중윤을 역임한 성인보(成仁輔)이다. 그 후손들도 창녕에 정착·세거함으로써 창녕(昌寧)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경위]

2세 성송국은 문하시중, 3세 성한필은 문하찬성사, 8세 성만용은 보문각태학사였으나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갔으며 손자 성자량이 세종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조정에 출사하였다. 성자량은 좌사간을 역임하였는데 창녕에서 가조로 이주하였고, 11세 성우는 장흥고 부사를 지냈는데 거창의 가조에서 진주의 가좌(嘉佐)로 입향하였다. 15세 부사 성여신[1546~1632]은 아들이 다섯인데 진주의 성씨는 이들의 후손이 다수를 차지한다.

[세거지현황]

진성면 중촌리 동산은 성여신의 장자인 매죽헌 성박(成鑮)의 후손이 살고, 금산면 용아리 용심은 둘째 아들 모성재 성용(成鏞)의 후손이 살며, 금산면 가방리 남성과 수곡에는 넷째 아들 천공 성순(成錞)의 후손이 세거한다.

[집성촌현황]

진성면 동산, 금산면 용심과 남성은 성여신의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묘역]

시조인 성인보의 묘소는 경상남도 창녕군 대지면 맥산에 있고 향사일은 음력 10월 1일이다.

[관련유적]

금산면 가방리 남성에 있는 반구정은 왜란이 끝나고 부사 성여신이 지었다가 중간에 허물어졌는데 후손들이 1902년에 중건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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