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2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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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必儁 |
영어음역 | Kang Piljun |
이칭/별칭 | 미백(美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임경희 |
[정의]
조선 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진주(晋州). 자(字)는 미백(美伯). 조선 중기의 무신인 강덕룡(姜德龍)[1560~1627]의 6대손으로 아버지는 강흥운(姜興雲)이다. 어머니는 인재(忍齋 ) 하윤관(河潤寬)의 딸이다.
[생애]
순박하고 온후하였으며, 행실을 지극히 하였다. 조선 후기의 학자인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저서『겸재집(謙齋集)』의 내용 중에 하홍도가 북인인 정인홍(鄭仁弘), 이이첨(李爾瞻) 등을 존숭(尊崇)한 문제로 인해 서인의 공격을 받게 되었던 일이 기록되어 있다. 강필준은 하홍도가 그 일로 인하여 어려움을 당하자 그를 위해 힘껏 변호를 했으며, 남명 조식(曺植)을 문묘에 종사할 것을 조정에 요청한 「승무소(陞廡䟽)」에 관한 논의를 주도하였다.
아우인 강식준(姜式儁)은 『진양속지(晋陽續誌)』권2「효행조(孝行條)」에 그 이름이 실려 있는데, 당시 마을 사람들은 형제가 부모에게 효도하고 우애가 깊은 것을 보고 ‘효우가(孝友家)’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