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403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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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誡 |
영어음역 | Han Gye |
이칭/별칭 | 신백(愼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경상남도 진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성문 |
[정의]
조선 전기의 선비.
[가계]
본관은 청주(淸州). 자는 신백(愼伯). 한여철(韓汝哲)의 아들이다.
[생애]
1590년(선조 23)에 생원에 합격하였다. 집에서는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었으며 주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도 돈독하였다. 그의 나이 약관(弱冠, 스무 살)이 못되어 부친상을 당하였는데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우 한응(韓膺)을 가르치는데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아우에게 항상 ‘네가 성인이 되지 못하면 이는 나의 허물이다’라 하면서 항상 타이르고 가르쳤다고 한다. 한응이 15살 때에 논책((論策, 시사 문제나 정치의 방책(方策) 등에 대하여 논한 글)을 짓게 되자 ‘나의 가르침은 끝났다’고 하고 비로소 함께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동등하게 대하였다. 주변 사람들의 천거를 받아 참봉(參奉)이 되었으며, 나중에 봉사(奉事)에 이르렀다. 진주 정수개(丁樹介)에 살았다. 『진양지(晋陽誌)』권3「인물조(人物條)」에 이름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