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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30007
한자 金時敏宣武功臣敎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성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급 시기/일시 1604년 10월연표보기 -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수급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12월 29일연표보기 -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보물 제147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 보물 재지정
소장처 국립 진주 박물관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남성동 169-17]
성격 고문서|교서
관련 인물 김시민
용도 공신녹권
발급자 선조
수급자 김시민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국립 진주 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 선조김시민에게 내린 선무공신 교서.

[개설]

공신 교서는 왕명 문서 가운데 문체나 재료 등에 있어 최고의 격식을 갖춘 문서였다. 사전에 공신 개개인에 맞는 문장을 별도로 짓게 하고, 교서 제작에 쓰일 비단 등도 별도로 마련한 뒤 서사를 맡은 관원이 정서하였고, 최종적으로 왕의 인장인 보인(寶印)을 찍어 발급하였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는 2006년 12월 29일 보물 제147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임진년(1592년)과 정유년(1597년)에 발발한 두 차례의 전란이 수습된 뒤 선조(宣祖)는 국란의 위기 속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책봉하였다. 선무공신은 임진왜란 당시 직접적으로 무공을 세웠거나 명나라에 병량 주청사(兵糧奏請使)로 다녀온 이들 가운데 공을 따져서 녹훈한 공신이다. 이들 공신에게는 왕명 문서인 공신 교서가 내려졌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는 1604년(선조 37) 10월 선조가 직접 내린 2등 공신 교서로, 1592년(선조 25) 10월 진주성(晋州城) 전투에서 이마에 왜군의 적탄을 맞고 전사한 김시민(金時敏)[1554~1592]의 공을 기리고 있다.

[형태]

가로 287㎝, 세로 38.4㎝ 크기로 두루마리[卷軸] 형태로 제작되었다.

[구성/내용]

조선 시대의 교서는 정형적인 서식이 엄격히 적용되었다. 문서의 첫 부분에 ‘교(敎) 수취자 성명 서(書)’를 적은 다음 ‘왕약왈(王若曰)’ 이하에 공을 치하하고 공신으로서 받게 될 상전과 특권을 적었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의 첫 부분에는 “교(敎) 가선대부 경상 우도 병마절도사 겸 진주 목사 증효충장의협력 선무공신 자헌대부 병조 판서 겸 지의금부사 상락군 김시민 서(書)”라고 적혀 있다.

[의의와 평가]

2016년 현재까지 남아 있는 선무공신 교서의 원본은 7점으로 확인된다. 김시민 선무공신 교서임진왜란과 선무공신 연구 및 공신 교서 자체에 대한 연구에 필요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2006년 되찾아오면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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