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700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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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卞季良 碑閣 |
이칭/별칭 | 변씨 삼현 비각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3길 5[신호리 204-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영록 |
건립 시기/일시 | 1946년 - 밀양 변계량 비각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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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3년 7월 20일 - 변계량 비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18년 12월 20일 - 변계량 비각에서 밀양 변계량 비각으로 개칭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6월 29일 - 밀양 변계량 비각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
현 소재지 | 밀양 변계량 비각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3길 5[신호리 204-1] |
원소재지 | 밀양 변계량 비각 -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3길 5[신호리 204-1] |
성격 | 비각 |
양식 |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 |
관련 인물 | 변계량|변옥란|변중량 |
크기(높이, 너비, 두께) | 186㎝[비신 높이]|75㎝[비신 너비]|34㎝[비신 두께]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 |
[정의]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변계량과 변옥란, 변중량의 행적을 기록한 비석과 비각.
[개설]
밀양 변계량 비각(密陽卞季良碑閣)은 조선 전기의 문신이었던 변계량(卞季良)[1369~1430]과 변계량의 아버지 변옥란(卞玉鸞)[1322~1395], 변계량의 친형 변중량(卞仲良)[?~1398]의 행적이 담긴 유허비를 보호하고 있는 비각이다. 변씨 삼현 비각(卞氏三賢碑閣)으로 부르기도 한다.
변계량의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이다. 변계량은 태종~세종대를 대표하는 관료로 수문전제학, 의정부참찬, 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태조실록』, 『정종실록』, 『태종실록』의 편찬을 주도하기도 했으며, 『고려사』 개수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과거제를 개혁했으며, 1419년 태종이 대마도 정벌을 결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변옥란은 고려 말에 삼판서(三判書)를 지내고, 이성계를 추대하여 조선 초기 개국원종공신에 책록되었다. 변중량은 이성계의 이복형 이원계의 사위로 고려 말에 관직에 진출하였으며, 조선의 개국공신이 되었다. 그러나 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 일파로 몰려 숙청당하였다. 시와 문장에 능하였고, 문집으로 『춘당유고』를 남겼다.
[건립 경위]
밀양 변계량 비각은 1946년 변계량의 후손과 향림들이 변계량과 변옥란, 변중량이 생장한 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위치]
밀양 변계량 비각은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 대구마을 입구 큰길가에 있다.
[형태]
밀양 변계량 비각의 비신 높이는 186㎝, 너비 75㎝, 두께 34㎝이다. 비의 받침인 부좌는 거북이의 형상을 한 귀부형(龜趺形)이며, 개석은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놓고 싸우는 이수형(螭首形)이다. 비각은 단칸 규모이며, 공포 유형은 익공이 3개인 삼익공(三翼工)이다.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의 구조로 되어 있다. 비각의 둘레에 담장을 두르고 정면에 출입문을 두었다.
[금석문]
밀양 변계량 비각은 비신의 상부에 ‘밀양변씨삼현유허비병서(密陽卞氏三賢遺墟碑銘幷序)’라고 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변계량, 변옥란, 변중량의 행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현황]
밀양 변계량 비각은 1983년 7월 20일 변계량 비각이라는 명칭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밀양 변계량 비각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의의와 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