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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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진주지역을 대표하는 자산가이자 친일파. 본관은 진양. 1885년 출생하여 경상남도 진주군 가차례면 강주동에서 성장하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유년시절을 별다른 어려움 없이 보냈다. 1913년 당시 재산이 40만원에 달할 정도로 대단한 자산가였으며, 일제의 식민정책의 정당성을 홍보하고 협력한 친일인사이다. 학력에 관한 사항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관리로 진출한 사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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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경상남도 진주시에 설립되었던 인쇄소. 진주지방에서 가장 먼저 평판인쇄를 도입한 인쇄소로, 1936년 9월 15일자 『영남춘추』의 인쇄인으로 등록되면서 진주 인쇄계의 선두로 자리매김하였다. 평판인쇄는 일반적으로 오프셋인쇄라고 하는데, 잉크가 묻는 부분과 묻지 않는 부분이 같은 평면상에 있는 데서 나온 말이다. 비록 일본인이 창업한 인쇄소이나 선명한 인물사진과 풍경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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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창간된 전국 최초의 지방신문.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은 1883년 박문국에서 발행된 『한성순보』이다. 그 이후 개화기를 거치면서 『독립신문』, 『경성신문』, 『황성신문』 등이 서울을 중심으로 발행되었다. 또한 외국인에 의해 서울을 비롯하여 대구, 인천 등 지방에서도 신문이 발행되었다. 대구와 평양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주축이 되어 신문을 발행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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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진주지역의 친일파. 1887년 8월 5일 경상남도 진주군 내동면 독산리에서 태어나 대부호인 정부인 김씨의 손자로 입양, 성장하였다. 일제강점기에 380만원에 달하는 자산을 소유한 대지주로서 서울 이부자[李鳳來], 경주 최부자[崔浚]와 더불어 진주 김부자[김기태]로 일컬어지는 남한의 3대 갑부 중 한사람이었다. 진양군 문산면 삼곡리에서 사업을 하다가 지병 악화로 194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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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조합은 1910년 형평사가 형성되기 전 일종의 백정들의 협동조합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백정은 천민이었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신분제가 철폐되었으나, 여전히 백정들은 신분차별을 받았다. 게다가 일제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도축장의 경영이 일본인에게 넘어감으로써 생존의 위협까지 감수해야 할 형편이었다. 신분차별과 생존의 위협에 위기감을 느낀 백정들이 1910년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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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언론인·문화예술인. 1916년 경상남도 창원에서 출생하였다. 1931년 진주공립농업학교 재학 중 TK단에 가담, 활동하다가 체포당하였다. 1939년 도일하여 니혼대학[日本大學]에 재학 중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선동한 혐의를 받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송환되어 2년간 옥고를 치루었다. 광복 이후 『경남일보』 주필·사장을 역임하는 가운데 개천예술제를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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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서 신문지라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나 정보를 제공하는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 10월 31일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 신문은 중앙정부기관에서 발행한 신문으로 국민들에게 외국의 사정과 개화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은 1909년 10월 15일에 진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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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근대적 의미의 진주지역 언론은 1909년 10월 15일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지인 『경남일보』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남일보』가 1914년 강제 폐간된 후 진주의 언론은 『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경성일보』·『매일신보』·『 조선민보』·『남조선시보』의 진주지국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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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9월 1일 진주에서 창간된 월간지.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폐간된 지 20여 년 만에 편집인 겸 발행인 신현수(申鉉壽), 인쇄인 강주수(姜周秀)에 의해 창간되었다. 매월 1일 8면씩 발행하였으나 1936년 1월1일자인 신년특집호가 10면 발행되었고, 지령 9호인 1936년 5월부터는 매월 1일에서 15일로 변경되어 발간되었다. 당시 구독료는 10전(錢)이고,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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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10월 15일 경상남도 진주군 진주면 성내1동에서 우리나라 사람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최초의 지방신문. 당시 우리나라 사람이 발행한 신문으로『황성신문(皇城新聞)』·『뎨국신문』·『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만세보(萬歲報)』·『대한민보(大韓民報)』 등이 있었으나 이는 모두 서울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발행한 중앙지였다. 나라의 기운이 일본의 침략으로 기울어지면서 직접 총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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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나 그림을 기계적·화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종이나 천, 기타 물체의 표면에 복제하는 일. 인쇄란 일반적으로 문자나 그림 등을 여려 방법을 통하여 종이나 천 등의 물체 표면에 복사하는 일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인쇄란 인쇄물을 만들기 위한 복제 기술 및 그 행위를 지칭하는 말이다. 인쇄물은 시각적 전달매체이므로 의사소통 수단의 하나에 해당하며, 최근에는 감각과 정서의 반응을 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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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언론인·애국계몽운동가. 본관은 인동(仁同). 초명은 지윤(志尹), 자는 화명(和明)·순소(舜韶), 호는 위암(韋庵)·숭양산인(嵩陽山人). 경상북도 상주 출신. 장용상(張龍相)의 아들이며. 장석봉(張錫鳳)의 문인이다. 1864년 11월 30일 경상북도 상주군 내동면 동곽리에서 태어났다. 장지연은 일찍이 장석봉(張錫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894년(고종 31) 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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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극장에서 초연된 희곡 작품. 「젊은 계승자」는 파성(巴城) 설창수(薛昌洙)[1916~1998]의 희곡으로, 1945년 『경남일보』에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설창수 작, 박오종 연출의 「젊은 계승자(繼承者)」는 1945년 12월에 진주극장에서 초연 당시 전체 3막으로 3일간 공연되었으며, 당시 문화건설대의 설창수, 김삼성, 박오종, 이창호 등이 출연하였다. 다음해인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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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를 마주 세워 싸우게 하고 이를 즐기는, 진주지역에 전래된 전통 민속놀이. 진주 소싸움에 관하여는 여러 곳에 그 기록이 전해지고 사진자료들도 많이 남아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제12권 〈소싸움〉항목에서는 “경상남도 지방에서 주로 성행하였으며……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남강의 모랫벌에서 소싸움을 해왔으나…… ”라고 적고 있다. 같은 책 제21권의 〈진주시〉 항목의 민속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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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개와 풍류를 지닌 진주 기생들의 생활 모습과 그로 인해 형성된 문화상. 진주의 논개(論介), 평양의 계월향(桂月香)으로 인해 ‘남 진주, 북 평양’란 말이 회자될 정도로 진주의 풍류와 멋은 그 명성이 높았다. 그리하여 조선 기녀하면 “일강계(一江界), 이평양(二平壤), 삼진주(三晋州)”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1910년 1월 7일자 『경남일보』에 위암 장지연(張志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