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수
-
1935년 1월 1일 진주에서 창간되었던 월간지. 창간사에 ‘부(富)에 굴하지 아니하고, 세(勢) 위력에 동(動)하지 않고, 3군(軍)의 용(勇)에도 뺏기지 않으며 비록 요순에게 악이 있다면 악 그대로, 걸주(桀紂)에게 선이 있다면 선 그대로 추호의 편협 없이 공정하고 엄격히 판단하겠다’ 라는 굳건한 좌표를 명시하며 창건하였다. 8단의 타블로이드 4면이며, 본문 활자는 5호, 구독...
-
매스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로서 신문지라는 대중매체를 통하여 정기적으로 뉴스나 정보를 제공하는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신문은 1883년 10월 31일 창간된 『한성순보』이다. 이 신문은 중앙정부기관에서 발행한 신문으로 국민들에게 외국의 사정과 개화사상을 널리 알리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반면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신문은 1909년 10월 15일에 진주에서...
-
매체를 통하여 어떤 사실을 알리거나 어떤 문제에 대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 근대적 의미의 진주지역 언론은 1909년 10월 15일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지방지인 『경남일보』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남일보』가 1914년 강제 폐간된 후 진주의 언론은 『동아일보』·『조선일보』·『조선중앙일보』·『경성일보』·『매일신보』·『 조선민보』·『남조선시보』의 진주지국과 『...
-
1934년 9월 1일 진주에서 창간된 월간지. 최초의 지방신문인 『경남일보』가 폐간된 지 20여 년 만에 편집인 겸 발행인 신현수(申鉉壽), 인쇄인 강주수(姜周秀)에 의해 창간되었다. 매월 1일 8면씩 발행하였으나 1936년 1월1일자인 신년특집호가 10면 발행되었고, 지령 9호인 1936년 5월부터는 매월 1일에서 15일로 변경되어 발간되었다. 당시 구독료는 10전(錢)이고, 광...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설립된 민족사학 교육재단. 3·1운동 이후 민족자각(民族自覺)의 기운이 일어날 무렵, 경상남도의 유지들은 조국의 독립이 오직 인재양성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민족재단을 세워 교육사업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조선의 독립과 인재양성을 위하여 설립되었다. 1919년 11월 진주군 지수면의 부농 허준(許駿)이 5백석짜리(당시 7만원 상당)...
-
일제강점기에 진주에 있었던 기생조합. 조선시대의 기생제도 하에서 기생은 관기(官妓)로서 궁중의 약방이나 상의원(尙衣院 : 왕의 의복이나 궁중의 일용품을 맡던 관부) 등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평소에는 약을 달이거나 바느질을 하다가 연회가 있을 때는 불려가 노래나 춤을 추었다. 국권을 상실한 후 관기제도가 없어지면서 서울의 기생들이 처음으로 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이 한성권번(漢城券番...
-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까지의 한국전쟁 기간 중 진주지역에서 벌어진 사건. 한국전쟁은 민족의 비극으로서 우리 사회에 큰 피해와 흔적을 남겼다. 따라서 한국전쟁의 기원과 원인, 수행 주체와 성격에 관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중대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 중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책임 주체를 둘러싼 논란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전통주의설과 수정주의설 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