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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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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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최씨(全州崔氏) : 열부(烈婦). 최운개(崔云凱)의 딸이요, 승사랑(承仕郞) 진양(晉陽)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임진년에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항상 칼을 차고 스스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만일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죽음을 결단할 것”이라고 했다. 해를 넘겨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과연 왜적이 이웃 마을을 핍박하여 거의 모두 죽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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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성산이씨는 본래 성품이 착하고 효성스러웠는데, 남편 정규로가 병이 들자, 집이 가난한 탓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돈을 마련하여 약을 구했다. 또 남편 대신 자신이 죽기를 하늘에 기원했다. 마침내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예로서 장례를 치르고 난 후, 침실로 들어가 자진하여 남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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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하공진(河拱辰)의 후손으로 하위보(河魏寶)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하변(河忭)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 이유눌(李惟訥)의 딸이다. 부인은 연일정씨(延日鄭氏) 정계(鄭戒)의 딸이다. 1636년(인조 14) 출생하여 일찍부터 문장에 뛰어나 주위의 촉망을 받았다. 1660년(현종 1) 25세에 생원에 합격했는데 스스로 이름을 숨기면서 성균관에 들어가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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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자하(子賀), 호는 단주(丹州). 할아버지는 하숙(河淑)이고, 아버지는 생원 하위보(河魏寶)이며, 어머니는 진양강씨이다. 부인은 성산이씨이며,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아우이다. 1581년(선조 14) 태어났다. 1597년 정유재란 때 17세의 나이로 왜군에게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적이 그의 풍모와 문사가 훌륭하고 예의가 반듯하므로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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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성종 때의 문신 운수당(雲水堂) 하윤(河潤)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공조참의를 지낸 하경호(河慶灝)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星山李氏)이다. 진주 운문에 살았다. 효종 때 훈련원주부를 지냈고 현량과(賢良科)를 통해 특별히 선전관이 되어 왕의 북벌 논의에 참여하였다. 효종이 승하하자 피를 토하며 곡을 하였다. 이후 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두문불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