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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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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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경휘(河鏡輝) : 자는 공곽(公廓)이요, 호는 매헌(梅軒)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만력(萬曆) 기축년(선조 22년, 1589)에 사마시에 올랐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어기지 않았다. 임진란 때 환성공(喚醒公)이 상주성(尙州城)으로 달려가는데 겨우 북문에 이르러 적병이 갑자기 닥쳤다. “여기가 나의 죽을 곳이다. 너는 빨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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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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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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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효자 정용균(鄭龍均)[1838~1871]의 실기(實記)를 기록하여 편찬한 문집. 정용균의 자는 윤원(允元)이며, 호는 모재(慕齋)로서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침착하고 진중하여 학문하기 좋아하여 성현을 본받고자 하였다. 정용균은 특히 어버이를 섬김에 효를 다하였다. ‘모친이 학질을 앓아 병이 깊어 해를 넘기자 새벽마다 하늘에 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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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선비. 자는 거원(巨源)으로,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둘째 아들이다. 황암(崲岩) 박제인(朴齊仁)의 문하에서 학업을 닦아 짧은 기간에 학문을 성취할 수 있었다. 나이 28세 때 어머니 상을 당하자 슬퍼함이 예를 넘어서 병이 들 지경이었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감찰(監察)을 추증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효행조(孝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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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치경(致敬), 호는 용헌(容軒).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천품이 강직하고 도량이 컸으며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서는 마음과 몸을 다하여 지극히 하였다. 그리고 향당(鄕黨)의 일에는 한결같이 공정하게 처리하니 사람들이 칭송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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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자는 수백(壽伯).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증손이다. 글씨를 잘 써서 이름을 날렸으나 문과에는 실패하고 무과에 급제하여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깊어 어머니의 병환 때에는 귀한 물고기와 산삼을 구해 병을 고쳐 드렸고,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죽으로만 3년을 연명하며 예를 다했다. 마을 사람들이 그 효성에 감복하여 경상감사에게 알려 세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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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진주. 자는 윤원(允元), 호는 모재(慕齋).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성품이 침중하였으며,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겼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학질을 앓았다. 새벽마다 어머니가 쾌차하시기를 빌었더니 홀연히 새매가 메추리를 떨어뜨렸다. 이를 세 번에 걸쳐 드리니 어머니의 병이 드디어 나았다. 나이 34세에 병사하자 그 아우 정낙균이 형의 죽음을 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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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자는 하서(夏瑞). 호는 동호(桐湖) 또는 초객(樵客). 석정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동곡(桐谷)에 살면서 학문과 문학에 힘썼다. 모든 일에 있어 유학을 지키는 일에 힘썼으며, 조선 중기 진주 지역의 대학자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문집인 『겸재집(謙齋集)』 간행에 참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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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심원(深源).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아들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의하면, 천성이 온순하고 행실이 정직하였다. 아우 정렴(鄭濂)과 더불어 박황암(朴篁岩)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문의 요점을 얻었다. 저술한 유문이 불에 타서 소실되니 다 잃으니 사람들이 애석하게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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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옥여(玉汝). 호는 은와(隱窩).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도량이 넓고 품성이 온후하였다. 9세에 부친상을 만났는데 장례를 행함이 한결같아, 성인과 같이 법도에 따랐고 처세에 모범이 되었다. 경림서원(慶林書院)[경상남도 진주]과 종천서원(宗川書院)[경상남도 진주] 등 두 서원의 원장이 되었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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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자는 응원(應遠), 호는 운파(雲坡). 석정(石亭) 정홍조(鄭弘祚)의 후손이다. 천성이 순후(淳厚)하고 효우(孝友)가 돈독하였다. 아버지가 병이 들자 6년 동안 손수 약을 달여 드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예서(隷書)를 쓰는 데 능했다고 한다. 당시에 세간에서 진주 운곡(雲谷)에 여덟 명의 재사(才士)가 있다고 일컬었는데 정한균도 그 중의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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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진주정씨의 원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 6촌 중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다. 그러나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정씨가 여덟 파가 되어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한다. 진주정씨는 상계가 연결되지 않는 8파가 각각의 중시조를 시조로 삼고 고려시대부터 진주에 산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