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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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1642년(인조 20년)부터 1643년까지 진주목사로 재직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1「임관조(任官條)」에는 진주목사로 있는 동안 고을의 선생안(先生案)을 닦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강대수가 진주목사로 부임해 있을 당시, 그의 덕행과 선정을 기념하여 선정비가 세워졌다. 비의 제목은 "목사강후대수청덕선정비(牧使姜侯大遂淸德善政碑)"로,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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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강대수(姜大遂)의 선정비. 1642년(인조 20)~1643년 동안 진주목사를 지낸 강대수의 덕행과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위치한 은열사(殷烈祠) 내에 위치한다. 귀부 위에 높이 205㎝, 너비 73㎝, 두께 15㎝의 몸돌을 세우고 그 위에 머릿돌을 얹었다. 머릿돌은 사각형으로 앞면에는 여의주를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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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도시근린공원. 공원이 위치한 동의 이름을 따서 옥봉공원이라 하였다. 또한 옥봉동에 소재하고 있는 금산(錦山)[92.3m]을 중심으로 조성되어 있어 ‘금산공원’이라고도 한다. 1986년 3월 6일 건설교통부 고시 제93호에 의거, 전체 면적 69,930㎡에 도시근린공원이 지정되었다. 진주시내 중심부의 동쪽에 구릉지를 가로지르는 사잇고개를 경계로 남봉(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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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시내 중심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옥봉산(玉峰山)의 이름을 따서 ‘옥봉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옥봉면(玉峯面) 교동(校洞)·탑동(塔洞)·비석촌(碑石村)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옥봉면 전역과 성내면(城內面) 4동, 대안동(大安洞) 1동·2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道洞面) 옥봉리라 하였다.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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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장군 강민첨(姜民瞻)의 사당.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옥봉동의 강민첨 탄생지는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14호로 지정되었는데, 장군의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하여 1980년대에 사당과 정문, 그리고 재실을 신축, 정화하였다. 은열사는 강민첨의 호를 따서 이름 지었으며, 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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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에 위치한 은열사(殷烈祠) 내의 암벽에 새겨진 글씨. 은열사 석각은 강민첨(姜民瞻)[?~1021] 장군의 사당인 은열사의 뒤편 화강암벽에 새겨진 ‘강은열공유지 (姜殷烈公遺址)’라는 글씨로서 1974년 12월 28일에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호로 지정되었다. 자연 암벽으로 이루어진 석각 바위의 전체 크기는 가로 5m 세로 1.4m이다. 암벽의 오른쪽에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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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에서 1910년까지 조선왕조가 지속되었던 시기. 1392년(태조 1) 진주를 진양이라 하고 태조현비의 내향이므로 목을 높여서 진양대도호부라 개칭, 진양대도호부사를 두었다. 1402년(태종 2) 진양을 진주로 고치고 대도호부를 목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의 대대적 개편 때 진주는 목으로서 정3품의 목사가 배치되고, 그 아래 판관(종5품)과 교수(종6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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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에 있는 고려 전기 때의 장군 강민첨의 탄생유적지. 강민첨은 고려 전기의 명신 겸 장군으로 본관은 진주, 태어난 곳도 진주이다. 1018년(현종 9) 거란의 소배압(蕭排押)이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침입하자 강감찬(姜邯贊) 장군을 도와 부원수로서 귀주전투에서 적을 격파, 전승을 거둔 바 있다. 그 공으로 1019년에 응양상장군주국이 되고, 곧 이어 우산기상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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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충신은 전통시대의 사상을 포괄하여 내려오는 용어이지만, 나라에 충성함은 예나 지금이나 변할 수 없는 기본적 덕목이다. 이러한 충성심을 발휘하여 오늘날까지 후세의 칭송을 받고 있는 충신들은 그 마음이 항상 나라와 임금, 그리고 겨레를 위하는 일념에 차 있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개인의 영달이나 어느 한 집단의 권력 쟁취를 위하여 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