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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진주향교 입구에 있는 비. 진주향교 출입자를 통제하기 위해 세운 비로, 여기에 출입하는 자는 누구라도 말이나 가마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야 함을 알린 내용의 비이다. 하마비는 조선시대 종묘 및 궐문 앞에 세워놓은 비로,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글이 적혀 있다. 진주향교 는 고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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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북동 에 있는 진주향교 를 이건한 사실을 기록한 사적비. 진주향교 가 언제 세워졌는지 분명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987년(고려 성종 6)에 지금의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의 모습으로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수학원(修學院), 학사(學舍), 서재(書齋), 사교당(四敎堂) 등 수차례의 중수 및 중건을 거듭하였는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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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에 전국에 12목을 설치할 때 진주목 이 되었다. 이에 앞서 광종 때에는 진주향교 가 창설되어 진주 의 학동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는데, 고려 초의 장군으로 ...이며 학자였던 하륜(河崙) , 조선 초의 무신 하경복(河敬復) 등이 모두 이 진주향교 에서 수학하여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995년에는 전국이 10도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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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 . 벼슬을 여러 번 옮겨서 한림원의 직한림까지 올랐다. 어려서부터 진주향교 에서 글을 읽었는데 남달리 학문이 뛰어나 글을 잘 지으니 한강 이남의 학동 중에서는 제일이라 하였다. 1212년(강종 1) 봄에 과거에 응시하려 하였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는 관원에게 호소하여 방면해줄 것을 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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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을 보고 이 나라는 장차 나라가 아닐 것이다. 금수의 나라가 될 것이라며 위정척사의 생각을 굳건히 가지고 있었다. 당시의 유학자 월고 조성가(趙性家) 와 함께 진주향교 에서 행한 향음주례에 참석해 『대학』 등을 강론했으며 산천재(山川齋) 에서 『남명집』 을 수정하는 일에 함께 참여를 했다. 한때 과거에 뜻을 두고 향시에 합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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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 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남동 산 456번지 에 있다. 진주시 의 동쪽에 있는 진주향교 의 맞은편에 남북 두개의 봉우리를 가진 독립구릉이 위치하고 있다. 이 중 남봉은 해발 64.7m, 북봉은 해발 92.3m이며, 이 봉우리를 일반적으로 수정봉 · 옥봉 으로 부르고 있다. 옥봉고분군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