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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402049
한자 晋州劍舞
영어음역 Jinju Geommu
영어의미역 Jinju Sword Dance
이칭/별칭 진주8검무,진주칼춤,진주검기무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무형 유산
유형 작품/무용과 민속극
지역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산 171-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수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67년 1월 16일연표보기 - 진주검무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진주검무 국가무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향악정재|민속무용|교방춤|검무
형식구분 8검무
가창자/시연자 최순이|김자진|서상달|김옥주|강귀례|최예분(崔禮分)|이윤례(李潤禮)|이음전(李音全)|김수악(金壽岳)|성계옥(成季玉)
박자구조 4분의 6박자[도드리장단]|8분의 12박자[타령장단]
가창시기 상례
문화재 지정 번호 국가무형문화재

[정의]

경상남도 진주지역에서 전승되어 온 여성검무.

[개설]

황창무에서 비롯된 검무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무용 중 역사가 가장 오래된 것인데, 진주검무를 진주검기무 또는 진주칼춤이라고도 하며 대궐 안에서 열렸던 잔치 때 행하던 춤의 하나이다.

진주검무의 유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신라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죽은 소년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춤을 추었다는 설과 논개의 얼을 달래기 위해 진주기생들이 칼춤을 춘데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편, 원래는 전쟁터에서 군사들의 사기 충전과 승전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진주검무를 추기 시작하였을 것이라는 입장도 있다. 이에 의하면 이후 왕 앞에서 공연되었던 춤으로 진주검무가 언제 궁중으로 흘러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진주감영(현재의 진주시청)에 예속되어 있던 교방청(敎坊廳)[일종의 기생학교] 기녀들에 의해 전승되었던 춤으로 궁중기녀들이 낙향하던 교방청 관기들에게 진주검무를 가르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구성]

진주교방청의 춤 전통을 이어온 진주검무를 구성하는 춤사위 종류로는 한삼을 끼고 무릎을 굽혀 도는 숙은사위, 앉아서 추는 앉은사위, 허리를 앞으로 엎쳤다가 뒤로 제치며 빙빙 도는 연풍대가락, 맨손으로 팔을 펴는 손 사위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이 다른 검무에 비해 모두 독특하다.

[형식]

다른 검무에서는 처음에 맨손으로 춤을 시작하여 칼을 어우른 다음 칼을 들어 춤추지만, 진주검무는 한삼을 끼고 춤을 추다가 한삼을 빼고 맨손으로 다양한 무태를 보인다.

다른 검무는 대부분 4인에 의하여 추어지는 4검무(四劍舞)이지만 진주검무는 8인의 무원에 의하여 연희되는 8검무(八劍舞)이다.

또한 다른 검무는 타령장단으로 시작하여 타령장단 일색으로 추어지는데 반하여, 진주검무는 도드리장단으로 시작하여 타령장단·허튼 타령장단·타령장단·자진 타령장단·자진모리·허튼 타령장단 순으로 이어지는 형식으로 타령장단에 느린 타령장단을 혼용하고 몹시 빠른 타령장단까지도 사용한다.

[내용]

도드리장단을 치면 무복(武服)을 입은 8명의 무용수가 일렬로 입장하고 무대 중앙에 종대로 마주한 다음 양손에 들고 온 칼을 어깨넓이로 벌려놓은 뒤에 상대편과 춤추며 서로 앞으로 나아가 등지고 숙은사위로 춤추고 나서 중앙에서 만나 서로 상대편의 어깨와 허리에 손을 얹고 어르며 춤춘 다음 갈라서서 한삼을 빼고 입춤사위를 춘다.

칼 앞에 모여 방석돌이를 춘 뒤에 칼 앞에 앉아 전복 자락을 양손에 잡고 어우른 후,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칼을 잡고 일어나 2열에 상대한 채로 밀고 밀리는 무작을 한 다음 8인이 원을 만들어 연풍대를 돌고 무대 전면에 1열 횡대로 서서 좌우로 양 칼질을 한 다음 절하고 물러난다.

[옷차림]

의상은 무복으로 남색 갑사 전복에 붉은 전대를 두르고 검은색 전립을 쓰며 9색(백·홍·청·분홍·남·녹·황·연두)의 한삼을 착용한다.

[악기 및 도구]

반주악기로는 피리, 저(가로로 불게 되어 있는 관악기), 해금, 장구, 북 등이 쓰인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조선시대 지방 교방청이 설치되었던 지역에서는 검무가 성행하였던 바, 교방청 소속 기녀들에 의해 관(官) 주도의 공식 행사나 각종 연회에서 검무가 빈번하게 연행되어 왔다.

[관련의례]

진주검무를 포함하는 검무의 연행역사를 보면 무굿에서의 대감거리·부정거리·장군거리 등에서 검무가 행해졌으며, 장례의식 때 역시 상여를 인도하는 상여꾼 중 일부가 칼을 휘두르며 연행하는 칼춤을 추었고, 과거에 사형 집행장에서는 사형집행에 앞서 망나니가 죄인의 목을 베기 전에 칼춤으로써 난장을 꾸미기도 하였다.

[현황]

진주검무의 자세한 전승내력은 한말 무렵으로 추정되는데, 당시 진주감영 교방청에 소속된 기생이었던 최순이가 궁중의 진연도감청(進宴都監廳)에 선발되어 순종대까지 궁중여기로 활동하다가 진주로 낙향하여 진주권번을 중심으로 검무를 비롯한 다양한 종목의 전통춤을 전습시키기 시작하면서 진주검무가 전승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절에 진주권번에서 춤을 배운 김자진·서상달·김옥주·강귀례·최예분·김수악 등은 이후 진주검무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모두 기능보유자가 되었다. 현재 김수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작고하였다.

현재 진주검무는 성계옥이 중심이 된 진주민속예술보존회를 주축으로 전승되고 있으며, 진주검무는 원래 4검무였으나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1967년에 8검무로 바뀌어 현재 진주검무는 일반적으로 8검무로 추어지고 있다.

[의의와 평가]

진주검무는 연출 형식, 춤가락, 칼 쓰는 법 등 모든 기법이 과거 궁중에서 연희되던 검무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예술적으로 높이 평가되는 무용이다. 1967년 1월 16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국가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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