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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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양씨(南原梁氏) : 효열부(孝烈婦). 승의랑(承義郞) 진양(晉陽) 강수제(姜壽齊)의 아내요, 찰방(察訪) 양장(梁樟)의 딸이다. 집에 있을 때는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섬겼다. 나이 15세에 어머니의 병이 위독하자 손가락을 끊어 입에 넣어서 소생할 수 있었다. 시집을 가서는 시부모를 섬김에 정성과 공경을 다했다. 지아비가 죽자 양씨가 이르기를 “내가 지하로 따르고자 하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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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최씨(全州崔氏) : 열부(烈婦). 최운개(崔云凱)의 딸이요, 승사랑(承仕郞) 진양(晉陽) 정승업(鄭承業)의 아내다. 임진년에 난리가 났다는 말을 듣고 항상 칼을 차고 스스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만일 불행한 일을 만나게 되면 나는 반드시 이것으로써 죽음을 결단할 것”이라고 했다. 해를 넘겨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과연 왜적이 이웃 마을을 핍박하여 거의 모두 죽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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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갈곡은 지형이 칡 형태로 생겼으며, 산에 칡이 유난히 많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진주군 갈곡면 외동, 상촌동의 두 마을을 1914년 갈촌리로 통합하였으며, 1995년 11월 갈촌리에서 갈곡리(葛谷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고도 100m 내외의 산지 사이로 계곡이 발달되어 있으며, 남강의 지류인 영천강으로 흐르는 소하천변을 따라 도로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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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하여 잣골이라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송백리( 松柏里)라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때 밀양박씨, 김해김씨의 선조가 피란하여 처음 이주하였고 그 후 고성이씨가 속사리에서 이주하여 현재 약 100가구가 살고 있다. 1914년, 진주군 금산면(今山面) 백동(栢洞)의 일부를 송백리( 松柏里)라 명명하였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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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에 있는 열부 밀양박씨의 행적을 기리는 비. 황기찬의 처 밀양박씨는 남편이 전라도 지방에 나갔다가 죽자 스스로 남편의 시신을 옮겨와 고향에 묘를 마련하고, 부지런히 일해 자식들을 훌륭히 키웠다. 그 열행을 기리기 위해 자손들이 세웠다. 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 대축리 함촌마을의 입구 도로변에 위치한다.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높이 142㎝, 너비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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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밀양박씨는 시부모를 잘 봉양하고 남편을 공경하였는데, 불행하게도 일찍 과부가 되었다. 슬하에 어린 아이가 있어 남편을 잃은 애통함을 억제하고 시부모를 위로하면서 30년간 수절하였다. 그동안 음식은 소채로 하고, 의복도 소복으로 하였으며, 세수하지 않고 머리에 빗질도 하지 않았다. 시부모가 중한 병이 들자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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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인조대왕이 능양군(綾陽君)으로 있을 때 고성에 있는 심부원군을 만나러 장안산을 지날 때 산세가 수려하여 산중의 암자에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그 후 동네의 명칭을 임금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장안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이반성면 후촌동(後村洞), 반덕동(反德洞), 사령동(沙寧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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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서 활동한 서예가. 1909년에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아버지 정상진과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나 부친이 건립한 비봉루의 현판을 쓰기 위해 서예에 입문하여 서예가의 길에 들어섰다. 평생을 서예에 매진하면서 진주시를 벗어나지 않고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만 진력하였으며, 부친이 건립한 비봉루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에 별세하였다. 부친인 정상진이 건립한 비봉루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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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모태곡면(毛台谷面) 정자동(亭子洞)과 평방동(坪芳洞) 일부를 통합하여 정평리라 하면서, 정자동의 정(亭)자와 평방동의 평(坪)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정자마을은 평방마을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백 년 된 정자나무가 집단으로 많이 있는 마을이다. 조선 이후 도룡골[道龍谷], 집수골[集水谷], 아랫골, 배량골, 창대골 등에 1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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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지역에 대대로 내려오는 성씨와 성씨들이 대성을 이루어 모여 사는 마을. 진주는 신라시대 구주의 하나로서 고려와 조선시대를 통하여 항상 영남의 계수관으로 그 위치를 지켜왔으며 토성세력도 강성하였다. 진주의 성씨는 정(鄭), 하(河), 강(姜), 류(柳), 소(蘇), 임(任), 강(康), 김(金), 박(朴)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진주목(晉州牧) 조에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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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부. 남편은 천사택(千思澤)이고, 아버지는 박헌형(朴憲衡)이다. 진주 설매에 살았다. 시집가기 전부터 현모양처의 기품이 배어있었는데, 19세 되던 때에 천사택(千思澤)에게 시집가서 시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남편에게 순종하였다. 시어머니가 병이 들어 수개월간 회복하지 못하자 산과 하늘에 시어머니의 쾌차를 비는 제사를 올리는 등 극진히 간호하였다. 그러나, 결국 시어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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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학자 윤선(尹銑)[1559~1639]의 문집. 윤선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자는 택원(澤遠), 호는 추담(秋潭)이다. 1559년(명종 14) 삼가(三嘉) 구평(龜坪)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이조판서에 추증된 윤언례(尹彦禮)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密陽朴氏)로 사직 박승효(朴承孝)의 딸이다. 158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성균관학록·전적, 승문원정자, 홍문관박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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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의 무신·학자. 본관은 진주. 자는 우석(禹碩). 호는 사헌(思軒). 아버지는 하한조(河漢祖)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기찬(朴基欑)의 딸이다. 1825년(순조 25) 진주에서 출생하여 이우빈(李佑斌+貝)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853년(철종 4) 무과에 급제한 후 부사과, 훈련원첨정 등을 지내고 1862년 거제도호부사로 나갔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 때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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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진양. 자는 추약(追若), 호는 옥봉(玉峯). 송강(松岡) 하항(河恒)의 후손이다. 부인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녀조(烈女條)」에 보이는 박인호(朴寅浩)의 딸 밀양박씨이다. 평생 독서하기를 즐겼다. 면우 곽종석(郭鍾錫)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회봉(晦峯) 하겸진(河謙鎭)과 우애가 돈독하여 함께 만수당(晩修堂)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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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은 진양인 하계락(河啓洛)이고, 아버지는 사인 박인호(朴仁浩)이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밀양박씨는 천성이 순하고 효성스러워 시부모를 잘 모시고 남편을 공경하는 등 예의규범에 어긋나는 일이 없었다. 특히 계시모를 섬기는 데에 정성을 다하니 향리에서 모두 그 효행에 감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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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진양속지(晋陽續誌)』권3「열행조(烈行條)」에 의하면, 밀양박씨는 효성이 지극하여 7, 8세의 어린 나이에도 홀로된 어머니를 잘 모셨다. 17세 되던 해 결혼을 하였으나 얼마 안 되어 남편이 요절했다. 남편의 장례 후, 한결같은 예로써 3년 상을 행하였다. 시부모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밀양박씨를 가엾게 여겨 다시 시집보낼 생각을 하니, 이를 눈치 챈 밀양박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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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진주. 각재(覺齋) 하항(河沆)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하익운(河益運)이며 어머니는 밀양박씨로 박재형(朴在亨)의 딸이다. 부인은 정선전씨(旌善全氏)로 전한순(全漢淳)의 딸이다. 1852년(철종 3)에 나서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근검한 생활로 학문에 정진하였으며, 교유가 넓었다. 평소 가풍을 엄히 지켜 향리에서 높이 추앙되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