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복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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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연(河演) : 진사로 홍무(洪武) 병자년(태조 15년, 1396)의 식년시에서 병과로 합격했고 영의정(領議政)을 지냈다. 시호는 문효공(文孝公)이며 사월(沙月)에 살았다. ○ 하유(河游) : 판윤(判尹)을 지냈다. ○ 하결(河潔) : 영락(永樂) 신유년(태종 11년, 1411)의 식년시 동진과(同進科)에 합격하여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 강용리(姜用鯉) : 부사(府使)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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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거원(河巨源) : 전객령(典客令)과 병조판서(兵曹判書)를 지냈으며 진강군(晉康君) 하식(河湜)의 아들이다. ○ 정신열(鄭臣烈) : 병부상서(兵部尙書)를 지냈다. ○ 정성지(鄭誠之) : 참찬(參贊)을 지냈고 대여촌(代如村)에 살았다. ○ 정유(鄭愈) : 예의판서(禮儀判書)를 지냈는데 정신열(鄭臣烈)의 후손이다. ○ 유혜생(柳惠生) : 군기정(軍器正)을 지냈다. ○ 최자경(崔自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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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기필(崔琦弼) : 본관이 전주(全州)이다. 무과에 올라 봉사(奉事)가 되었더니 계사년(선조 26년, 1593)에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晋州城)에 들어왔다. 병사(兵使) 최경회(崔慶會)가 임금이 피난한 곳으로 계문을 올리니 본주의 판관(判官)을 삼았다. 성이 함락되어 순절했는데 계해년(영조 19년, 1743)에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되고 창렬사(彰烈祠)에 모셨다. ○ 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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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경휘(河鏡輝) : 자는 공곽(公廓)이요, 호는 매헌(梅軒)이며 환성재(喚醒齋) 하락(河洛)의 아들이다. 만력(萬曆) 기축년(선조 22년, 1589)에 사마시에 올랐다.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워서 어버이를 섬김에 뜻을 어기지 않았다. 임진란 때 환성공(喚醒公)이 상주성(尙州城)으로 달려가는데 겨우 북문에 이르러 적병이 갑자기 닥쳤다. “여기가 나의 죽을 곳이다. 너는 빨리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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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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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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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천로를 시조로 하고 사간 복린을 입향조로 하는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임. 가암 최제묵, 매산 홍직필의 문인으로 예학에 밝았으며 문집을 남겼고, 아들 삼수헌 효숙은 고산 임헌회를 사사하였으며, 아들 긍재 최동민은 연재 송병선의 문인이고, 그의 아들 운암 최인희도 진사로 간재 전우의 문인이다. 고려 때 문하시랑 평장사를 지낸 최천로가 시조이지만 중간이 실전되었고 후손 최복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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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대표하는 명승지. 진주성(晋州城)은 남성동과 본성동에 위치하며, 촉석성(矗石城) 혹은 진양성(晋陽城)으로도 불린다. 조선시대 진주성의 내성과 그 주변 지역 176,804㎡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남강 가 돌벼랑 위에 세워진 우뚝한 누각으로, 남강 가 뾰족뾰족한 돌의 모양을 따서‘촉석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진주성의 남장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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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무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字)는 대재(大哉). 할아버지는 대사간(大司諫) 최복린(崔卜麟)이고, 아버지는 함안군수(咸安郡守)를 지낸 최도원(崔道源)이다. 어머니는 숙부인(淑夫人) 판서운관(判書雲觀) 김선보(金善保)의 딸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부인은 숙인(淑人) 곡산우씨(谷山禹氏) 현감(縣監) 우정(禹定)의 딸이다. 1428년에 태어났다. 1456년 무과에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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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호연(浩然).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령최씨 후손이다. 아버지는 대사간을 지낸 최복린(崔卜麟)이고, 어머니는 숙부인 사천강씨(泗川姜氏)이며, 부인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고려 공민왕 23년인 1374년에 태어나 조선 건국 후 사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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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삭녕(朔寧).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사설서(司設署) 영(令)을 지낸 최수명(崔守明)이고, 어머니는 숙인(淑人) 진강정씨(晉康鄭氏)이며, 부인은 숙인(淑人) 서흥김씨(瑞興金氏)이다. 1349년(고려 충정왕 1)에 태어나 13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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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선비. 본관은 삭녕(朔寧). 자는 사겸(士謙), 호는 죽계(竹溪). 고려 명종 때의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최천로(崔天老)를 시조로 하고, 최유가(崔瑜價)를 중시조로 하는 삭녕최씨 후손이다. 고려 말 조선 초에 대사간을 지내고 처음으로 진주에 자리잡은 최복린(崔卜麟)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부사정(副司正)으로 옥포만호를 지낸 대재(大哉) 최경천(崔景泉)이다. 부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