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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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씨(鄭氏) : 승지(承旨) 조지서(趙之瑞)의 아내니 포은(圃隱) 선생 정몽주(鄭夢周)의 증손이다. 연산군(燕山君) 을축년에 조지서가 해를 만나 죽고 재물과 집이 모두 몰수되고 못을 파게 되었다. 정씨는 그 곁에 여막을 짓고 남편의 입던 옷을 걸어놓고 제사를 올리면서 3년을 마쳤다. 중종(中宗) 2년에 정려(旌閭)되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안씨(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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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여신(成汝信) : 자는 공실(公實)이요, 호는 부사(浮査)며, 우윤(右尹) 성두년(成斗年)의 아들이니 가정(嘉靖) 병오년(명종 1년, 1546)에 나서 만력(萬曆) 기유년(광해군 1년, 1609)에 생원과 진사의 두 시험에 합격했다. 일찍이 남명(南冥)과 구암(龜巖)의 두 문하에서 유학하여 경의(敬義)의 지결(旨訣)을 얻어듣고 종신토록 마음에 깊이 새겼다. 서책은 읽지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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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지특(姜智特) : 참의(參議) 강우(姜佑)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자품이 있으니 고을 사람들이 ‘세상에 쓰일 재목’이라고 하더니 장성함에 이르러서는 문학과 절행으로 고을에 울렸다. 설창(雪牕) 하철(河澈)이 칭찬하여 이르기를 “영매하여 굳세고 뛰어난 것이 사람들의 경탄할 바”라고 했다. ○ 하경소(河鏡昭) : 자는 공극(公極)이요, 호는 동야(東野)니 각재(覺齋) 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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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역(梁嶧) : 호는 운곡(雲谷)이요, 본관이 남원(南原)이니 대사간(大司諫) 양사귀(梁思貴)의 셋째 아들이다. 기유년(세종 11년, 1429)에 사마시에 합격해 연일진병마첨절제사(延日鎭兵馬僉節制使)를 지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공손하고 검소한데다가 뜻이 멀고 행실이 높아서 안과 밖에서 추중(推重)되었다. 단성(丹城)으로부터 진주 운곡(雲谷)에 옮겨와서 살았다. ○ 하공효(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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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원(閔愿) : 자는 흥중(興仲)이요, 호는 석계(石溪)이며 본관이 여흥(驪興)이니 판서(判書) 민심언(閔審言)의 후손이다. 문과에 올라 직장(直長)이 되었다. 성품이 강직하면서 행실은 방정했으며 목표하는 것은 높으면서 뜻은 넓었다. 충주(忠州) 음성(陰城)으로부터 옮겨와 진주의 옥봉(玉峰)에 살았다. ○ 최원민(崔元敏) : 호는 죽계(竹溪)요, 본관이 삭녕(朔寧)이니 사간(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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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현(李胤玄) : 자는 시로(時老)요, 호는 영모당(永慕堂)이니 매월당(梅月堂) 이하생(李賀生)의 증손이다. 18세 때에 부친을 모시고 산간 마을에서 천연두를 피하더니 갑자기 어느 날에 도적이 들어와 부친을 해치려고 했다. 윤현이 몸으로 날개처럼 덮어서 겨우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온몸에 부상을 입고 이어 병을 얻어 의원을 찾아 약을 구하여 8년을 견디다 마침내 천수를 마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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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륜(河崙) : 고려 말에 과거에 합격해 중앙과 지방에 역임하고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재질이 있었다. 태종(太宗)을 도와 정사좌명공신(定社佐命功臣)이 되고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으로 봉했으며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를 문충공(文忠公)이라 했다. 『호정집(浩亭集)』이 있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나와 있다. ○ 하연(河演) : 하윤원(河允源)의 손자이다. 과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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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전해오는 진양정씨 가문의 충신에 관한 설화. 1980년 8월 7일 정상박, 성재옥, 김현수가 당시 경상남도 진양군 일반성면 창촌리 신촌마을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4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손영권(남, 56세)이다. 사봉면(寺奉面)에 진양정씨(晋陽鄭氏) 가문의 사당이 있는데, 사당 주인공 정씨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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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제2아파트 앞에 조성된 시민휴식 체육공원. 원래 이곳에는 가마못이 있었는데,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현재의 비봉산 옛 이름은 대봉산이었다. 예로부터 진주에서 인물이 많이 배출되자 중앙에서 그 연유를 알아본 바 대봉산에 봉암이 있어 그런 것으로 추정되었고, 이에 봉암을 부수고 대봉산의 봉황을 끊기 위해 가마못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 가마못이 있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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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좌동 경상 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개항기 선비 정제용의 초상. 정제용(鄭濟鎔)[1865~1907]의 본관은 영일, 호는 계재(溪齋)이다. 고려의 충신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으로 후산(后山) 허유(許愈)에게 학문을 익혔고, 허유의 사후에는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배웠다. 정제용은 일생을 선비로 살았으며, 옛 선현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성정이 올곧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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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원에 소재하는 도시근린공원. 비봉산공원은 건설부 고시 제93호에 의해 1976년 3월 27일 도시근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진주의 진산(鎭山)인 비봉산과 비봉산 당산나무, 비봉루, 비봉산 산책로, 비봉산 체육공원 등이 있고, 전체 면적은 2,048,000㎡다. 비봉산은 높이 138m이고,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가 발달하였고, 시가지의 남쪽으로 남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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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에 세거하는 성씨의 하나. 시조 정습명(鄭襲明)은 고려 의종 때의 중신으로 추밀원 지주사(樞密院知奏事)를 지냈으며, 선대에 정의경(鄭宜卿)이 연일 호장을 지냈고, 연일현백(延日縣伯)에 봉해졌으므로 본관을 연일로 하였다. 원래 연일정씨의 비조는 신라 6부시대의 지백호(智伯虎)로서 32년(유리왕 9)에 낙랑후(樂浪侯)에 봉해졌으며, 정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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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에서 전승되는 우곡 정온의 충절을 담은 인물담. 1980년 8월 12일 정상박, 성재옥이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서문경로당에서 채록하였으며, 1981년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구비문학대계』8-3에 수록되었다. 제보자는 정문석(남, 당시 63세)이다. 이 내용은 『진양군사』, 『진주시사』 등에도 소개되어 있다. 우곡(隅谷) 정온(鄭溫)은 고려 조정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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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연일. 자는 자첨(子瞻), 호는 율리(栗里).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예다. 겸재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동중자제(洞中子弟)이기 때문에 젊어서부터 그 문하에서 배웠다. 하홍도가 임금에게 사은소(謝恩疏)를 올릴 때에 소를 받들고 입성(入城)하여 드디어 침낭(寢郞)에 제수되는 특전을 입었다. 그는 생각하기를 “소를 가지고서 피선(被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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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자는 원경(源卿), 호는 일재(一齋).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천성적으로 신중하고 과묵하며, 학식이 풍부하고 어버이를 섬김에 있어 성실하게 지체(肢體)의 봉양을 다하였다. 부친이 마비를 앓아 7년이나 병상에 누워있을 때에도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고 부친의 몸을 닦아주고, 변기를 몸소 세척하여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아니하였다. 상(喪)을 당하여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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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오천(烏川). 자는 하서(夏瑞), 호는 동호(桐湖)·초객(樵客).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진주 동곡(桐谷)에 살면서 문망이 있었고, 모든 일에 있어 유학을 지키는 일에 관계된 것에는 힘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하홍도(河弘度)[1593~1666]의 문집인 『겸재집(謙齋集)』의 간행에 힘을 쓴 바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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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선비. 자는 자의(子義), 호는 추담(秋潭). 포은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일찍부터 행실이 바르고 학식이 넉넉하였으며 겸재(謙齋) 하홍도(河弘度), 태계(台溪) 하진(河溍)과 더불어 도의의 사귐을 가졌다. 그의 아들 정례도 또한 하홍도를 스승으로 섬겨 재예가 뛰어났으며 진사에 합격하였다. 『진양속지(晋陽續誌)』권2「유행조(儒行條)」에 이름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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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선비.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응현(應賢), 호는 옥초(玉樵). 포은(圃隱) 정몽주의 후손이다. 임술민란(壬戌民亂: 진주민란)을 겪은 뒤로부터 진주 병영(兵營)의 창고가 비게 되자 정철기가 쌀 천 석을 바쳤다. 진주 병영에서는「연일정씨의창(延日鄭氏義倉)」이라는 6글자를 고문(庫門) 밖에 써서 달았고 또 조정에 전보하니 선공감가감역(鐥工監假監役)을 제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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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선비. 본관은 연일. 자는 성원(聲遠)이고, 호는 삼비재(三非齋).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후손이다.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였고, 집안을 다스림에 있어서도 법도가 있게 하였다.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행적을 드러내지 않고, 남들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았다. 조선 중기 진주 지역의 유학자였던 월촌(月村) 하홍달(河弘達)이 재명(齋銘)을 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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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의 비봉산에 있는 누각. 비봉산 아래에 위치하여 비봉루라는 명칭이 붙여졌을 것이라는 추측 뿐 별 다른 명칭유래는 없다. 비봉루는 고려 말의 충신인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1337~1392]의 장구지소(杖求之所: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여서 정몽주의 후손인 정상진이 1939년에 누각을 지은 것이다. 비봉루는 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887-1[창렬로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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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역의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동되었던 건축물인 누각과 정자. 일반적으로‘누정’은 사방을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다락 구조로 높게 지어진 누각(樓閣)과 경관이 수려하고 사방이 터진 곳에 지어진 정자(亭子)를 함께 일컫는 말로 자연 속에서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며 정신 수양의 장소로 활용되었던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대(臺), 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