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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시. 진주시는 동쪽으로 창원시와 함안군, 서쪽으로 하동군, 남쪽으로 사천시와 고성군, 북쪽으로 산청군·의령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부 경상남도의 거점 도시로, 2005년 10월 경상남도의 혁신 도시로 선정되었다. 경위도상으로 동경 127°53′ 52″~128°22′ 21″인 수곡면 원계리 동월마을에서 이반성면 발산리 내동마을까지이며, 북위 3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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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서남부에 1994년까지 존속했던 행정 구역. 1895년 지방 제도 개정에 의해 진주부 진주군이 되었다가, 1896년에 13도제(道制) 실시로 경상남도 진주군이 되면서 경상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입지하게 되었다. 1914년 군·면 통폐합에 의해 진주군의 44개 면이 17개 면으로 통합되고, 함안군의 3개 면이 2개 면으로 폐합되어 진주에 편입되었다. 1925년 경상남도 도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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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시의 옛 지명 진주는 가야 지역으로 거열성(居列城) 지역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는 삼국통일 과정에서 문무왕 3년(663) 2월에 거열성을 공취하여 거열주(居列州)라고 하였다. 신문왕 5년(685) 봄에 처음으로 9주를 정비하면서 거열주를 높여 청주(菁州)라 하고 대아찬 복세(福世)로 하여금 청주총관을 삼았다. 「삼국사기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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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읍(邑).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법륜리(法輪里), 굴곡리(屈谷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법륜리와 굴곡리는 조동리(槽洞里)에 합하여 조동리라 하였다. 1832년(순조 32) 이래로는 소촌리(召村里), 갈곡리(葛谷里), 조동리(일부)라 하였고, 1864년(고종 1) 이후 조선 말기까지는 소촌면(갑오개혁 이후 文山面으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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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갈곡은 지형이 칡 형태로 생겼으며, 산에 칡이 유난히 많은 것에서 유래하였다. 진주군 갈곡면 외동, 상촌동의 두 마을을 1914년 갈촌리로 통합하였으며, 1995년 11월 갈촌리에서 갈곡리(葛谷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해발고도 100m 내외의 산지 사이로 계곡이 발달되어 있으며, 남강의 지류인 영천강으로 흐르는 소하천변을 따라 도로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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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두산리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마을이란 뜻의 두메실이라고 부르던 데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동물곡동(冬勿谷洞), 처음동(處音洞)과 이곡면(耳谷面) 어수동(魚數洞), 송곡면(松谷面) 정자동(亭子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동물리(冬勿里)라 하고 정촌면(井村面)에 속했다가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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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행정 구역 통합에 의해 합쳐진 삼동과 제곡동에서 지명을 따서 삼곡리라고 하였다. 삼동은 문산에서 3번째로 주민이 정착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진주군 문산면 삼동(三洞)의 일부와 이곡면(耳谷面) 제곡동(提谷洞)을 합쳐 삼곡리(三谷里)라 하였다. 남강의 지류인 영천강 유역과 이에 합류되는 소하천에 의해 형성된 넓은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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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상문리(象文里)라는 지명은 상이동(象耳洞)에서 유래하였으며, 상이동은 마을의 형태가 코끼리 귀의 형태로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지명이다. 1914년, 진주군 문산면 상이동(象耳洞)과 일동(一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상문리(象文里)라 하였다. 상문리는 북쪽에 해발 고도 482m의 장군대산이 있어 북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형태를 보이고 있으며,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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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문산면 일동(一洞), 이동(二洞)과 조동면(槽洞面) 갈전동(葛田洞), 속사동(束沙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소문리(蘇文里)가 되었다. 서쪽 경계를 따라 남강이 흐르고 있으며, 지류인 영천강이 남강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하천 유역을 따라 평야 지역이 넓게 나타난다. 문산읍의 서쪽 지역으로 서쪽으로는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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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안전(安全)은 편안하게 사는 마을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을 통해 진주군 갈곡면(葛谷面) 외동(外洞), 동곡동(東谷洞), 송곡면(松谷面) 송곡동(松谷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안전리(安全里)라 하였다. 해발 고도 100~2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강의 지류인 영천강으로 합류하는 소하천이 안전리의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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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문산읍에 속하는 법정리. 지형이 사람의 귀처럼 생겼다 하여 귀실(구실)이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한자어인 이곡리로 명칭을 정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문산면 삼동, 송곡면 정자동, 이곡면 어수동의 각 일부를 합하여 이곡리라 하였다. 이곡마을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앙에 뫼 등이 이어져 있어 마치 귀안과 같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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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송곡리(松谷里), 인담리(麟淡里), 금동어리(金冬於里), 성을산리(省乙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금동어리는 송곡리에 합했다가 1623년(인조 1)에 다시 나누었다. 1832년(순조 32)에는 인담리를 성을산리에 합하여 송곡리, 금동어리, 성산리(省山里)라 하다가 1864년(고종 1)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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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봉리는 가토(佳吐), 덕촌(德村), 가수(佳水), 우봉(牛峰) 등 4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으며, 가토, 가수의 아름다울 가(佳)와 우봉의 봉우리 봉(峰)자에서 명칭이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시대인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시 법정리인 가봉리에 있는 가봉(佳峯), 우봉(牛峯) 두 개를 행정리로 명명했다. 같은 해인 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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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어귀에 검바위 또는 검암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지명이다. 본래 진주군 송곡면과 금동어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송곡동(松谷洞), 홍정동(鴻亭洞), 검암동(儉岩洞), 가토동(佳吐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검암리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엄정(嚴亭), 운문(雲門), 차현(車峴), 신담(新潭)의 4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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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의 법정리. 일명 ‘동네’라고도 한다. 마을이 동쪽을 향해 있다 하여 동네 또는 동례라 하였다는 말과 예부터 예의가 바른 동네라 하여 지나는 사람마다 동방예의지국의 본이라고 하여, 동자와 예자를 따서 동례로 하였다는 말이 있다. 1914년 진주군 성을산면 동례동, 신대동(申大洞), 두문동(斗文洞), 금동어면 검암동의 각 일부를 합쳐 동례리라 하였다. 마을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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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두문의 이름은 드물, 드무리, 입물, 더문, 도무리, 두무리라는 말로 전해 온다. 도산천과 군산천이 합하여지므로 도산천의 도와 군산천의 무리(群)가 합하여진 도무리가 두문리의 유래라 할 수 있다. 또는, 시간이 흘러 물이 잘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취락이 점차 낮은 곳으로 옮겨왔다는 점에서 드물다는 뜻의 드무리에서 유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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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성산(省山)은 안산에 성봉(省峯), 동쪽에 을산(乙山)이 있어서 이 두 산의 이름을 따서 성을산이라고 불렀다 한다. 한때는 성을산면이었으나 행정 구역 개편으로 성을산면이 없어지면서 가운데 을자를 빼고 성산으로 바뀌어 성산리로 불리게 되었다. 또는 사방의 산이 높고 솔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1914년, 진주군 성을산면(省乙山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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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소나무가 많아서 소실 또는 송곡이라 칭하면서 유래되었다. 약 사백 년 전에 문화류씨가 정착해 살면서 소실이라 불리기도 했다. 1914년 진주군 송곡면(松谷面) 송곡동(松谷洞) 일부를 통합하여 송곡리(松谷里)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시 금곡면에 속하게 되었다. 갓눈덕골, 개멀리골, 구세밭골, 버들골 등의 골짜기와 옥산봉(沃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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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있는 법정리. 약 350년 전 길을 가던 한 선비가 목이 말라 마을 입구의 샘에서 목을 적시고 쳐다보면서 윗골에 언젠가 큰 못이 생겨 살기 좋은 마을이 될거라고 예언하여 큰 못, 어진 못이란 뜻에서 인담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 후 일제시대에 작은 저수지를 만들었으나 수량이 적어, 1985년에 큰 저수지를 만들어 물 걱정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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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송곡면(松谷面)의 정자동과 홍정동(鴻亭洞)을 중심으로 1914년 행정 구역이 통폐합될 때 정자동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송곡면 정자동·홍정동, 이곡면(耳谷面) 이곡동(耳谷洞), 성을산면(省乙山面) 하인담동(下仁潭洞), 금동어면(金冬於面) 검암동(儉岩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형성되었다. 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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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성을산면(省乙山面)의 죽곡동과 장지동(長芝洞), 성산동(省山洞) 일부를 통합하고, 죽곡동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여 죽곡리라 하였다. 죽곡은 대나무가 많아 붙인 명칭으로 대실이라고도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죽곡에는 옛날에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그 대밭에는 봉(鳳)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한다. 그리하여 ‘봉이 앉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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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속사리에 있는 금선봉(琴仙峰)에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금산리(琴山里), 대여촌리(代如村里), 월아미리(月牙彌里), 조동리(槽洞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여촌리과 월아미리는 금산리에 합하여 금산리(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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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이곳은 갓방 또는 관방·갑방·가방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여촌면과 기동(基洞)·가방동(加芳洞)·사곡동(沙谷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가방리라 하였다. 가방리는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마을로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대여촌면의 속리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진주군 대여촌면과 기동(基洞)·가방동(加芳洞)·사곡동(沙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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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칡이 많아 치랏 혹은 갈전이라 이름한 데서 유래된다. 진주군 조동면의 지역으로서 고려 후기 우왕 12년(1386)경부터 있던 마을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조동면(槽洞面) 호암동(虎岩洞), 갈전동(葛田洞), 속사동(束沙洞)의 각 일부를 갈전리(葛田里)라 하였다. 갈전리의 동쪽은 월아산 두 봉우리 중의 하나인 장군대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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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강(南江)과 영천강(潁川江)이 합류되는 지점의 안쪽이므로 안새울, 속새울 또는 속사라 한데서 유래되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금산면(金山面) 백동(栢洞), 조동면(槽洞面) 속사동(束沙洞) 각 일부를 통합하여 속사리(束沙里)라 하였다. 하나의 법정리가 하나의 행정리를 이룬다. 구름등, 마삼산, 금선봉 등의 산지와 갓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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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나무와 잣나무가 무성하여 잣골이라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송백리( 松柏里)라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때 밀양박씨, 김해김씨의 선조가 피란하여 처음 이주하였고 그 후 고성이씨가 속사리에서 이주하여 현재 약 100가구가 살고 있다. 1914년, 진주군 금산면(今山面) 백동(栢洞)의 일부를 송백리( 松柏里)라 명명하였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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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주군 대여촌면의 지역이다. 대여촌면 용심동의 용(龍) 자와 금산면 월아동의 아(牙) 자를 따서 용아(龍牙)라고 한데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대여촌면(代如村面) 용심동(龍심洞)과 금산면(今山面) 월아동(月牙洞), 중촌동(中村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용아리(龍牙里)라 하였다. 하동정씨(河東鄭氏), 창녕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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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대여촌면 가방동(加芳洞)과 사동(沙洞), 금산면 중촌동(中村洞) 각 일부를 병합하여 사동의 이름을 따서 장사리라 하였다. 사동은 무제봉 통사바위에서 내려다보면 그 형국이 흡사 가래삽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삽골’ 또는 ‘삿골’로 불리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전하여 오는 이야기로는 이 곳 상의마을에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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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금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마을 앞 건너편에 큰 내가 있어 중천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중천리라 하였다. 본래 진주군 금산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중천동과 개천동(介川洞), 말암동(末岩洞)의 각 일부가 통합하여 형성되었다. 구암(龜岩)은 면의 서쪽 끝 바위산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말암(末岩)이라 하였고, 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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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후기의 축곡리와 내동리에 해당하는 지역인데, 내동리에서 그 지명이 유래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축곡리(杻谷里), 말동리(末洞里), 내평리(內坪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말동리와 내평리를 축곡리에 합하였다가 1832년(순조 32)에 축곡리와 내동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유곡면과 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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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진주군 축곡면 내평동, 연행동, 수거동과 곤양군 곤명면 조평동 일부를 통합하여 내평리라고 하였다. 내평리는 진양호의 수변지역으로 북쪽으로 진양호와 접하고 있고, 동쪽으로 남강댐과 가화천에 접하고 있다. 북쪽은 100m 내외의 산지이나 경사가 다소 급한 편이다. 동쪽은 삼계리, 서쪽은 사천시 곤명면, 남쪽은 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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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의 진주군 내동면 독산동 지역으로 이에서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시 진주군 내동면 독산동과 영강동을 합하여 독산리(篤山里)라 하였다. 독산리는 북쪽에 남강과 접하고 있고, 남쪽에 있는 실봉산(185m)에서 시작되는 구릉성 산지가 이어지고, 서쪽으로도 고노골 등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남북 방향으로 이어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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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계마을에서 유래하였는데 약 200여 년 전에 태안박씨가 정착하면서 서쪽으로 덕천강, 북쪽으로 경호강, 남쪽으로 유수천이 흘러 세 강이 합친 곳이라 하여 삼계(三溪)라고 불렀다 한다. 또는 삼가래라고도 한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축곡면 산기동 일부와 마동을 합하여 삼계리(三溪里)라 하였다. 삼계리는 서쪽으로 진양호에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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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촌동(新村洞)과 율동(栗洞)을 합치면서 두 마을의 이름에서 각각 집자하여 신율리라고 하였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내동면 신촌동과 율동을 합하여 신율리(新栗里)라 하였다. 신율리는 서쪽과 북쪽에 실봉산, 한병산 등 해발 고도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가 이어지고 이들 산지 사이로 미르실골, 먹골, 대사골, 나랭골 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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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내동면의 법정리 유동의 ‘유(柳)’자와 수거촌의 ‘수(樹)’자를 따서 유수리(柳樹里)라 하였다. 한자 표기가 ‘柳樹里’ 와 ‘柳水里’로 혼용되고 있으나, 문헌 조사에 따르면 유수리(柳樹里)가 맞는 표현이다.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축곡면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축곡면 유동(杻谷面 柳洞)·수거촌(樹巨村)과 곤양군 가리면 가화동(加利面 加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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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면 내에 위치하고 있는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이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대곡리(大谷里), 오곡리(吳谷里), 그리고 북면(北面) 사죽리(沙竹里), 설매곡리(雪梅谷里), 월배곡리(月背谷里), 잉옥리(芿玉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大谷里), 설매곡리(雪梅谷里)라 하였다가 18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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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에 있는 큰 숲이 아름답다고 하여 가정(佳亭)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온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오곡리 가정자(柯亭子)였다. 임진왜란 후 대곡리에 합해진 후 대곡면 가정촌(佳亭村)이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정촌과 중촌(中村), 용동(龍洞) 각 일부를 통합하여 가정리라 하였다. 가정촌에는 서재골, 지식골, 매봉,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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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주군 설매곡면의 지역으로서 넓은 바위가 있어 넓은바위, 너른바위(廣石)라 부르다가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광석리라 명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웅곡(熊谷), 가야동(可也洞)을 병합하여 광석리(廣石里)라 하였고 대곡면에 편입되어 면 중심지가 되었다. 광석리를 둘러싸고 서쪽으로 맷골, 산지골, 시지곡, 골물곡 등의 골짜기와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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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과거에 합격한 이 마을 선조가 깃발을 앞세우고 마걸둥천 연못가에 내리니, 저녁 노을 햇빛의 그림자가 연못물 위에 붉게 비치고 말은 물을 먹었다 한다. 이로 인하여 붉은 단(丹) 자와 먹일 목(牧) 자를 따서 단목(丹牧)이라 칭했다고 전해진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단지동(丹池洞)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단목리라 하여 대곡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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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골짜기의 골이 깊고 크다고 하여 한실 또는 대곡(大谷)이라 한 데서 유래된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 대동(大同)이었다. 임진왜란 후 오곡리를 합하여 대곡리라고 부르다가 조선 말기에 대곡면이라 하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시 대곡면의 대동(大同) 일부를 대곡리(大谷里)라 하여 대곡면 10개 리 중의 하나가 되었다. 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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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 덕곡동(德谷洞)이다. 임진왜란 후에는 대곡리에 합병되어 조선 후기까지 대곡면 하촌동과 덕곡동의 일부였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하촌동, 덕곡, 대여촌면 송곡동 일부를 합하여 덕곡리라 하고 대곡면의 10개 리 중 하나로 편제하였다. 남쪽으로 남강을 접하고 있다. 북쪽은 가정리, 동쪽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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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농사가 잘되고 마을 앞에 강이 흐르고 나루가 있다 하여 마진(麻津)이라 이름하였다. 또한, 마(麻)가 재배되어 삼베옷 등이 지어지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명칭이 유래되었다는 의견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동면 대곡리의 일부로 대동(大同), 소동(小洞), 마진(麻津)이 있었다.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 마진동(麻津洞)이라 하였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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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임진왜란 때 강씨가 이주해 살았는데 강심(姜深)이라는 사람이 눈이 내릴 때 매화꽃이 피는 것을 보고 설매(雪梅)라는 이름을 지은 데서 유래되었다. 용짓골, 덕구, 행정(杏亭), 삿골[沙谷], 임계정(臨溪亭)을 통틀어 설매라고 하였다. 조선 전기 진주목 속방의 북면 설매곡리(雪梅谷里)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조선 말기까지는 설매곡면(雪梅谷面)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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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산세(山勢)를 보면 유동에서 봉평으로 내려오는 지형(地形)이 용(龍)이 누워있는 형태와 비슷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조선 전기 진주목 동면 오곡리(吳谷里)에 속하였다. 임진왜란 후에 대곡리(大谷里)에 병합되어 조선 말기까지는 대곡면에 속하였고,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으로 유곡동(柳谷洞), 용동(龍洞), 가정동(佳亭洞)과 대여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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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의 법정리. 옛날 용이 살고 있었다 하여 용당, 용댕이라고 한다.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북면 설매곡리(雪梅谷里) 감암동(甘巖洞)의 감바우로 불리다가 1864년(고종 1)에 리가 면으로 개편되면서 설매곡면이 되었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상감(上甘), 중감(中甘) 일부를 병합하여 용암리라고 하고 미천면에 속하였다가, 1983년 2월 11일 행정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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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에는 진주목 북면 사죽리 월가동(月家洞)이었고, 조선 후기까지 진주군 사죽면 월아동(月牙洞)이었다가 1914년 지방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던날, 달갈, 외또리, 바람이, 감나무골, 뻣정지(보정지)를 병합하여 월아리(月牙里)라 하였고 대곡면에 편입되었다. 서남쪽은 주로 평지로서 논밭(애또지, 민두지, 창멀리, 등멀리 등)이 주를 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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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 때 진주목 소속의 북면 월배곡리(月拜谷里)였다가 임진왜란 후에는 설매곡리(雪梅谷里)에 병합되고, 1864년(고종 1년) 리(里)가 면으로 개편되면서 다시 설매곡면 월배리로 되었다. 1914년에는 지방 행정 구역의 개편으로 월암리라 하여 미천면에 편입되었다가 1983년 2월 11일 대곡면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덕촌(德村)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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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진주군 사죽면의 느티골[楡谷]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한자어로 유곡리라 하여 대곡면에 편입시켰다. 1914년 지방 행정 구역 개편으로 대포동과 지석동, 대여촌면의 송곡 일부, 미천면의 정성동·호동 일부를 병합하여 대곡면 유곡리라 하였다. 느티골을 비롯하여 모시골[楮谷], 원촌(院村), 살구정[杏村洞], 샘땀, 안마을, 서재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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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부에 위치한 면(面). 대평면은 예로부터 한들 또는 큰들이라고 불리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의 서신대리(西申大里), 침곡리(針谷里), 가을동리(加乙洞里), 대평리(大坪里)이던 것이 임진왜란 후에는 대평리로 통합되고 조선 후기에는 침곡면(針谷面)과 대평면(大坪面), 또 조선 말기에는 침곡면(針谷面), 신풍면(新豊面), 마동면(馬洞面),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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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내촌동(內村洞)을 내촌리(內村里)라 하였다. 내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북쪽은 남강이 진양호로 이어지고, 남쪽은 덕천강이 진양호로 유입되어 남북방향이 진양호와 접하고 있고, 북쪽은 200m 이상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내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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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마동면(馬洞面) 당촌동(堂村洞) 지역이었으며, 이에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마동면 당촌동, 신풍면(新豊面) 중동(中洞), 곤양군 곤명면(昆明面) 본촌동(本村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당촌리라 하였다. 당촌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남쪽은 덕천강, 북쪽은 남강과 진양호에 접하고 있다. 서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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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있는 법정리. 대평리는 예부터 깊은 골짜기 안에 맑은 물과 넓은 들이 있어 곡식과 채소들이 풍부하였으므로 ‘한들’, 혹은 ‘큰들’이라 불리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 서면(西面)의 서신대리(西申大里), 침곡리(針谷里), 가을동리(加乙洞里), 대평리(大坪里)였던 것이 임진왜란 후에 대평리로 통합되었다. 조선 후기에 들면서 대평면(大坪面)으로 바뀌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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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한 법정리. 윗마을이라는 뜻에서 상촌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침곡(針谷)에 속하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침곡면 상촌동과 중촌동을 합쳐 상촌리로 하였다. 1969년 남강댐이 완공되면서 상촌마을과 중촌마을에 거주하던 가구는 대평마을 513번지로 집단 이주하거나 주공아파트 등으로 이주하였고, 현재는 적은 수의 가구만이 남아 있다. 남강변에 위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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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의 법정리. 1914년 진주군 신풍면(新豊面) 상동(上洞)·하동(下洞)과 중동(中洞) 일부를 통합하여 신풍리(新豊里)라 하였다. 남강댐으로 수몰되기 전에는 신풍, 중촌, 풍호 등 3개 부락이었다. 신풍 141호, 중촌 56호, 풍호 66호, 계 263호였다. 대평면 내에서 제일 부유한 마을로서 고등 교육도 많이 받아 정계 또는 군인, 공무원·변호사 등 고위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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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대평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진주군 마동면 당촌동, 신풍면 중동, 수곡동, 중금동의 각 일부와 침곡면 하촌동을 통합하여 하촌리(下村里)라 하고 대평면에 편입하였다. 진양호의 상류 지역으로 1969년 남강댐의 완공과 함께 많은 토지가 수몰되었다. 서쪽은 국사봉을 중심으로 해발 고도 200m 내외의 산지가 나타나고, 동쪽은 진양호이며 지형이 낮아 수몰지에 편입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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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위치한 면(面). 명석면 신기리에 있는 자운석 또는 운돌의 전설에서 유래한다. 신기리에 자웅(雌雄)을 상징하는 한 쌍의 암석이 있는데 이 돌을 운돌 혹은 울돌이라고 한다. 본 자웅석은 고려 23대 고종18년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집현산의 암석이 석성 축조공사로 힘든 백성들의 고충을 덜어주고자 가던 중 승려로부터 축성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전신에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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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오산면의 가동과 화지동이 지금의 가화리와 서현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시 두 마을을 병합하였으며, 이 두 마을의 머릿자(字)를 따서 가화라고 하였다. 가화리는 보통 갈골[葛谷]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양편산에 칡이 많고, 옛 가을골을 이와 같이 불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914년에 진주군 오산면의 가동, 화지동,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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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에 진주군 명석면 갈전동, 봉청동, 계원동을 합쳐 계원리(桂垣里)라 하였다. 계원리의 양옆으로는 급경사의 산지가 분포하고 있으며, 가운데는 비교적 완만한 평지가 자리하고 있다. 산지에는 용자골, 대롱골, 큰골, 노문골, 중골, 배랑골 등 골짜기가 발달해 있다. 계원리는 동쪽으로 집현면 정평리, 서쪽으로 외율리, 남쪽으로 덕곡리,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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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관지리는 예로부터 태동(台洞) 또는 관점(觀店)이라 하였는데, 이는 앞산과 뒷산 송림에 황새가 많이 모여 앉아 마을의 정취를 더해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진주군 성태동면의 관지동 및 신촌동 일부를 일컬어 관지리(觀旨里)라 하였다. 관지리의 중앙을 나불천이 남북으로 관통하여 흐르고 있으며, 이를 사이에 두고 급격한 경사의 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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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광제산 남쪽 아래에 덕곡마을이 위치하고 있는데, 광제산을 연유하여 광제이덕(廣濟以德), 즉 ‘덕으로 널리 구제한다.’는 뜻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추정된다. 1914년 진주군 성태동면(省台洞面) 덕곡동(德谷洞), 엄목동(嚴木洞), 관지동(觀旨洞)의 일부를 통합하여 덕곡리(德谷里)라 하였다. 덕곡리의 북쪽은 광제산에서 이어지는 해발 고도 40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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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신기리(新基里)는 임진왜란 때에 정선전씨(旌善全氏)가 처음 들어와서 살았는데, 대단한 부자였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서 진양강씨(晋陽姜氏)와 능성구씨(綾城具氏) 등이 들어와 살면서 새마을 또는 새터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이에 신기(新基)라고 하였다. 1914년 진주군 명석면 동전동(東田洞), 청계동(淸溪洞), 신기동(新基洞)을 합쳐 신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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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오미(五美)라는 지명은 마을 서쪽에 가재가 춤을 추는 오무형(聱舞形)의 명산이 있어 여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914년 진주군 오산면 삼항동 오미동, 묵곡동, 명석면 외팔미동, 대평면 대평동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오미리(五美里)라 하였다. 오미리는 진양호의 상류지역으로 북쪽의 검무봉[289.4m]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이 산지로 이어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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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왕지(旺旨)라는 이름은 마을 뒷산 중턱에 왕정승(旺政承)의 고총이 있어 여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한다. 1914년 진주군 명석면 추동(樞洞), 왕지동(旺旨洞)을 합쳐 왕지리(旺旨里)이라 하였다. 밭골재, 한티재, 솥골재 등의 고개와 용장골 등의 골짜기가 발달한 산지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은 집현면 지내리, 서쪽은 용산리, 남쪽은 관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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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전부터 내율마을이 밤실, 율곡으로 불렸으며, 이 일대에 밤나무와 대추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이렇게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하며, 이후 내율동과 외율동으로 나뉘면서 법정리 명칭을 외율로 개칭하였다. 1914년 진주군 명석면 내율동(內栗洞), 외율동(外栗洞), 내팔미동(內八美洞), 외팔미동(外八美洞), 오산면(吾山面) 오미동(五美洞) 일부, 단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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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산(龍山)은 문자 그대로 용이 지나간 산이라 하여 부르게 된 지명이다. 오랜 옛날 지금의 못안에 큰 못이 있었는데, 어느 해 큰 가뭄이 들어 목이 마르니 그 곳에 살던 용이 꿈틀거리며 뒷산으로 기어 올라가 등천(登天)하였다고 한다. 지금도 용이 지나간 자리에는 산이 뭉개진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으며, 못안이란 마을의 이름도 여기에서 생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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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명석면에 속하는 법정리. 우수(雨水)라는 지명은 마을 뒷산 형국이 소머리 모양인 우수형(牛首形)이라 하여, 이와 음(音)이 같은 우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원래 조선 후기까지 성태동면(省台洞面)의 속방(屬坊)으로 우수동(雨水洞)이라 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나불리를 우수리에 병합하여 평거면(平居面)에 편입되었다가 1938년에 평거면이 해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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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부에 위치한 면(面). 전설에 의하면 세 고을(동향, 오방, 상미)로 흐르는 세천(細川)이 배암처럼 너울거려 흐르고 있어 지나가던 어느 스님이 사천(蛇川)이라 이름지어 부르다가 지역에서 연도는 알 수 없으나(융희 2년경으로 추정) 뜻있는 선비들이 사(蛇)는 혐오감을 준다 하여 아름다울 미(美)자를 붙여 미천이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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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미곡동에서 유래하였으며, 예전에는 부수골[芙水]이라 하였다. 1914년 진주군 안간면 미곡동을 미곡리(美谷里)라 하였다. 동북쪽의 상미리에 있는 상미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소규모 하천이 북동쪽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폭 200m 정도의 계곡선을 이루면서 미곡리를 관통하여 흐르며, 신촌소류지와 미곡소류지에서 시작되는 개천이 중간에 합류하며 주위를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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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는 진주군 미천면 반지동 지역으로 이에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미천면 반지동, 세곡동, 삭성동 일부로서 반지리(班池里)라 하였다. 북쪽의 향양리에 있는 동향저수지에서 시작되는 향양천이 반지리의 중앙부에서 남쪽으로 흐르고 벌당리 인근에서 다른 소하천과 합류하여 집현면을 지나 남강으로 흐른다. 향양천의 동서 양안으로 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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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벌판에 신당이 있어서 벌당이라 부르던 것에서 현재의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미천면 침수동, 호동, 벌당동, 정성동, 삭성동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벌당리(伐塘里)라 하였다. 벌당리의 북쪽에 있는 오방리의 오방저수지와 어옥리의 어옥저수지에서 시작되는 하천이 북쪽의 침수마을 인근에서 합류하여 남쪽으로 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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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미리는 조선 초기부터 전해오는 지명으로 윗담 우목골, 아랫담으로 불렸으며, 진주군 설매곡면 상미동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설매곡면 상미동과 하미동을 합하여 상미리(上美里)라 하였다. 상미리는 동북쪽에 망룡산(441m), 동쪽에 천황산(364m)이 위치하고 있다. 북쪽은 망룡산에서 이어지는 산지가, 남쪽은 천황산에서부터 연결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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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에 안간역이 있었다고 하여 안간 또는 역말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안간면 안간동, 미곡동, 효자동의 각 일부로서 안간리(安磵里)라 하였다. 안간리는 서쪽의 산청군 신안면 집현산(572m)에서 이어지는 산지가 동쪽으로 이어지는 서고동저의 지세이며, 남쪽과 북쪽은 산지로 그 가운데에 계곡선을 따라 안간소류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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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어옥(於玉)은 늘옥실이라고 하였는데, 구슬을 늘어놓은 것처럼 산세가 묘하고 아름답다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설매곡면 덕진동과 오방동 각 일부와 어옥동을 합하여 어옥리라 하였다. 어옥리는 해발 고도 200m 내외의 산지가 둘러싸고 있다. 북쪽의 어옥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작은 어옥천이 남쪽으로 이어지며 동쪽에 있는 덕진소류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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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설매곡면 오방동 지역으로 예전에는 오동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그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1914년 진주군 설매곡면 신촌동, 오방동, 덕진동의 각 일부 지역들을 통합하여 오방리(梧坊里)라 하였다. 오방리는 해발 고도 200m 정도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지의 계곡선과 북쪽의 오방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오방천이 북에서 남쪽으로 흐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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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동향(東向)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동향은 남명 조식의 ‘송인숙(送寅叔)’이란 시에 ‘사명동향군서향(寺名東向君西向)’ 이라는 구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향양리의 여러 자연마을 중 가장 오래된 마을로 짐작된다. 1914년 진주군 미천면 진교동, 장죽동, 개심동, 동향동을 통합하여 향양리(向陽里)라 하였다. 향양리는 동서 및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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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미천면에 속하는 법정리. 효자리(孝子里)는 그 중심에 있는 효잠마을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안간면 효자동의 일부를 효자리라 하였다. 효자리는 남쪽, 북쪽 및 서쪽이 해발 고도 300~400m 내외의 다소 높고 험준한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그 중앙에 계곡선이 나타나며 폭이 좁은 소규모의 하천 유역과 농경지가 서쪽에서 동쪽 방향으로 이어진다. 동쪽으로 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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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부다리(副多里), 상사리(上寺里)라 하였다. 1832년(순조 32) 이래로는 상사리라 하다가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상사면이라 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상봉면(上奉面), 하봉면(下奉面), 상사면(上寺面)이라 하다가 1906년(광무 10)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하여 함안군(咸安郡)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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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상사면 마사리와 시성리를 합하여 마성리라고 하였고 각각의 지명에서 집자하였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상사면 마사리와 시성리를 통합하여 마성리(馬城里)라고 하였다. 마성리는 그 형세가 마름모 형태와 비슷하다. 남서쪽은 반성천과 접하고 있고 반성천 유역에 충적 평야로 이루어진 넓은 경지가 펼쳐져 있다. 북쪽은 해발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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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에 무사가 많이 나왔다 하여 다무리라 부르다가 현재의 무촌리가 되었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진주군 상사면 다무리, 중촌리, 사령리, 일반성면 창촌동, 내진성면 원당동, 온수동, 천곡동의 일부를 통폐합하여 무촌리(武村里)라 하고 사봉면에 편입하였다. 무촌리는 북쪽에 반성천이 동쪽 방향으로 크게 돌아서 흐르고 그 아래쪽으로 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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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상사면 방촌리에서 그 지명이 유래하였다. 1914년의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상사면 방촌리와 중촌리를 합하여 방촌리(芳村里)라 하고 사봉면에 편입되었다. 방촌리는 남쪽에 반성천이 동쪽 방향으로 크게 돌아서 흐르고, 그 아래쪽으로 충적 평야의 넓은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하천 곡류의 영향으로 우각호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서쪽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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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상봉면 부다리와 화계리에서 각각 집자하여 부계리라고 하였다.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 진주군 상봉면 화계리, 부다리, 모곡리 일부를 통합하여 부계리(富溪里)라 하였다. 부계리는 북쪽의 괘방산(450.5m) 자락이 동쪽과 남서쪽 방향으로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이어지고, 그 사이에 계곡선이 발달하여 있다. 이 계곡선 상단에 화광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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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의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상사면 우곡리(上寺面 隅谷里), 사령리(沙令里), 방촌리(芳村里), 일반성면 창촌동의 각 일부를 합쳐 사곡리라 하고 사봉면에 편입시켰다. 남강 하류 지역으로 강우시 농경지 침수가 잦은 편이다. 진주 시내에서 보면 동남 방향이며, 사봉면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사봉초등학교와 사봉우체국, 진양농협 사봉지소, 사봉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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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남쪽에 위치한 면(面). 수곡면 대천리에 큰 샘인 찬새미(한새미)가 있는데, 수곡면은 그 수계 지역으로서 물이 많은 곳이라는 뜻에서 수곡(무실)이라 불렸다고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서면(西面) 수곡리(水谷里)·원당리(元堂里)·이하리(蘺下里)·자매곡리(自梅谷里)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자매곡리(自梅谷里)가 이하리(蘺下里)에 합하여졌다. 1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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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법정리. 해마다 천우로 물난리를 겪는 피해도 있지만, 수곡(무실)이라는 이름은 물이 많은 곳을 뜻하여 산꼭대기에 우물을 파도 물이 철철 흘러내린다고 하는 전설이 전하는 바, 본 면의 중심지에는 ‘대천’이라는 한샘이 있다. 한샘의 ‘한’의 뜻은 큰[大] 또는 으뜸(元)을 나타내는 것이고, ‘샘’은 ‘옳은 마음’으로 해석된다. 한샘에서 나온 물이 수곡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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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삵괭이가 많이 살았다고 해서 씩실 또는 이곡(狸谷)으로 불렀다가, 우곡(隅谷) 정온(鄭溫) 선생이 동리를 사기만곡(士氣滿谷)이라고 부른 것에서 사(士) 자와 곡(谷) 자를 따서 사곡(士谷)으로 불렀다고 유래된다. 1914년 진주군 대각면 사곡동, 대우동, 산청군 백곡면(栢谷面) 대우동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사곡리(士谷里)라 하였다. 사곡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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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날 사곡에서 살던 밀양손씨(密陽 孫氏)가 옮겨와 살면서 ‘엥기’라 하다가 그 후 원계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하동군 가서면(加西面) 원계동(元溪洞)의 일부를 하동군 가종면(加宗面) 원계리(元溪里)라 하였다가 1955년 7월 1일 법률 제306호(1955. 6. 29. 공포)에 의하여 진양군 수곡면으로 편입되었다. 서쪽에 덕천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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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을 갖는 원당(元堂)의 지형과 들을 중심으로 해서 내원당(內洞), 외원당(外洞)으로 나누고 내원당(內洞)을 원내리(안원당)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진주군 수곡면 하동(下洞), 원당면 내동(內洞), 곤양군 곤명면(昆明面) 본촌동(本村洞) 일부를 통합하여 원내리라 하였다. 원내리 중심에는 남북으로 가르는 덕천강의 지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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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을 갖는 원당(元堂)의 지형과 들을 중심으로 해서 내원당(內洞), 외원당(外洞)으로 나누고 외원당을 원외리(들원당)로 부르게 되었다. 1914년 진주군 원당면 내동(內洞), 외동(外洞), 곤양면 곤명면(昆明面) 본촌동(本村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원외리라 하였다. 원외, 신촌, 광명촌으로 나뉘어 있으며 진양 강씨,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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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속하는 법정리. 양지바른 골짜기에 매화나무가 많이 있는 자리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고 해서 ‘자매실’ 또는 ‘자매’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자매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대각면 자매동과 대우동, 산청군 파지면 덕동의 각 일부가 합하여 형성되었다. 자매(紫梅)와 월계(月桂) 두 마을이 남북으로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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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에 있는 법정리. 옛날 조곡을 보관하던 곳이라 하여 의창(義倉) 또는 창말이라 하였다가, 후에 창촌(倉村)으로 부르게 되었다 한다. 옛날 무실마을[水谷]이다. 1906년(광무 10)에 진주군을 50면 298리로 재편할 때, 수곡면에 속했다. 이후 1914년 진주군 수곡면 창촌동, 조계동, 원당면 외동, 하동군 운곡면 가덕동의 각 일부를 합쳐 창촌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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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수곡면의 법정리. 선조 때 하경휘(河鏡輝)가 이 마을에 살면서 부모에 효성이 지극하고 동기간에 우애가 두터워서 이름난 효자동으로 동명(洞名)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한때는 효우봉, 쇠우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1914년 진주군 수곡면 효자동, 중전동, 하동, 요산동, 마동면 당촌동 각 일부를 합쳐 효자리라 하였다. 1917년 3월 15일 본면 효자리(孝子里) 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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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단에 위치한 면(面).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으로 불렸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반성현으로 불렸다. 이후 1864년(고종 1)에 반성면이라 하였다가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반성현(班城縣)이라 하다가 동면(東面) 반성리(班城里), 가수개리(柯樹介里), 정수개리(丁樹介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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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영봉산에서 시작된 산의 줄기로 인해 주위의 환경이 아름다워 가산(佳山)이라 하였다.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可樹介面)의 가산동(佳山洞), 길성동(吉省洞), 계룡동(溪龍洞)과 이반성면(二班城面)의 용암동(龍岩洞) 일부를 합쳐 가산리(佳山理)라 하였다. 영봉산에서 이어지는 산줄기로 북동쪽은 해발 100~2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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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옛 전설에 의하면 수성동에 속하는 칠성마을이 양달과 음달로 되어 있었고, 들판 곳곳에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바위 돌이 일곱 개가 있었다고 하는데, 길성(吉星)이란 명칭도 이 바위 돌을 가리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可樹介面)의 길성동(吉星洞), 둔두동(屯頭洞), 계룡동(溪龍洞) 일부를 통합하여 길성리(吉星里)라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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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의 법정리. 대천리 내에 있는 자연마을인 대동(大洞)과 대천리를 흐르는 답천(沓川)을 합하여 대천리로 이름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의 반성현에 속했다가 동면 가수개리와 정수개리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이반성면과 가수개면으로 되었다. 1914년에 진주군 가수개면 대동·가산동, 외진성면 답천동 각 일부로써 대천리라 하였는데, 현재 대동·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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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전쟁이 일어나면 크게 발대를 막고 승패를 짓는 곳이라 한다. 인위적으로 대단위 호수를 만들어 외침을 막아야 한다는 전설에 따라 발산이라 하였다. 1914년 진주군 가수개면(可樹介面) 둔두동(屯頭洞), 계룡동(溪龍洞) 각 일부와 마산부 양전면(良田面) 발산리(鉢山里)를 합쳐 발산리라 하였다. 북쪽의 영봉산(395m)과 남쪽의 깃대봉(52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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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중앙에 위치한 마을의 뒷산인 영봉산 주변의 산세와 암석의 형태가 용과 같은 형세라 하여 용암(龍岩)이라고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을 통해 진주군 이반성면 용암동(龍岩洞), 간동(間洞), 하서동(荷西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용암리(龍岩里)라 하였다. 동쪽은 영봉산[395m] 줄기가 이어져 해발고도 200m 내외의 산지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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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인조대왕이 능양군(綾陽君)으로 있을 때 고성에 있는 심부원군을 만나러 장안산을 지날 때 산세가 수려하여 산중의 암자에서 국난을 타개하기 위한 기도를 올리게 되었다. 그 후 동네의 명칭을 임금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장안리라 하였다 한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이반성면 후촌동(後村洞), 반덕동(反德洞), 사령동(沙寧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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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평촌은 진주군 이반성면 평촌동에서 유래하였다. 옛날 정수개면(丁樹介面)이 있었던 지역으로 1914년, 진주군 이반성면 지화동(池花洞), 평촌동(坪村洞), 간동(間洞), 전촌동(前村洞) 등을 통합하여 평촌리(坪村里)라 하였다. 평촌리는 북쪽의 죽산과 동쪽의 오봉산을 중심으로 산지가 나타나고, 이들 산지에서 발원한 소규모 하천이 계곡을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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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이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진주군 이반성면 하동동(荷東洞), 하중동(荷中洞), 하서동(荷西洞) 일부를 통합하여 하곡리(荷谷里)라 하였다. 하곡리는 남쪽으로는 영봉산(395.2m), 동쪽과 북쪽으로는 오봉산(524.7m) 자락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가운데 좁은 계곡선을 따라 농경지와 마을이 발달하여 있다. 동쪽은 마산시 진전면, 서쪽은 사봉면, 남쪽은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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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위치한 면(面).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으로 불리웠고, 이후 조선시대까지 반성현으로 불렸다. 이후 고종 1년(1864)에 반성면이라 하였다가 반성면이 일반성면과 이반성면으로 분리되면서 현재의 지명으로 개칭되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반성현(班城縣)이라 하다가 동면(東面) 반성리(班城里), 비라동리(非羅洞里)라 하였고,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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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가선리에 통합된 가곡마을과 선동마을의 이름을 따서 행정구역상 가선리라고 하였다. 1914년 3월에 진주군 일반성면의 가곡마을, 선동마을, 창촌마을의 일부를 합쳐 가선리(佳仙里)라 하였다. 1963년 10월 1일에 가곡마을의 일부를 소아(蘇芽)마을로 신설하여 선동, 가곡, 소아 3개 마을이 되었다. 가선리는 전체가 대부분 해발 100m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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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암리에 속하는 마을 중 하나에 개암나무(고욤나무)가 많아서 개암마을이라 불렸는데, 주변마을과 통합하는 과정에서 이 명칭이 남게 되었다. 한자지명은 음차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일반성면의 개암동, 선동, 창촌동과 외진성면의 답천동 일부를 병합하여 개암리(開岩里)라 하였다. 개암리의 북쪽으로 낮은 구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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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남산리(南山里)라는 지명은 남산 밑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 동면 진성리의 남산촌(南山村), 대연(大淵), 원통(原通) 등에 해당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외진성면의 원통동, 사가동, 소야동, 시목동, 남산동, 관사동과 내진성면의 백암동, 두목동의 각 일부를 합쳐 남산리라 하였다. 남산리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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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북쪽으로 반성천이 지나고, 반성천 주변에 사평들이라는 평야가 펼쳐져 있어 답천(沓川)이라고 하였다. 본래 진주군 외진성면의 지역으로 논내실 또는 노천, 답천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일반성면의 채동 일부를 병합하고 답천리(沓川里)라 하여 일반성면에 편입되었다. 답천리의 남쪽은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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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역을 지나는 소하천의 이름을 따서 운천리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성리 원당·굴천·포곡 지역이었으며, 1864년(고종 1) 원당은 내진성면으로, 굴천·포곡은 외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진주군 외진성면 성분동·포곡동·운천동, 내진성면의 원당동·온정동과 함안군 상사면 다무리의 일부를 합쳐 운천리라 하여 일반성면에 편입되었다. 북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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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일반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 현종 9년(1018)에 진주목 반성현에 의창(義倉)이 소재하였고 조선시대에는 반성창(班城倉)을 두어 창말이라고도 하였다. 이 때 “곳집 창(倉) 자”의 유래로 창촌리라 전해오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진주목 반성현에 속하였고, 조선 중종 때 반성리로 개칭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진주군 일반성면 창촌동(倉村洞), 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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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한 면(面). 정촌면의 전신인 정촌면(鼎村面)의 정(鼎)자에서 目을 지우고 정촌면(井村面)이라고 하고, 원 정촌면(鼎村面)은 정동(鼎洞)으로 개칭하였다 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남면(南面) 정촌리(鼎村里), 지공리(枝貢里), 가차례리(加次禮里), 두모곡리(豆毛谷里), 진수개리(陳樹介里)였고, 임진왜란 이후에 두모곡리는 정촌리에 합했다.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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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에 진주군 지공면 여물동, 상동과 사천군 북면 관율동 각 일부를 통폐합하여 관봉리(官鳳里)라고 하였다. 마을 주위에 100m 내외의 낮은 산들이 산재해 있으며, 여기서 발원한 소하천들이 인근 두량저수지로 흐르고 있다. 동쪽은 금곡면 정자리, 서쪽은 소곡리, 남쪽은 사천읍, 북쪽은 문산읍과 각각 접하고 있다. 남서쪽으로 통영~대전·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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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축동면(杻洞面)과 대동(大洞)에서 집자하였다고 하나,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시 진주군 축동면 대동을 대축리(大杻里)라고 하였다. 서편의 실봉산으로부터 발원한 소하천이 마을을 동서 방향으로 흐르고 있으며, 대축저수지가 옆에 자리하고 있다. 북서쪽으로 갈수록 경사가 급해진 산지 지형이 나타나며, 남동쪽은 다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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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시대 진주군 지공면 소곡동 지역으로서 이에 지명이 유래하였다고 한다. 1914년 진주군 지공면 소곡동, 상동 일부와 사천군 북면 관율동을 합하여 소곡리(所谷里)라 하였다. 소곡리는 형세가 남북 방향으로 길며, 동서 방향으로 좁다. 남쪽은 사천시와의 경계가 되는 두량저수지가 있고, 전반적으로 해발 고도 100m 이내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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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가차례면 상동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차례면과 상동에서 집자하였다고 하나 그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1914년에 진주군 가차례면(加次禮面) 상동(上洞)을 예상리(禮上里)라 하였다. 예상리의 동편에는 커다른 규모의 두량저수지가 자리하고 있으며, 매우 평탄한 지형으로 농업이 발달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동쪽은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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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가차례면 하동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가차례면과 하동에서 집자하였다고 하나 그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1914년 구한말 때의 진주군 가차례면(加次禮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을 통폐합하여 예하리(禮下里)라 하였다. 여기에 소속된 강주(康州)는 신라 경덕왕 16년(557년) 이후 전해져 온 진주의 고호(古號)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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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정촌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에 진주군 지공면 죽봉동·화동과 내동면 율동, 가차례면 하동 일부를 통합하여 화개리(花開里)라 하였다. 화개리는 죽봉 등 해발 고도 100m 이하의 구릉성 지형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고, 화봉산과 그 아래의 죽봉저수지에서 시작하여 남쪽의 사천만 쪽으로 작은 하천이 있다. 동쪽은 관봉리, 서쪽는 대축리, 남쪽은 예상리와 예하리, 북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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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북동부에 위치한 면(面). 지수면 청원리에서 발원하는 지수천(智水川)에서 유래한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용봉리(龍奉里), 청원리(淸源里), 승어산리(勝禦山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청원리와 승어산리는 용봉리에 합해져 이후로는 용봉리라 하였다. 고종 1년(1864) 이래로는 용봉면(龍奉面)이라 하다가 갑오경장 이후는 하봉면(下奉面),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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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금평의 이름을 따서 금곡리라 하였다. 금평은 평갱이 들이라고도 부르며, 곡식이 돈이라고 하여 금평이라 하였다 한다. 금곡리는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필동리, 뇌동리와 하봉면의 구사리 일부를 병합하고 진주군 지수면에 편입되었다. 금곡리는 서편으로 남강에 접해 있다. 남동쪽은 고도가 높고, 북서쪽은 고도가 낮다. 금곡리는 동쪽으로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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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예로부터 승산동이라 불렸으며, 한양에서 진주는 몰라도 승산은 안다고 할 만큼 천석군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라는 구전이 있으며, 승산교, 승산도랑, 승산연정 등의 관련 지명들이 남아 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승어산리(상승어산), 하승어산, 무등촌, 허곡, 임내리를 병합하여 승내리라 하였다. 1995년 11월 1일에는 진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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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함안군 상봉면 압현리와 구사리의 글자를 따서 압사리라 하였다. 예전에는 함안군에 속하였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압현리, 구사리를 병합하여 압사리라 하고 진주군 지수면에 편입되었다. 북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대체로 경사가 완만한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은 청담리, 서쪽은 용봉리, 남쪽은 금곡리, 북쪽은 의령군 화정면과 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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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지역에 있는 용산과 봉산의 이름을 따서 용봉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아래골, 항복골, 우기미, 동모리, 뱃가, 안계를 병합하여 진주군 지수면에 편입되었다. 용봉리는 남강이 북쪽, 서쪽 그리고 남쪽의 3면을 에워싸고 흐르며, 해발 고도 200m 내외의 구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압사리, 서쪽은 대곡면 와룡리,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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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담리(淸潭里)는 청담마을에 있는 큰 못인 청담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원래 청담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토지 구획 정리 후에 평촌으로 변경되었다가 1990년 주민들의 옛 이름 되찾기 운동에 의해 원래의 이름으로 개칭되었다. 1914년에 청담, 덕암, 무듬실, 마실, 들말, 토실, 염창 7개 자연마을을 행정 구역상 청담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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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지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청원리(淸源里)는 지수천으로 흐르는 맑은 물의 근원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진주군 상봉면에 속해 있었는데, 1906년 9월부터 1914년 2월까지 함안군에 이속되었다가 1914년 3월 1일부로 진주군으로 편입되어 지수면의 6개 법정리 중 하나가 되었다. 청원리는 동단에 진주시와 함안군의 경계를 이루는 괘방산[465m]과 방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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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동부에 위치한 면(面).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동면(東面) 진성리(晋城里), 가좌촌리(加佐村里), 반동산리(班東山里), 이천리(耳川里)라 하였다. 임진왜란 후에는 이천리는 진성리에, 반동산리는 가좌촌리에 합하여 각각 진성리, 가좌촌리라 하였다. 1864년(고종 1) 이후에는 이(里)가 면(面)으로 개칭되어 가좌촌면과 내진성면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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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려시대 진주목이 설치된 이후에는 가좌촌리 였는데 1895년에 가좌촌면으로 승격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가좌촌면 하촌동(下村洞)의 일부로서 하촌리(下村里)라 하고 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가 1993년 7월 1일자로 가진리(加津里, 嘉津里)라 개칭하였다. 가진리의 북쪽으로 남강이 흐르고 있으며, 이전의 나루터였던 가좌나루의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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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조선 전기 이래로 이천(耳川)[귀내]이라 하다가 1995년에 구천(龜川)이라 개칭하였다. 현지 주민들은 지금도 귀내 또는 구내라 한다. 진주목 시대에는 내진성면(內晋城面)에 속했으나, 1914년에 진성면으로 편입되었다. 도동(道洞), 구천(龜川) 2개 마을이 형성된 후 삭녕최씨(朔寧崔氏)가 입향하고, 다음 진양정씨가 입촌하였다. 문산읍과 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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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진성면(內晋城面) 대사동(大寺洞), 두수동(杜水洞), 백암동(白岩洞) 각 일부를 합쳐 대사리(大寺里)로 명명하였다. 1914년 이전에는 내진성면 대사동(大寺洞), 두수동(杜水洞), 백암동(白岩洞)이었고, 지금은 행정단위로 대사(大寺), 두소(杜蘇)의 두 마을로 되어 있다. 대사리 북쪽에서부터 하천이 흘러와 백암저수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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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한 법정리 윗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다. 반대되는 지명인 하촌리는 1993년 가진리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진주목 반동산리(班東山里)에 속했다. 1895년(고종 32)에 지방 행정 구역이 개편되면서 가좌촌면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진성면 상촌리가 되었다. 현재 교동(校洞), 상동(上東), 예음(禮吟) 3개의 자연마을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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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온수리(溫水里)의 명칭에 대해 온천과 관련되어 있다고 하는 설이 있으며, 실제로 1980년대 초반 온천이 발견되어 이를 뒷받침한다고 전하나 그 출처는 명확하지 않다. 온수리는 대사리와 천곡리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내진성면에 속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으로 진주군 내진성면 온수동이 온수리로 개칭되었다. 남쪽으로 하천이 흐르며,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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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정확한 명칭유래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현지 주민들은 천곡리를 새미실이라고도 하며, 간자골에 있는 우물에서 천곡이 발원한다고 한다. 진주목 시대에는 내진성면에 속한 곳으로 1914년에 내진성면 천곡동(泉谷洞), 온수동(溫水洞)과 가좌촌면(加佐村面) 중촌동(中村洞) 일부로서 천곡리(泉谷里)라 하였다. 천곡리의 북쪽은 반성천과 접하여 평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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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북부에 위치한 면(面). 집현면(集賢面)은 지역 내에 있는 집현산(集賢山)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집현산(集賢山)에 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진주목읍지(晋州牧邑誌)』, 『진양지(晋陽誌)』의 산천(山川)란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 전기까지는 진주목(晋州牧) 북면(北面)에 속해 동물곡리(冬勿谷里), 모태곡리(毛台谷里), 정곡리(井谷里), 신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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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냉정리에 속하는 참새미마을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우물이 있는데, 이 때문에 차갑고 맑은 샘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냉정리(冷井里)라고 하였다. 원래 진주군 집현동면(集賢洞面)의 냉정동(冷井洞)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집현면의 광정동(廣亭洞), 냉정동(冷井洞), 미천면의 원당동(元塘洞)이 합해져 냉정리(冷井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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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과정에서 합쳐진 대무동과 혈암동의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서 대암리라고 하였다. 1914년 진주군 모태곡면(毛台谷面) 대무동(大舞洞), 평방동(坪方洞), 혈암동(穴岩洞)과 집현면 달리동(達理洞)의 각 일부를 대암리(大岩里)로 하였다. 대암리의 북쪽 지역은 해발 고도 100m 이상의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강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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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합 과정에서 합쳐진 덕성동과 오동의 지명에서 한 글자씩 따서 덕오리라고 하였다. 1914년 3월 1일 시행된 지방 행정 구역 개편 때 진주군 사죽면(沙竹面) 오동(梧洞), 덕성동(德成洞), 월아동(月牙洞), 단동(丹洞)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덕오리(德梧里)라 하고 집현면에 편입하였다. 1987년 일부 지역이 금산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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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봉황(鳳凰)이 날아와 앉았던 지역이라고 해서 봉황골[鳳凰谷] 혹은 봉강골[鳳降谷]이라 했다 봉강리(鳳降里)는 집현동면(集賢洞面) 봉강촌(鳳降村)에 속한 지역이었으며, 1914년 진주군 집현면 봉평동(鳳坪洞), 덕동(德洞), 원동(院洞)과 모태곡면(毛台谷面) 혈암동(穴岩洞)의 일부가 봉강리가 되었다. 남쪽으로 해발 고도 197m의 장대산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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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사촌(沙村)의 유래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사촌 일대에 모래(沙)가 많이 있었다 해서 사촌(沙村)으로 불렸다는 설과 지역 내에 있는 구시봉 정상에서 보면 남강의 모래사장이 훤히 보였다 해서 사촌이라고 불렀다는 설이다. 조선시대까지는 사죽리(沙竹里)로 불렸으며, 1914년 진주군 동물곡면(冬勿谷面) 기동(基洞), 사촌동(沙村洞), 관동(冠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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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의 법정리 본래 사죽면(沙竹面) 지역으로 큰 못이 있어 신당(新塘)이라 하였다. 1914년 진주군 사죽면 신당동 일부와 죽산동을 합쳐 신당리라 하고 집현면에 편입시켰다. 진주시 초전동과 인접하여 있으며, 동쪽으로 남강을 접하고 있다. 33번 국도가 지나간다. 2002년 6월 30일 현재 148세대 454명이다. 벼농사 이외에도 수박, 고추 배추 등 시설 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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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사죽면 장흥동, 신당동 각 일부를 통합하여 장흥리라 하고, 집현면에 편입하였다. 장흥마을은 사죽면 장흥동의 모습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으며, 월평(月坪)마을은 1947년 장흥리에서 분동되면서부터 월평이라 하였다. 장흥리는 장흥마을과 월평마을로 구성되며, 집현면 우체국의 소재지이다. 장흥마을 주변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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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모태곡면(毛台谷面) 검정동(儉亭洞)의 ‘정(亭)’자와 철수동(鐵水洞)의 ‘수(水)’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검정동은 동리 입구에 정자가 있어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주변 산에 숯을 구운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어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철수동은 쇠의 녹물이 흐른 흔적과 제철소가 있어 유래되었다고 한다.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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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진주군 모태곡면(毛台谷面) 정자동(亭子洞)과 평방동(坪芳洞) 일부를 통합하여 정평리라 하면서, 정자동의 정(亭)자와 평방동의 평(坪)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정자마을은 평방마을 북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백 년 된 정자나무가 집단으로 많이 있는 마을이다. 조선 이후 도룡골[道龍谷], 집수골[集水谷], 아랫골, 배량골, 창대골 등에 100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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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집현면에 속하는 법정리. 1914년 행정 구역의 통폐합에 따라 진주군 집현면 지내동, 당하동(堂下洞), 신기동(新基洞), 달리동(達理洞) 일부로서 형성되었다. 현동(賢洞)마을 주변에 있는 당하촌(堂下村)은 300여 년 전에는 현재의 봉강과 합쳐서 현동이라 불렀다. 그 후 서편이라 개칭하였고, 다시 당하마을 뒤에 있는 큰 정자나무 아래에 안씨들이 많이 살고 있다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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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쪽에 위치한 가호동(행정동)에 속한 법정동. 1914년 행정 구역 조정 과정에서 개양동과 장좌동을 합쳐 ‘가좌리’라 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원래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가좌동(加佐洞)·장좌동(莊佐洞), 내동면(奈洞面) 신촌동(新村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정촌면 ‘가좌리’라 하였다.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 제6542호에 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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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부에 위치하며 가좌동과 호탄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법정동인 가좌동과 호탄동을 통합하면서 두 동의 이름을 따서 행정동인 ‘가호동’이 되었다. 1973년 7월 1일 진주시 행정 구역 개편(대통령령 제 6542호)에 의하여 정촌면 가좌리와 호탄리를 진주시에 편입시켜 행정동인 가호동이 형성되었다. 가호동 자체로만 보면 중앙부는 낮고, 동쪽과 서쪽이 높으며 남쪽은 비교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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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쪽에 위치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진주를 흐르는 남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강남동’이라 하였다. 본래 진주군 섭천면(涉川面)과 천전동(川前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에는 내동면(奈洞面) 천전리(川前里)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에 진주면에 편입되었다. 1927년 6월 1일 진주역이 들어서면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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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봉안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대안면(大安面) 2동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조선시대 이래로 진주목과 그 후 진주군의 관하에 있던 곳이다.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 때 진주면 대안동(大安洞)이라 하였다가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동봉정(東鳳町)이라 하였다.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계동(桂洞)으로 되어 오늘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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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경상남도 진주시 귀곡동(貴谷洞) 일대는 1970년 남강댐의 준공과 더불어 수몰된 지역이 많은 편이다.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지역에 해당하여 마을 이름과 지명 등에 얽힌 사연과 유적이 산재하는데, 1997년 발굴 조사된 ‘진주 귀곡동 귀동유적(晋州 貴谷洞 貴洞遺蹟)’이 대표적이다. 본래 경상남도 진주군 가귀곡면 지역으로 ‘귓골’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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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 안쪽에 있다 하여 안성, 내성 또는 성내동이라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당시 진양군 성내면 2동·성내면 3동 각 일부와 성내면 5동 지역을 통합하여 진주면 성내동이라 하였다.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남산정(南山町)이라 하였고, 1949년 8월 15일 남성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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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이전의 진주 행정 구역 명칭인 진주군 대안면의 이름을 따 ‘대안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대안면(大安面) 1동, 중안면(中安面) 3동, 성내면(城內面) 4동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대안동이라 하다가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영정(榮町)이라 하였고,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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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의 동쪽에 있다 하여 동성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성내면(城內面) 3동과 4동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동성동이라 하였는데,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일출정(日出町)이라 하였다가 1949년 8월 15일 다시 동성동으로 환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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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의 법정동이자 행정동. ‘망경(望京)’이란 명칭은 고려 때 어느 충신이 역적으로 몰려 귀향을 와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늘 산에 올라 임금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바라보았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 1914년 3월 1일 당시까지만 해도 진주군 섭천면(涉川面) 지역으로 남강(南江)의 앞쪽에 있다 하여 ‘내앞’ 또는 ‘천전(川前)’이라고 하였다. 1914년 천전리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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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주성의 한가운데에 있어 본성동 혹은 중성동(中城洞) 이라고 하였다. 1914년 3월 1일 당시 진주군 성내면(城內面) 2동과 성내면 3동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중성동이라 하였다.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본정(本町)이라 하였는데, 해방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본성동(本城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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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봉안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봉곡면 하동(下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진주면 중안동(中安洞)이 되었고,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서봉정(西鳳町)이라 하였다가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봉곡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 제256호(1997. 5. 12.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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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봉수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1동과 2동, 대안면(大安面) 2동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비봉동(飛鳳洞)이라 하였다.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봉래정(蓬萊町)이라 하였다가 해방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봉래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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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으며 상대동 일원을 관할하는 행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의 상대동(上大洞)과 하대동(下大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도동면 상대리라 하였는데,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면서 진주시 상대동이라 하였으며, 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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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으며 상대동 일부와 하대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의 상대동(上大洞)과 하대동(下大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도동면 상대리라 하였는데,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면서 진주시 상대동이라 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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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는 상대1동(행정동)과 상대2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상대동(上大洞)과 하대동(下大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상대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상대동으로 개칭되었다.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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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동(행정동)과 상봉서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이곳은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원래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상봉리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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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부를 관할했던 행정동. 원래 이곳이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옛날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상봉리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인 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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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봉동 일부를 관할했던 행정동. 본래 이 곳이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원래 진주군 봉곡면(鳳谷面) 상동(上洞)과 하동(下洞)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상봉리(上鳳里)라 하였다가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932년에는 일본식 지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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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큰들의 위쪽에 있다 하여 ‘웃들’ 또는 ‘상평’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상평동(上平洞)·하평동(下平洞)·상대동(上大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상평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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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본성동·남성동·인사동을 관할했던 행정동 1910년 토지 조사 사업 당시 진주면에 17개 정(町)을 두었는데, 이 때에 남성정, 인사정이라 하였다.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진주부가 진주시로 개칭되고 17개 정 12개 리가 29개 동으로 개편되었는데, 남성정과 인사정도 남성동, 인사동으로 바뀌었다. 1954년 10월 20일 진주시의회의 승인을 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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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봉수동(행정동)과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마을 뒤 산봉우리인 수정봉의 이름을 따서 ‘수정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추목동(秋牧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진주면 평안동(平安洞)이라 하였다가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수정정(水晶町)이라 하였다. 광복과 정부 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수정남동·수정북동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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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새로운 곳에 터를 잡아 산 곳이라 하여 ‘신안’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신안동(新安洞)·평촌동(坪村洞)·화동(禾洞), 성내면(城內面) 5동, 평거면(平居面) 평거동(平居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신안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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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 시내 중심부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옥봉산(玉峰山)의 이름을 따서 ‘옥봉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옥봉면(玉峯面) 교동(校洞)·탑동(塔洞)·비석촌(碑石村)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옥봉면 전역과 성내면(城內面) 4동, 대안동(大安洞) 1동·2동의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道洞面) 옥봉리라 하였다.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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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쪽에 있는 이현동에 속하는 법정동. 유곡동은 버드골로 불리던 곳인데, 이곳은 돌깨나모티와 못밑 사이에 산재하고 있는 골짜기로 버드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었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의 버드나무는 모두 베어 버리고 도시화되었다. 유곡동은 나불천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발전하였으며, 도시의 편리함과 농촌의 순수함을 모두 가지고 있는 자연친화적인 동이다.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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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쪽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본래 진주군 중안면의 지역으로 고개가 둘이 있다 하여 ‘두고개’, ‘두우개’ 혹은 ‘이현’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이현동(二峴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통폐합 때 화동(禾洞)·일동의 일부를 병합하여 평거면(平居面) 이현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평거면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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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성지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2동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진주면 중안동(中安洞)이 되었다. 그 후 1932년에는 일본 지명으로 개칭되어 길야정(吉野町)이라 하였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에 의해 인사동(仁寺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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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성내면(城內面) 4동, 대안면(大安面) 1·2동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진주면 동성동(東城洞)에 포함되었다가, 차츰 도시화되면서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앵정(櫻町)이라 하였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장대동(將臺洞)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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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초장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진주군 장재곡면(長在谷面) 지역으로 장재못이 있었다 하여 ‘장재골’, ‘장재곡’, 또는 ‘장재실’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장재곡면, 사죽면(沙竹面) 장흥동(長興洞), 동물곡면(冬勿谷面) 하촌동(下村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道洞面) 장재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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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망경동(행정동)과 칠암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약을 많이 심었다 하여 ‘약골’ 혹은 ‘약동’이라 한 데에서 유래하였다. 1914년 3월 1일 진주군 섭천면(涉川面) 약동(藥洞)을 내동면(奈洞面) 주약리(株藥里)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다가, 1949년 8월 15일 주약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 자체로만 보면 남쪽으로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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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봉안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이곳이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지역이었으므로, 그 이름을 계승한 것이다. 원래 진주군 중안면(中安面) 1동·3동, 성내면(城內面) 4동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중안동(中安洞)이라고 하였다.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행정(幸町)이라 하였다가 해방 및 정부수립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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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성동·대안동·평안동·장대동과 수정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진주시의 정 중앙에 위치하여 중앙동이란 이름이 붙었다. 1997년 7월 1일 동 통폐합으로 법정동인 평안동, 대안동, 동성동, 장대동 전역과 수정동 일부를 편입하여 행정동인 중앙동이 되었다. 진주의 정 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외버스 터미널이 근처에 있어 교통접근이 매우 용이하다. 2011년 9월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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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초전동·장재동·하촌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1997년 7월에 초전동·장재동을 통합하여 초장동으로 개칭하였다. 행정동인 초장동에는 초전동·장재동·하촌동의 법정동이 속한다. 진주시 내에서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은 남강을 경계로 금산면과 이어지고, 남쪽은 옥봉동·하대동과 접해 있다. 북쪽은 집현면에 접해 있다. 동쪽에는 남강 강변을 따라 도로가 나 있다. 2011년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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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부에 있는 초장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새(풀)가 많이 있는 지역이라 하여 ‘새밭’ 또는 ‘초전’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초전동(草田洞), 사죽면(沙竹面) 장흥동(長興洞), 금산면(今山面) 말암동(末岩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초전리라 하였으며,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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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남강 남쪽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현재 경상대학교 의과대학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사이에 일곱 개의 큰 바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바위들이 있던 곳을 ‘치리미’라고 부르던 것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원래 진주군 섭천면(涉川面) 천전동(川前洞)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내동면(奈洞面) 천전리라고 하였다. 1918년 5월 1일 진주면에 편입되었고, 1932년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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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옛날 진주로 통하는 관문의 자리에 위치한 지역이라 하여 ‘널문이’라고 일컬어왔으며, 지형이 널따란 널문[板門] 모양을 이루고 있다 하여 ‘판문동’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평거면(平居面) 판문촌(板門村), 오동촌(梧洞村)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판문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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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서부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조선시대에 역이 있었다 하여 ‘역촌’ 또는 ‘역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지만, 남강 주변 충적평야에 옥토가 쌓여 사람이 살기에 적합 곳이라 하여 ‘평거’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평거면(平居面) 평거동(平居洞) 및 중안면(中安面) 평촌동(坪村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 각 일부를 통합하여 평거면 평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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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중앙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대안면(大安面) 1동·2동, 중안면(中安面) 3동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일부를 통합하여 진주면 평안동이라 하였으며, 1932년 일본식 지명으로 개칭되어 금정(錦町)이라 하였다. 광복 및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다시 평안동으로 환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97년 7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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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하대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거 진주군의 도동면 하평촌에 속하였다. 1992년 10월 12일 진주시 조례 제1598호(1992. 10. 2. 공포)에 의거, 상대2동이 상대2동과 하대동으로 분동되었다. 1997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 제256호(1997. 5. 12. 공포) 및 제274호(1997.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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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동쪽에 있는 하대동 일부를 관할하는 행정동.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에 의거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하평촌(下坪村)에 속하였다. 1992년 10월 12일 진주시 조례 제1598호(1992. 10. 2. 공포)에 의거, 상대2동이 상대2동과 하대동으로 분동되었다. 1997년 7월 1일 진주시 조례 제256호(1997. 5. 12. 공포) 및 제274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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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상대2동(행정동)·하대1동(행정동)·하대2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도동면(道洞面) 하대동(下大洞)과 초전동(草田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도동면 하대리라 하였다.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고, 도동면은 해체되었다. 광복과 정부수립 후 1949년 8월 15일 하대동으로 개칭되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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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초장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진양군 동물곡(드무실) 아래쪽에 있다 하여 ‘하촌(下村)’이라 하였다. 원래 진주군 동물곡면(冬勿谷面) 중촌동(中村洞)·하촌동(下村洞), 장재곡면(長在谷面) 장재곡동(長在谷洞)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집현면 하촌리라 하였으며, 1938년 7월 1일 진주읍에 편입되었다. 해방과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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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시 가호동(행정동)에 속하는 법정동. 원래 진주군 정촌면(井村面) 호탄동(虎灘洞), 원촌동(院村洞)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1914년 3월 1일 이들 지역을 통합하여 정촌면 호탄리라 하였다. 1939년 10월 1일 진양군 정촌면 호탄리라 하였다가 1973년 7월 1일 진주시에 편입되면서 호탄동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3년 7월 1일 진주시 호탄동과 가좌동...